알맹이 빠진 태영건설 자구안에 채권단 '싸늘'…법정관리 가능성도
[서울=뉴시스] 김형섭 최홍 기자 = 9조원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을 갚지 못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자구안을 내놓았지만 채권단의 반응은 싸늘하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이나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매각이 빠지면서 태영건설의 정상화 진정성이 의심을 받는 상황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서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반응까지 나오면서 워크아웃 불발과 법원 회생절차(법정관리)로 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그룹은 전날 열린 태영건설 워크아웃 관련 채권단설명회에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1549억원)의 태영건설 지원 ▲에코비트 매각추진 및 매각대금의 태영건설 지원 ▲블루원의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62.5%) 담보제공 등 4가지 자구안을 내놓았다.
"사력 다하겠다" 했지만…채권단 반응은 "굉장히 실망"
윤 회장은 "워크아웃을 신청해 기업회생의 첫 걸음 뗄 수 있었다. 다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고 대주단 여러분 워크아웃 승인 없이는 태영을 되살리기 어렵다"며 "피해를 최소화해 태영과 함께 온 많은 분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도록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사력을 다해 태영을 살리겠다"는 윤 회장의 다짐과 달리 태영그룹의 자구안에 대한 평가는 차가웠다. 이번 자구안이 태영그룹 6997억원, 태영건설 자체 5290억원 등 기존 1조2000억원 규모 자구노력에 추가된 것이지만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졌던 내용이거나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주였다는 평가다.
특히 채권단 설득의 관건으로 여겨졌던 윤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과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매각이 자구안에서 제외된 게 결정적이었다.
태영건설은 설명회에서 SBS 지분매각 의사를 묻는 채권단 질문에 "최선의 방안을 찾겠지만 SBS는 방송사이고 제약 요건이 많아 의견을 드리기 어렵다"며 SBS 지분매각에 선을 그었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최소 3000억원 이상의 대주주 사재출연을 주장해 왔지만 에코비트와 블루원 등의 매각 계획을 밝히면서도 오너 일가 지분을 비롯한 사재출연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SBS 지분 매각에 선을 긋는 대목에서는 채권단 사이에서 "정말 저게 다냐", SBS는 안 판다는 얘기냐"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일부 채권단 관계자들은 태영건설의 자구안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설명회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태영건설 자구안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 없어서 굉장히 실망스러웠고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태영건설의 자구안이라는 게 네 가지 모두 다들 알고 있었던 그 내용"이라며 "자구안을 더 내놓지 않으면 채권단이 워크아웃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산은,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 경고도…사재출연 규모 관건
태영그룹이 채무자설명회에서 공개한 태영건설 현황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유위험 보증채무(우발채무)는 브릿지보증 1조2193억원, 분양률 75% 미만 본PF 보증 1조3066억원 등 2조5259억원이다.
태영그룹의 설명대로 9조원대 PF 보증 채무 가운데 실제 문제가 되는 우발채무를 2조5000억원 가량으로 본다고 해도 이번 자구안은 이를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채권단의 시각이다.
채권단의 냉랭한 반응에는 태영그룹이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때 내놓은 자구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는 정서도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태영그룹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난달 28일 태영인더스트리를 사모펀드에 팔아 총 2400억원을 확보했다. 당시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이 돈이 1451억원 규모의 협력업체 상거래채권 결제에 쓰일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태영그룹 측은 외상매출 담보 채권대출(외담대) 451억원을 갚지 않았다.
또 티와이홀딩스는 당초 태영건설에 1133억원을 빌려주기로 지난달 28일 공시했지만 이 중 400억원만 투입한 상태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이런 점들을 "태영 측과의 신뢰가 상실된 케이스"(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라고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태영그룹의 자구안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워크아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놓고 있다.
강 회장은 전날 설명회 뒤 브리핑을 통해 "대주주의 뼈를 깎는 충분한 자구노력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피해가 최소화 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럼에도 태영 측이 당초 약속한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주채권은행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워크아웃의 대전제는 대주주의 충분한 자구노력인 만큼 태영 측이 문제해결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채권단의 원만한 협조와 시장 신뢰회복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상식적으로 이런 제안으로 채권단에서 75%가 동의한다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태영그룹이 더 높은 수준의 자구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채권단의 75% 동의를 거쳐야만 워크아웃에 돌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경고다.
만일 워크아웃이 무산된다면 법정관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경우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까지 모든 채권이 동결되면서 분양 계약자와 500여개 협력업체의 피해가 커지게 되고 나아가 국내 경제의 뇌관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분위기도 냉랭하다. 지금과 같은 알맹이 빠진 자구안으로는 채권단 설득도, 국민 이해도 불가능하다는 분위기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국가경제적 사안이 걸린 만큼 대주주가 충분한 자구노력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국민과 언론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태영그룹이 SBS 지분매각은 여전히 어렵다면서도 채권단이 요구한 오너 일가 사재출연은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 사재출연 규모가 향후 채권단 설득의 관건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오는 11일 열리는 금융채권자협의회에서 결정된다.
티와이홀딩스는 전날 채권자설명회 이후 태영건설 본사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사재출연은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금융채권자협의회까지 준비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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