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칭화대 교수직 버리고 창업…中 첨단 제조업 굴기 중추로 우뚝

베이징=이윤정 특파원 2024. 1.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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궈즈펑 스촹과기 창업자 겸 CEO 인터뷰
제품 분석·성능평가 CAE 소프트웨어 전문
중국 특성 살린 설계에 비용 부담도 낮춰
2026년 상장 계획… “세계적 기업이 목표”

중국이 최근 경제 부진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와 잠재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2015년 발표한 10년 단위 국가 전략 ‘제조 2025′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과학기술 자립·자강론’을 기반으로, 전기차·배터리·인공지능(AI)·항공우주 분야는 천문학적 보조금에 힘입어 초고속 성장 중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새해 경제 정책의 첫 번째 핵심 업무로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현대화 산업 시스템 건설’까지 내세우며 제조업 굴기의 야심을 더욱 명확히 드러냈다.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의 교수직까지 버리고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가 있다. 지난해 중국 최대 창업 대회인 ‘하이쿨 글로벌창업가서밋&창업경진대회’에서 1등상을 받은 궈즈펑(43) 스촹과기유한공사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그 주인공이다. 스촹과기는 다이캐스팅(die casting·금속을 거푸집에 부어 한 번에 제품을 찍어내는 것) 과정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엔지니어링(CAE)’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다. 설계·분석·성능평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CAE 소프트웨어는 제품 양산 전 결함을 발견해 수정할 수 있어 제조 과정의 시간적·비용적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항공우주 등 고가의 복잡한 제품을 만드는 첨단 제조업일수록 CAE 소프트웨어가 필수적이다.

촬영=이윤정 기자, 그래픽=손민균

궈 CEO는 칭화대에서 박사 졸업논문 1등상, 특등장학금 등을 휩쓸며 ‘10대 우수대학원생’ 칭호까지 받을 만큼 학자로서 승승장구했다. 아내를 제외한 모든 지인이 창업을 만류한 이유다. 그러나 그는 도전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2016년 창업 후 8년이 지난 지금, 매출은 매해 200~300%씩 성장하고 있고, 기업 가치는 6억위안(약 1100억원)까지 불어났다. 2026년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최대 20억위안(약 3700억원)까지 인정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엔 중국 정부의 차기 유니콘·글로벌 기업 육성 프로그램인 ‘전정특신기업’에 선정되는 쾌거도 이뤘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CAE 소프트웨어 시장은 92억달러(약 12조원·2022년 기준) 규모다. 2023~2030년 연평균 성장률은 중국 등 여러 국가의 제조업 성장에 힘입어 13%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궈 CEO는 중국 제조업 굴기에 올라타 스촹과기를 “세계적으로 위대한 회사”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 목표다. 전기차에 이어 항공우주까지 진출하며 중국 핵심 제조업의 중추로 거듭나고 있는 궈 CEO를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하이뎬구 임업대학 학연센터 내 스촹과기 본사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 최고 명문 칭화대 교수직을 33세에 따냈다.

“칭화대에 들어가면 천재라고들 하지만, 나는 천재까지는 아니다. 부모님도 내 학업에 큰 관심이 없으셨다. 내가 칭화대에 입학했다는 것을 신문을 보고 아실 정도였다. 대학 시절에도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수업에 성실하게 참석하기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2004년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CAE 기술을 연구 방향으로 선택했고, 이때 학업에 제대로 눈을 떴다. 박사과정 당시 2년을 꼬박 랩실에서 보낼 정도로 몰두했다. 교수로 직행한 것은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고, 운도 좋았다.”

―안정적인 칭화대 교수직을 버리고 창업을 선택한 계기는.

