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앞두고 미국 어린이 치과에서 160만원 쓴 이야기
큰 아이가 만 3세가 되고 난 후부터 매년 두 번씩 치과 정기 검진을 가서 충치는 없는지 유치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했다. 큰 아이는 과일을 참 좋아했고 영유아 때는 양치하는 것을 참 싫어해서 열심히 어르고 달래서 겨우 몇 번 칫솔질 하는 걸로 양치를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초등 고학년이 된 지금까지 다행히 본격적인 충치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 아주 살짝 충치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해서 마취 할 필요도 없어 치아 표면을 살짝 매만지는 시술 정도만 한 번 한 적이 있을 뿐이다.
작은 아이도 작년 중반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양치를 시켜줬고 특별히 단 것을 많이 먹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빠보다는 양치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편이어서 더 오래 꼼꼼하게 양치를 시켜주곤 했다. 그런데 지난 초여름에 치과 정기검진을 갔더니 충치가 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보인다고 가볍게 치료를 받자고 해서 마취없이 간단하게 처치를 받게 됐다. 그리고 몇 주 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장거리 이사를 한 뒤 새로운 치과에 예약을 하게 됐다. 특별히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저 정기검진 차 미리 예약을 해둔 것이었다.
역시 주택 상황과 더불어 악명이 높은 캘리포니아의 의료 상황 답게 동네의 작은 치과인데도 넉달을 넘게 기다려야 치과 진료가 가능했다. 그나마도 사정해서 대기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에 받을 수 있던 진료였다. 무엇 때문인지 그 몇달 사이 딸아이의 충치가 심해져 버렸고 마취를 한 뒤 웃음 가스 충치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내 아이들이라서가 아니라 두 아이 모두 지시를 잘 따르고 얌전한 편인 아이들인데 그래도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웃음 가스는 필수라는 의사 얘기를 듣고 덜컥 겁이 났다. 큰 아이 때에는 마취도 웃음 가스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아이의 충치가 더 심해질 것 같은 생각에 더 이상 망설이기도 어려웠다. 결국 아이는 웃음 가스를 맡으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과의 천장에는 스크린이 설치돼 있어서 누워서 만화를 보면서 치료를 받았다. 아이는 치료 시간이 길어지자 조금 꼬물거렸지만 내가 움직이면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알려주자 금방 손으로 알았다는 사인을 보내더니 얌전히 있었다. 불안하고 긴장 되는 것은 나 뿐이었는지 다행히 치료는 무사히 다 됐다. 웃음 가스의 부작용도 없었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일단 두 군데만 치료를 받고 나머지 두 군데는 다음에 또 진료예약을 잡고 (이 또한 또 몇달을 기다려야하는 상황이다) 다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치료를 잘 받고 기분도 괜찮아 보였다. 치아와 치아의 사이가 좁은 편인 작은 아이에게 치실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양치만 해주었던 것이 충치의 원인인 듯 싶었다. 비슷하게 먹고 오히려 양치는 더 짧게 했던 큰 아이의 치아는 아무 문제도 없었던 걸 보니 아이마다 충치가 더 쉽게 생기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치료가 다행히 잘 끝나 긴장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나오니 또 다른 초조함이 나를 찾아왔다. 의료보험이 있는데도 여전히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치과 치료비였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뀐 것은 치과의 스태프가 나에게 진료비 서류를 출력해주었을 때였다. 결국 나는 이날 한화 약 160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내고 돌아와야 했다. 살면서 치과에서 내 본 진료비 중에 가장 고액의 치료비였던 것 같다.
치료를 씩씩하게 잘 받았으니 상으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버렸다. 우리 딸, 아쉽지만 아이스크림은 당분간은 조심해야 될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유아용 치실도 구입해서 가야겠다. 새해에는 마음도 몸도 그리고 치아도 건강한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여러모로 기원해 본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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