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를 조롱하려면 나부터 이기고 해라 [K콘텐츠의 순간들]
2023년에 달성한 사회적 성과가 있다면, ‘MZ 세대’라는 개념이 청년 담론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2019년 시장 트렌드를 분석하는 신조어로 탄생해 정치·경제·기술·문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았던 ‘MZ 세대’라는 이름은 팬데믹으로 위기를 맞은 시장의 마케팅 해법, 젊은 세대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관습적 수사로 활용되다가 어느덧 세상의 모든 ‘밉고 서툰 것’을 묶어서 부르는 만능 대명사가 되었다.
2년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영지가 말했다. “MZ라면 정말 진절머리가 납니다!” 나 역시 ‘MZ’라는 두 글자에 몸서리를 치느라 이 원고는 몇 주 동안 진척이 없었다. 이 지겨움엔 미디어의 책임이 컸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시청한 ‘MZ 예능’은 대체로 ‘위계와 규범을 따르지 않고 소통에 미숙한’ MZ 세대의 단면을 반복적인 웃음 코드로 이용하는 콘텐츠 일색이었다. 〈SNL 코리아〉의 ‘주기자가 간다!’(2021), ‘MZ 오피스’(2022)가 대표적이었다. 방송은 ‘공적인 자리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인물’ ‘업무시간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는 인물’을 MZ 세대의 전형으로 묘사하며 인기를 끌었다. 나는 스스로 내가 MZ 세대라는 걸 실감한 적이 없음에도, 이 콘텐츠들을 볼 때면 수시로 해명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아는 MZ 중에 저런 사람은 없는데? 있다 한들 그것이 우리 세대만의 특징인가? 혹시 당신들이 조롱하고 싶은 건 ‘세대’가 아니라 ‘나이’가 아닐까?
세상은 MZ를 집요하게 비난하면서 그들이 자라온 환경이나 경험은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잠깐의 관용을 베푸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MZ가 소비자나 유권자가 될 때뿐이었다. ‘예의도 없고 버릇도 없고 끈기도 없는’ ‘멘탈은 약하지만 개성은 강한’ ‘경쟁에 익숙한 개인주의자’. 나는 MZ 세대가 그러한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었다. 거듭된 사회적 참사와 그로 인한 후유증을 겪고, 휴가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는 고용 형태로 일을 하며, 전세 사기와 재난으로 인한 주거의 위협을 감수하는 대다수의 MZ는 사회가 가르쳐준 대로 매 순간 ‘각자도생’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기에 그 대단한 조롱에 분개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MZ 세대는 자기가 MZ 세대인 걸 모른다”라고 했던 이영지의 말 속엔 이런 이유도 있다는 것도.
내가 속으로 분노를 삭이는 동안 누군가는 직접 움직였다. 유튜브 〈사내뷰공업〉의 기획자인 1996년생 김소정은 ‘MZ를 조롱하고 싶다면, 나부터 이기고 하라’는 엄청난 맷집을 드러내며 세상에 등장했다. 카페·패스트푸드점·놀이공원·극장 매표소·호텔 뷔페와 같은 ‘MZ 일터’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우당탕탕 알바공감 시리즈’, 2023년까지의 한국 중고등학교 생태계를 다룬 ‘사탄들의 학교에 빌런의 등장 시리즈’,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다큐 황은정’ ‘다큐 김혜진’ 시리즈까지. 특유의 관찰력과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1인 30역을 기본으로 소화해내는 Z세대 콘텐츠 기획자 김소정은 등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MZ 인류학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획득하고 MZ들의 플랫폼을 누구보다 빠르게 장악했다.
