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태영건설→ 회사채 153조 원…'부실 도미노'의 끝은?

이대건 2024. 1. 4. 08: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알게 된 채권시장 위기

"지난주가 정말 난리였어요. 손꼽히는 대형 건설사가 기업어음(CP) 금리로 연 7%를 부르니 금리가 연쇄적으로 올랐어요. 그전까지는 연 5% 수준이었는데, 순식간에 연 8~10%로 오르더라고요." (A 증권사 관계자 / 2022.10.22 조선비즈 인터뷰)

5% 수준이던 기업어음(CP) 금리가 단번에 두 배 이상 뛰었다.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고 단 20일 정도 지난 우리 금융 시장 상황이다. CP는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1년 이내 만기로 발행하는 기업어음을 말한다. 무담보 단기 채권이다. 기업은 통상적으로 은행을 통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게 여의찮으면 손대는 게 바로 기업어금이다. 이 금리가 치솟는다는 건 자금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의미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채권안정펀드를 다시 가동하기로 한 이유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가뜩이나 불안했던 우리 금융 시장에서 터진 하나의 '사건'이었다. 레고랜드 공사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 만기일 하루 전인 지난해 9월 28일. 김진태 강원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기업회생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선언해 버렸다. 자본 시장은 충격을 받았고 금융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방정부도 못 믿을 판이니 금융시장은 경색될 수밖에 없었다. 레고랜드 사태 여파는 강원도를 넘어 민간 기업, 그리고 채권 시장 전체로 번졌다. 금리 인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원자잿값 인상까지 맞물리면서 대형건설 부도설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지난해 시공 능력 평가 기준 8위인 롯데건설과 태영건설 등 10위권 건설사 2~3곳, 그리고 지방 건설사들이 거론됐다. 이른바 '여의도 선수들'발로 부도설이 확산했다.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롯데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비율이 높아 여전히 위기론에 휩싸여 있고 자금력이 부족한 지방 건설사들은 실제 부도를 맞아야 했다. 이런 와중에 대형사인 태영건설이 먼저 손을 들었다. 일단 시작은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 돌입 선언이었다.

예상보다 '석 달' 빨리 손 들고 나온 태영건설

PF 보증 채무 9조 1,816억 원. 직접 차입금 1조 3,007억 원. 채권자 400여 곳. (자료: KDB산업은행)

12월 28일 워크아웃을 선언한 태영건설의 현주소. 태영건설의 유동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냥 덮고 가는 분위기였다. 이러다 서울 성수동 오피스 개발 사업 관련 480억 원 규모의 PF 채무 만기가 도래했다. 태영건설이 '백기'를 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PF 대출 만기가 줄줄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태영건설이 안고 있는 대출 만기는 3,956억 원. 올해까지 관리해야 할 PF 관련 우발 채무도 무려 3조 6,027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4천억 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PF 우발채무 부담은 심각하게 위험한 수준이다.

우발채무는 기업으로선 예기치 못하게 떠안는 빚을 말한다. 부동산 개발에 참여한 시공사가 PF 대출 보증을 선 뒤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직접 떠안게 되는 빚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원자잿값 상승, 금리 상승 등 온갖 악재로 인해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니 건설사 빚은 쌓일 수밖에 없었다. 태영건설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478.7%. 시공 능력 평가 35위 내 건설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태영건설에서 끝일까? 시작에 불과하다는 징후가 보인다. 한국신용평가가 평가하는 건설사 20여 곳 가운데 장기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곳은 GS건설(A+)과 롯데건설(A+), HDC현대산업개발(A), 신세계건설(A) 등 4곳이다. 이 가운데 롯데건설과 신세계 건설은 과중한 PF 우발채무를 이유로 들었다.

한신평은 "금융시장에서 PF 관련 업종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함에 따라 건설사들은 당분간 신규 자금조달은 물론 기존 차입금 또는 PF 유동화증권 등의 차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제2, 제3의 태영건설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만기 회사채 153조…사상 최대 왜?

채권 시장 전체로 위기가 확산한다. 153조 원.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전체 회사채 물량이다.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른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153조 원 가운데 일반 회사채는 69조 8,596억 원. 2021년부터 3조 원대로 증가하다가 올해는 무려 10조 원 이상 급증했다. 나머지 82조 9,534억 원은 카드채와 캐피탈채를 합한 물량이다.

올해 만기 회사채 물량이 폭증한 이유는 뭘까? 재작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발행사들이 조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만기가 짧은 1~2년짜리 채권 발행을 마구잡이식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태영건설 사태로 자금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당초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은 총선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예상보다 석 달 정도 빨라졌다. '쉬쉬'만 하기엔 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자기 책임'까지 강조한다. 버틸 수 없으면 미리 알아서 손 들라는 얘기다. '총선 전까지 부동산 PF 부실이 터지지 않고 관리될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금융시장은 재작년 9월 전까지만 해도 잔잔한 연못처럼 보였다. 수면만 보면 그랬다. 물밑에선 마구 꿈틀꿈틀하고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았다. 이때 레고랜드라는 작지 않은 돌이 하나 던져졌다. 이때 크게 한번 출렁거렸다.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니 조금은 잠잠해지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태영건설이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예상보다 빨랐다. 지금은 또 어떤 건설사가 뒤따라 나올지 지켜보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굳이 누가 돌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 이미 물밑에 뭔가 있다는 걸 다 알게 됐다. 물밑에 가만히 있어도 조만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연못 물이 급속도로 마르고 있기 때문이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