“학교에 있을 때 논문을 많이 썼는데, 연구 내용이 너무 앞서가 있다 보니 현실과 괴리가 컸다.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2016년 창업 당시는 중국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열풍이 불던 때였다. 이를 위해선 CAE 소프트웨어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중국은 이 부분이 약하니 내가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아내를 제외한 주변인 99%가 창업을 만류했지만 밀어붙였다. 다행히 제조업 부문에 몸담고 있는 고향 친구가 우리 기술을 알아보고 지인들을 끌어모아 2000만위안(약 40억원)을 투자해 줘 시작할 수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 창업에 대한 확신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CAE 기술은 전기차뿐만 아니라 전 제조업에 필수적이다. 자동차를 만들 때 금속을 거푸집에 부어 한 번에 제품을 찍어내는 다이캐스팅으로 70개의 부품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예전에는 부품 하나하나 점검해야 해 하나당 1분, 총 70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이 70개의 부품을 한 번에 다이캐스팅할 수 있다. 대신 작은 부품들이 뭉치면서 형태 변형, 성능 다운 등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CAE 소프트웨어로 점검할 수 있다. 시간도 70개 부품을 한꺼번에 검사해 1분이면 끝난다. 기업은 시간·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고, 소비자 가격도 내려갈 수 있다.”

지난 2일 중국 베이징 하이뎬구 임업대학 학연센터 내 스촹과기 본사에서 만난 궈즈펑 CEO. /이윤정 기자

―세계 CAE 소프트웨어 시장은 미국, 독일 등 제조업 강국이 꽉 잡고 있다. 중국 기업들도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시장 침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주변에서 만류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데다, 고객사 확보도 쉽지 않다. 이미 다른 CAE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제품을 교체하려면 그에 따라 생산 라인도 모두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기간 내 매출을 내기 어렵다. 게다가 처음엔 기술적으로도 완전치 않았다. 한 대기업 고객사 앞에서 제품을 설명하는데, 프로그램이 갑자기 붕괴됐던 아찔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지리자동차 산하 전기차 기업 지커, 이치자동차 산하 부품 기업 이치주조, 창안자동차 등 대형 완성차·부품 기업들을 대거 고객사로 두고 있다.

“프로그램 시연에 실패했을 때, 당시 대기업 담당자들은 솔루션 개발이 완료된 후에 다시 얘기해 보자며 오히려 우리를 다독여줬다. 그만큼 이들도 우리 기술이 필요했던 거다. 스촹과기는 중국 기업들의 특색을 최우선으로 반영했다. 학생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컨트롤 방식을 간소화했고, 온라인 고객 관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프로그램을 구독해 사용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방식을 채택해 비용도 확 낮췄다. 기존 CAE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고가의 비용 때문에 대기업을 위주로 마케팅하지만, 우리 제품은 중소기업도 사용할 만큼 부담이 적다.” 현재 스촹과기는 1000개 이상의 기업 유료 고객을 확보했다.

―회사 성장세를 숫자로 설명해달라.

“현재 시리즈 A까지 마쳤다. 2021년 IDG캐피탈(텐센트, 바이두 등에 초기 투자한 사모펀드 운용사)에서, 2022년엔 세콰이아, 중관춘과학성펀드, 중국인터넷투자펀드에서 투자를 받았다. 기업 가치는 6억위안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연간 매출은 지난해 2000만위안(약 40억원)을 넘어섰는데, 이는 전년 대비 300%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4000만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지출이 많다보니 적자 상태지만, 올해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고, 내년부터 순이익이 날 것으로 전망한다.

창립 10년차인 2026년에는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그때 연간 매출은 1억5000만~2억위안까지 늘어날 것이고, 기업 가치도 15억~20억위안까지 인정받을 것으로 자신한다.”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CAE 소프트웨어 시장의 성장 전망은.

“CAE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앤시스(ANSYS)의 경우 1년 매출이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2022년 기준)에 달한다. 매출 95%가 중국 외 시장에서 나오고 있고, 대기업에만 판매하는데도 이 정도 수준이다. 중국만 보면 향후 연간 30억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 20여개 기업 중 대부분이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연구 기업이지 우리처럼 고객에게 직접 인정받은 기업은 없다. 아직 이 분야는 1%도 개발되지 않았고, 나머지 99%는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이다.”

―스촹과기와 창업자 개인의 목표는.

“2026년 상장 전까지는 자동차 부문에 대해 더 깊게 연구하고 고객사를 확대하는 한편, 항공 우주 분야에서도 결과물을 내는 것이 목표다. 여기에 CAE 소프트웨어와 AI의 결합도 연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완벽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려 한다. 우리의 최종 무대는 중국이 아닌 세계 시장이다. 이미 제너럴모터스(GM)와도 협업 논의를 시작했다. 기업가 개인으로서는 이 회사를 세계적으로 위대한 회사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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