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에서 동물활동가로…“착취 당하면서도 말 못 하는 이들 대변”

김지숙 기자 2024. 1. 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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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김지숙이 만난 애니멀피플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 김도희 소장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 소장이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2023 꽃개 조형전’에서 발언하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김도희 변호사는 오랜 기간 정신장애인, 노숙인의 권리를 대변하는 일을 해왔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센터장으로 일했고, 얼마 전까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근무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동변)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동물권소위원회 활동 등으로 ‘동물권 변호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최근 아예 동물단체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 소장을 맡고 지난해말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인권변호사가 전업 동물활동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 변호사를 지난해 12월1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 찻집에서 만나 이유를 물었다.

동물에 대한 관심은 2017년 동거를 시작한 두 마리의 고양이 보리와 나무를 ‘모시면서’ 시작됐다. 그는 최근 출간한 책 ‘정상동물’에서 고양이와의 만남이 ‘지상 세계(인간의 세계)와 지하세계(비인간의 세계)가 뒤집히는 경험’이었다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 강한 인력에 휘말린 건 지금 생각해도 최고의 업이고, 운이고, 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며 구체화 됐다. 활동하던 연구공동체에서 동물권 세미나를 열고 ‘동물법비교연구회’를 찾아다니며 동물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혀가던 시기,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단체의 법률자문위원으로 산천어축제, 돌고래쇼, 개 경매도살장, 수의대 실험실 사건 등을 고발했다. 소수자 권리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 끝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김도희 변호사의 새 책 ‘정상동물’.

“알면 알수록 제가 하고 있던 활동과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동물은 모든 동물 착취산업의 당사자이면서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잖아요. 여기가 바로 불모지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동물의 편에 서기로 했다. 결심이 서고 나서도 선뜻 결정을 못했다. 그러다 이지연 대표의 한 마디가 그의 가슴을 후려쳤다. “변호사님, 비건 세상 만들고 싶다면서요? 그럼 이 일(활동가)을 해야 돼요!”

그의 열정에 불을 지핀 ‘비건 세상’이란 무엇일까. 비건은 동물을 먹고, 입고, 쓰는 것에 반대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사람·문화를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비거니즘은 반소비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은 소비를 부추기고, 그 소비란 자본이 만들어 낸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겁니다. 비건은 이렇게 주어진 선택 바깥의 삶을 살려는 생활 방식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비건은 저에게 자유로움이고, 비건 세상은 ‘나의 해방이 너의 해방이 연결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죠.” 공장식 축산이 일으키는 기후위기, 동물학대 그리고 인간 중심사회에서 소수자로서의 소외당하는 동물이 하나로 연결된 문제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건이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 소장이 강원 인제군 ‘달 뜨는 마을 보금자리’에서 구조된 소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결국 지난해 8월 진실화해위를 나와 미뤄뒀던 책 출간을 하고, 해방정치연구소의 활동 방향과 목표를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연구소의 이름은 비인간정치연구소, 비인간정치프로젝트 등 후보도 있었지만, 그가 꿈꾸는 ‘비건 세상’에 방점을 찍어 해방정치연구소로 지었다.

“동물은 모든 면에서 소외되어 있어요. 심지어 기후불평등을 말할 때도 가장 취약한 계층은 동물인데 이 논의는 빠져있습니다. 연구소에서 가장 하고 싶은 활동이 바로 기후생태위기와 동물권을 연결짓는 일이에요.” 연구소 활동은 2017년 11월 발족한 동물해방물결의 리부트(재시동)과도 맞물려 있다. 출범 7년을 맞은 단체는 앞으로 기후생태정의, 지역 살림, 동물해방을 결합하는 운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도희 해방정치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 찻집에서 애니멀피플과 만나고 있다. 김지숙 기자

김도희 소장은 그 구체적인 모습이 “인제 소 생크추어리에서 비거니즘 감각을 깨우고, 연구소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동료들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2021년 인천의 한 불법 농장에서 홀스타인종 소들을 구조해 강원 인제의 ‘달 뜨는 마을 보금자리’에서 보호하고 있다. 국내 축산업에서 홀스타인종 수소는 18~24개월 안에 도축되지만, 인제의 다섯 마리의 소는 구조된 뒤 지난해 4살을 넘겼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살아남은 비육우’들인 것이다.

첫 활동은 이미 지난해 11월 ‘21대 국회 개식용특별법안 비교분석 리포트’ 발간으로 시작됐다. 보고서는 앞으로 ‘동향과 물결’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다. 이와 함께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과 연계해 교육 강좌, 세미나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제 막 발을 뗀 해방정치연구소의 신년 목표는 축산업이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 연구, 채식공공화법과 보금자리지원법 마련 등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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