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터졌는데 고상한 추상을 그린다고?”…‘배신자’ 다시 왕관을 쓰다
60년대 미국 추상 대표작가
반전·저항의식에 구상 회귀
전쟁 등 소재 만화처럼 그려
KKK단 그린다는 논란에도
전미·유럽서 미술관 회고전
재평가에 300억 작가로 부활
1960년대를 통과하면서 돌연 거스틴은 추상미술을 떠나 구상으로 회귀합니다. 떠들썩한 스캔들이었습니다. 신대륙을 개척한 이들에게 구상이란 과거이자, 악습이었죠. 거스턴은 ‘배신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 받습니다. 배신의 계기는 그의 추상회화는 순수회화라는 통념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예술은 불순한 것이었으니까요. 1960년대는 베트남 전쟁과 ‘68 혁명’이 있었고, 미국에서 시민권과 반전 시위로 인한 암살과 폭력이 난무한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1960년대에 나는 분열증에 걸린 기분이었습니다. 전쟁, 미국의 현실, 세계의 잔혹함이 실린 잡지를 집에 앉아 읽고 좌절과 분노에 빠져 있다가, 다시 화실로 돌아가 빨강을 파랑으로 바꿔 칠하는 나는 대체 어떤 남자일까요?”
이 배신자가 2020년대에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미술관 전시가 이어지고, 아트페어에선 ‘왕’이 됐습니다. 하우저앤워스의 대표작가로 지난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는 페어의 최고가인 무려 2000만달러(약 260억원)의 ‘밤의 화가’가 첫 날 팔리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밤의 화가’는 고독한 밤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자화상입니다. 담배와 알전구, 핏처럼 붉은 물감덩어리 등 대표작 도상이 포함됐죠.
홀로코스트와 전쟁 등 비극으로 점철된 그의 생애를 돌아본다면, 그의 변절에 비난할 수 없습니다. 거스턴은 1913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유대계 우크라이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1세 때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한 끔찍한 기억, 17세 때 교통 사고로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형의 사망 등은 그에게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1940년대 미국 중서부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If this be not I’ 같은 초상화를 비롯해 알레고리에 집중한 유화를 그렸습니다. 이후 뉴욕시대는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는 ‘뉴욕 스쿨’로 불리는 추상표현주의 동료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유럽의 영향이 보이는 추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초기엔 클로드 모네와 피에트 몬드리안의 영향으로 수평과 수직의 격자 무늬가 드러나다, 점차 대담한 색채와 색면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 트라우마가 점차 드러나며 심연(深淵)과도 같은 어두운 구멍이 특징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침울해지는 이 시기엔 유럽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 장 폴 사르트르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966년 돌연 사라졌던 그는 뉴욕주 우드스탁에 정착해 2년의 공백을 뒤로하고 돌연 구상화를 들고 나타납니다. 이 시기 밥 딜런, 필립 로스 등과 해방의 예술에 관한 우정을 나눴죠. 후기에 거스턴은 홀로코스트, 가족의 죽음, KKK(백인우월주의단체)단의 만행, 알전구, 담배 등으로 암울한 소재를 만화처럼 단순하고 낙관적인 구상화로 열정적으로 선보입니다. 목을 맨 아버지의 밧줄과 전쟁터의 못박힌 군화 등 끔찍한 기억은 화폭으로 소환됩니다. 화가 자신은 눈꺼풀이 없어 눈을 감을 수 없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Cyclopes)로 묘사되죠. 그는 불편한 현실을 직시한 화가였습니다.
동료와 비평가들은 유치한 그림을 두고 ‘미쳤다’고 비난했지만 1980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둘 때까지 고집스럽게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어두운 구상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사망 3주 전에 열린 순회 회고전 이후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오해하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사람이 진정으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2023년에야 ‘지금 필립 거스턴(Phillip Guston Now)’ 전시는 보스턴과 휴스턴을 거쳐 워싱턴에 입성했습니다. 전시는 2월말까지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열립니다. 2022년 펭귄 클래식에서 나온 그의 전기 제목은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걸 그린다(I Paint What I Want to See)’입니다. 평생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그린 화가. 그에게 구상과 추상이란 구획짓기는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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