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8번 물려받아도 될까요” 야구 취미반 학생, 어떻게 132승 전설 후계자 됐을까 [오!쎈 인터뷰]
[OSEN=이후광 기자] ‘132승 전설’ 장원준의 은퇴로 공석이 된 등번호 ‘28’을 새길 새 주인이 결정됐다. 장원준의 등번호를 새기고 장원준의 뒤를 잇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좌완 신예 최승용(23·두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두산 베어스 관계자에 따르면 최승용은 최근 2024시즌 등번호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기존 64번이 아닌 28번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28번은 2023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좌완 레전드 장원준이 달았던 배번이다.
장원준은 2004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과 함께 등번호 21번을 부여받았고, 2007년 28번으로 교체해 2015년 두산과 4년 총액 84억 원에 FA 계약을 한 뒤에도 줄곧 같은 번호를 달았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은퇴를 선언, 정든 28번을 내려놨다.
지난 3일 OSEN과 연락이 닿은 최승용은 “작년에 (장)원준 선배님이 은퇴하시면 내가 28번을 달겠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내가 직접 선배님께 번호를 물려받겠다고 했다. 선배님이 처음에는 장난으로 28번을 자체 영구결번시키라고 하셨다”라고 웃으며 28번을 등에 새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장원준은 과거 두산 왕조의 핵심 선수였다. 4년 FA 계약 첫해였던 2015년 30경기에서 12승 12패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하며 14년 만에 ‘V4’ 일등공신으로 우뚝 섰고, 이듬해에는 27경기 15승 6패 평균자책점 3.32의 활약 속 ‘판타스틱4’의 일원으로 통합우승에 앞장섰다. 2017년 14승을 수확, 롯데 시절이었던 2008년부터 8년 연속 10승에 성공했다.
장원준의 커리어 마지막 해는 낭만야구로 불렸다. 작년 5월 23일 잠실 삼성전에 2020년 10월 7일 SK(현 SSG)전 이후 958일 만에 선발 등판해 2018년 5월 5일 LG전 이후 1844일 만에 승리를 신고하며 역대 11번째, 좌완 4번째 통산 130승을 달성했다. 또한 37년 9개월 22일에 130승을 거두며 한화 송진우(34세 4개월 18일)를 제치고 역대 좌완 최고령 130승 기록을 경신했다.
장원준은 지난해 늦은 나이에도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날 때마다 대체 선발을 맡아 팀을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그 결과 최종전인 10월 17일 인천 SSG전에서 역대 9번째 2000이닝이라는 금자탑까지 세웠다. 장원준의 프로 통산 성적은 446경기 132승 119패 1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4.28이다.
132승 레전드의 등번호를 물려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최승용은 “지금은 아직 실감이 안 난다. 28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받아봐야 실감이 날 것 같다”라며 “64번은 신인 시절 구단이 지정해준 번호였는데 그래도 애정이 있는 번호라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있다”라고 밝혔다.
등번호 ‘28’은 최승용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좌완투수의 등번호를 물려받았기에 책임감을 갖고 그에 걸맞은 경기력을 선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최승용은 “장원준 선배님은 두산과 KBO리그에서 엄청난 성적을 내셨다. 번호의 무게감이 남다르고, 번호를 달았을 때 팬들의 기대감이 생길 것 같아 거기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라고 새로운 각오를 전했다.
최승용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두산이 발굴한 좌완 유망주다. 소래고를 나와 2021년 신인드래프트서 두산 2차 2라운드 20순위로 뽑힌 그는 첫해 15경기 2홀드 평균자책점 3.93에 이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승선해 7경기라는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 3경기 1⅔이닝 무실점의 강심장을 선보이며 향후 두산을 이끌 좌완투수로 주목받았다.
놀라운 건 최승용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주말 취미반으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엘리트 야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교 시절 유연한 투구폼과 함께 직구,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고, 제74회 황금사자기에서 소래고가 우승후보 야탑고를 꺾고 16강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최승용은 2022년 2월 울산 스프링캠프에서도 한 차례 이슈가 된 바 있다. 당시 ‘국보’ 선동열 전 감독이 베어스의 일일 투수 인스트럭터로 변신해 두산 투수들을 유심히 살펴봤고, 최승용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본 뒤 “네게는 진짜로 해줄 말이 없다”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최승용은 지난해 이승엽 감독의 눈도장까지 찍으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고, 34경기 3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97의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전반기 성장통을 겪으며 선발과 불펜을 오가야했지만 후반기 들어 안정을 되찾으며 15경기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90으로 두산의 포스트시즌 복귀에 힘을 보탰다. 아울러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도 1이닝 1탈삼진 무실점 10구로 호투하며 다시 한 번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뽐냈다.
최승용은 이에 힘입어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대표팀에 뽑히며 생애 첫 태극마크의 꿈을 이뤘다. 이후 일본 야구의 심장부라 불리는 도쿄돔에서 씩씩하게 자기 공을 던지며 한국 좌완투수 계보를 밝혔다. 지금까지의 커리어와 잠재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장원준의 등번호를 물려받을만한 선수다.
최승용은 1월 중순 경 팀 동료 이병헌을 포함 같은 에이전시 식구들과 일본 돗토리 월드윙 트레이닝센터로 향해 2주 동안 몸을 만들 계획이다. 2월 호주 시드니 1군 스프링캠프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유연성 훈련의 메카인 돗토리에서 사전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다.
최승용은 “작년 후반기 좋은 모습 보여드려서 팬들 기대감이 커졌을 것이고, 나 자신에게도 기대감이 생겼다”라며 “일단 안 아픈 게 첫 번째다. 그리고 작년 후반기보다 더 발전하고 싶다. (곽)빈이 형이 점점 나아진 것처럼 나도 형의 뒤를 따라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라고 약속했다.
어느덧 프로 4년차가 된 2024시즌 목표는 데뷔 첫 선발 풀타임이다. 최승용은 “승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 선발투수라면 규정이닝을 채우는 게 크다. 선발 풀타임을 한 번 뛰어보면서 규정이닝을 채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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