처음 봤을 땐, ‘마침내 세상이 MZ마저 MZ를 놀리게 만든 결과’라고 생각했다. 〈사내뷰공업〉의 문법은 〈피식대학〉의 ‘05학번 이즈 백’이나 ‘기안84’의 만화 〈복학왕〉처럼 특정 시기 10대·20대 사이에 형성된 문화와 정서를 재현하고, ‘이거 나만 이래?’ 하는 1인칭 시점의 공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게 뺀 아이라인과 똥머리 가발을 쓰고 다니는 ‘좀 노는 애’ 황은정, 자신을 ‘인간 복숭아’라 생각하는 ‘4차원 콘셉트’ 소녀 김민지, 건조한 독설로 다른 아이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애정결핍 신지유, ‘진성 애니 오타쿠’의 특징을 모두 갖춘 황한솔, 먹는 것을 좋아하고 특유의 털털함으로 학급의 모든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홍유경까지. 〈사내뷰공업〉은 MZ의 교실 속에 존재했던 모든 10대의 유형을 집요하게 구체화하고 그들의 사소한 습관들을 흉내 내어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사내뷰공업〉은 흉내를 통해 세대 내부를 섬세하게 해설한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다른 작품들과 차이를 보인다. 〈사내뷰공업〉은 먼저 ‘M’과 ‘Z’의 세대부터 구분했다. 〈사내뷰공업〉은 밀레니얼(M)에 속하는 2000년대 중학생 ‘황은정’과, Z세대에 속하는 2023년도 중학생 ‘김민지’가 향유하는 문화와 유행의 차이를 보여주고 비교하면서 MZ 세대에게 축적된 경험에도 순서와 흐름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쉬운 비난을 위해 억지로 묶어둔 ‘M’과 ‘Z’를 갈라서 만드는 계보는 MZ 시청자로 하여금 이 콘텐츠가 ‘우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나아가 MZ라는 세대의 이름을 수단에서 지우고, 세대 스스로가 자신의 특질을 긍정하는 결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시청자를 소비자로.” 유튜브를 활용하는 무수한 회사들이 이 문장을 섬긴다. 〈사내뷰공업〉은 MZ를 가장 잘 이해하는 콘텐츠로 평가받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뷰티 콘텐츠 제작사 '파괴공작소'에 소속된 채널이기에 이 모든 것이 ‘1020 MZ 소비자’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것이란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짜 MZ’ 시대에 등장한 ‘진짜 MZ’
‘이것이 광고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이 일상이 된 MZ 세대는 유튜버의 작은 협찬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에 〈사내뷰공업〉은 ‘소비자’로 이용되는 것을 기만으로 느끼는 ‘MZ 시청자 집단’의 특질을 빠르게 파악하고, 채널을 독자적 IP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가 초창기 ‘바이럴’을 위해 만들어진 숏폼에서, 점차 호흡이 긴 영상으로 패턴이 바뀌어가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러한 노력은 MZ가 짧은 숏폼에만 반응하는 세대가 아니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며 그들의 진심을 움직였고, 또한 그 진심은 〈사내뷰공업〉을 구독자 100만을 앞둔 ‘MZ 유튜브’의 대표 채널로 자리 잡게 했다.
‘시청자를 소비자로 보지 않겠다’는 〈사내뷰공업〉의 의지와 MZ를 향한 진정성은 ‘다큐 김혜진’ 시리즈에서 빛을 발한다.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 ‘김혜진’의 학창시절과 일상을 다룬 ‘다큐 김혜진’은 MZ를 놀리는 건 좋아하지만, 그들이 어떤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 세상을 향해 조금 더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지방을 떠나야 괜찮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일자리 구조,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살 만한 집을 구할 수 없는 수도권의 주거환경, 아르바이트 서너 개를 해도 생활이 빠듯한 높은 물가, 이렇게 어렵게 대학 생활을 마친다 해도 온전히 커리어가 보장되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 ‘김혜진’은 이 모든 불안을 껴안고도 삶을 버텨내기 위해 자신을 몇 번이나 다잡았던 김소정 PD 본인의 실제 경험과 성격이 반영된 캐릭터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진짜 MZ’의 삶을 유쾌하게 또 처절하게 구현한 작품은 많은 시청자의 진실한 공감을 얻어내며 〈사내뷰공업〉이 왜 MZ에게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가 되었는지 증명해냈다.
‘청년’이 ‘청년의 삶’을 직접 호명했기에 성공한 콘텐츠 〈사내뷰공업〉은 MZ와 함께 무엇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겐 가장 좋은 지침서다. 그들이 만든 영상 아래 시청자가 남긴 댓글들을 읽어보라. ‘오마카세를 먹으러 다니고 호캉스를 즐기는 사치스러운 세대’라는 진부한 비난 바깥에 이렇게 많은 MZ들이 인정과 공감 그리고 말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일은 힘들다. 사람은 늘 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게 어디 MZ만의 특성인가?
‘세대’를 이해하고 싶다면 알파벳을 지우고 그 세대가 겪어온 사회와 경험을 살펴라. 그리고 조금만 지켜봐 달라. 아주 오랜 문제가 될 세대 간의 갈등은 그런 인내와 관용이 없다면 해결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자부심을 찾게 된다면, ‘세대’는 자연스레 ‘인구’와 ‘돌봄’으로 유의미한 확장을 이룰 수 있다. 이런 간절한 호소에도 여전히 MZ를 이해하기 힘들다면 1997년생 시인 고선경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곁들여보자. ‘우리가 궁금한 건 더 재미있게 놀 방법이었는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살 걱정 죽을 걱정을 하라고 한다/ 별걱정을/ 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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