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新시장] 英 제치고 日 추격… HD현대건설기계, 인도서 급성장
맞춤형 자동화로 품질·생산성↑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 세계 시장이 잘게 쪼개지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각 국의 보호무역주의을 확산시켰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언제든 빗장을 걸어잠글 수 있다. 기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기업의 도전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10월 26일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푸네(Pune)시에 있는 HD현대건설기계 공장. 곳곳에는 서부 인도인에게 인기가 많은 ‘가네샤’의 상(像)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재산과 행운의 신(神)인 ‘가네샤’는 코끼리 머리에 팔 넷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HD현대건설기계 푸네 공장에서는 제작라인의 근로자들이 가네샤 신이다. 근로자 한 명이 3대의 용접 로봇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된 HD현대건설기계 인도 푸네공장은 스마트팩토리로 변신하고 있다. 이 공장은 2019년에 굴착기의 팔 역할을 하는 붐(Boom)과 암(Arm)을 제작하는 공정, 2022~2023년에 굴착기의 몸통이 되는 하부(Lower), 상부(Upper)에 차례로 총 12기의 용접 로봇을 도입해 용접 자동화율 73%를 달성했다. 그 결과 81명의 인원을 다른 업무에 배치할 수 있었다.
HD현대건설기계 인도법인은 2007년 설립됐다. HD현대건설기계는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굴착기 시장에서 자동화 등 생산 과정의 혁신과 제품 현지화를 통해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했다.
인도 굴착기 시장은 2019년 2만1310대, 2021년 2만3663대, 2022년 2만6102대 등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는 2027년에는 3만대 수요가 예상된다. 물류 혁신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인도 정부가 2021년부터 100조 루피(약 1571조원) 규모의 국가인프라부흥계획(PM Gati Shakti)을 세워 도로·철도 등 인프라(기반시설)에 적극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누적 판매량 기준 인도 굴착기 전체 시장 수요는 2만1592대였다. 이 기간에 HD현대건설기계는 3776대를 판매했다. 이는 2022년 한 해 판매량(3855대)에 육박하는 규모다. HD현대건설기계의 인도 시장 점유율은 작년 9월말 기준 17.5%로 전년 말보다 2.7% 포인트(P) 증가했다.
인도 시장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구매력이 약해 무조건 값싼 제품을 찾는 고객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선두를 달리던 일본 히타치는 점유율을 급격히 잃었고, 중국 회사는 가파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생산성과 품질을 함께 끌어올리는 생산 혁신으로 대응했다. HD현대건설기계 인도법인은 인도 시장의 낮은 인건비를 감안해 품질 확보가 필요한 용접 및 조립 공정을 중심으로 선별적 자동화에 나섰다. 용접 공정에는 로봇을 도입하고, 하부 롤러나 선회 모터 등의 조립 공정에는 반자동 토크 툴(Torque tool) 등의 설비를 도입했다.
인도 현지 특성을 고려해 공장 내 물류도 혁신했다. 조립 착수 하루 전 자재 창고에서 작업 순서에 맞게 자재를 골라 담은 대차를 준비한 뒤, 조립 투입 0.5일 전 대기장소에 정렬시켰다. 생산 착수 직전에 각 대차를 조립 라인에 투입하면서 생산 중 발견되는 결품이나 불량 부품을 줄여 생산 차질이 줄었다. 조립 라인 작업자의 동선도 줄면서 생산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제품 한 대당 필요한 공수(일정한 작업에 필요한 인원수를 노동 시간 또는 노동일로 나타낸 수치)는 11% 줄었고, 공정 중에 미완성 상태로 머무르는 재공재고는 절반으로 줄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직원의 기량도 함께 높아졌다. 인도법인 직원의 용접 기량이 인도 최고 수준을 보이자,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그룹 내 한국 조선소들이 도움 요청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제품 사양 및 판매 후 서비스 과정은 현지 요구에 맞춰 특성화했다. HD현대건설기계 인도법인은 특별히 붐·암의 내구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확보했다. 인도 주요 수요처는 굴착기로 조금만 파내려가면 암반이 나와 사양보다 높은 고강도 작업에 제품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인도 외 다른 지역보다 더 강한 내구성이 필요한 이유다.
HD현대건설기계는 2022년 4월부터 리빌딩센터를 열고 재생장비 사업을 시작해 제품의 잔존 가치를 높였다. 이에 따라 HD현대건설기계 제품은 현지에서 명품 장비로 인정받았고 이는 영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 인도법인은 8~50톤(t) 크롤러 굴착기를 매년 9000대 생산할 수 있어 인근 서남아는 물론 가까운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의 주요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 주요 항구인 뭄바이와 인접해 중동·아프리카의 단납기 물량 수주에도 유리하다. 지난해 800대를 판매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른 고객도 푸네 공장을 방문해 HD현대건설기계의 품질을 확인한 후 주문했다고 한다.
인도법인에는 1200명의 현지 직원과 본사에서 온 주재원 12명이 있다. 본관 1층 벽에는 모든 HD현대 계열사의 사업장에서 볼 수 있는 고(故) 정주영 창업주의 어록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가 영어로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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