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의 미래]③ 규제에 성장 가로막힌 보험산업… 신흥 시장까지 놓친다
각종 규제에 3년 늦어진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해외사업과 요양산업 진출도 규제에 속앓이
고령화·저출산으로 인한 수입보험료 감소 등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보험사들의 볼멘소리가 최근 거세지고 있다. 상생금융을 표방한 금융 당국의 시장 개입과 각종 규제가 보험산업의 외연 확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서다. 규제 일변도가 계속되면 보험산업은 지속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지난해 8월 단기납 종신보험과 어린이보험, 같은 해 10월 응급실·독감 특약 판매에 각각 제동을 걸었다. 그밖에 간호·간병보험의 입원일당과 운전자보험의 변호사선임비용 상품도 사실상 규제를 당해 보장 한도가 줄었다. 금융 당국은 해당 상품이 가입금액이 과도해 과잉진료 등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거나 출혈경쟁으로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상생금융을 이유로 금융 당국이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게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앞서 금융 당국은 상생금융에 동참해달라는 차원에서 자동차보험료를 인하하라고 꾸준히 요구해 왔다. 2010년부터 자동차보험 누적 적자만 8조9869억원에 달하는데, 최근 3년 사이 손해율이 안정되자 곧바로 보험료 인하를 촉구한 것이다. 결국 대형 보험사들은 올해 2월 중순 책임이 시작되는 계약부터 보험료를 평균 2.5~2.6% 낮출 예정이다.
실손보험도 손해율이 개선된 1세대를 중심으로 보험료를 인하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는 게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1세대 보험료를 4% 인하하고, 2세대는 1% 올리기로 했다. 이를 두고 보험업계에선 “자율시장 경쟁 체제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는 불만부터 “보험료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나중에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 3년 늦어진 보험 비교·추천…요양산업 진출도 규제에 속앓이
법적 규제로 보험산업 외연 확장에 제동이 걸린 사례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1월 출시 예정인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도 2020년부터 논의돼 왔지만, 금융 당국 규제에 막혀 3년이나 늦어졌다.
앞서 네이버파이낸셜은 2020년 7월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보험사들과 개별 협상을 진행했다.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보험에 가입할 경우 일부 금액을 수수료 명목으로 받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험업법이다. 현행법상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은 보험설계사·대리점·중개사뿐인데, 보험업 라이선스가 없는 네이버파이낸셜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네이버파이낸셜이 라이선스를 획득할 수 있는 제도도 존재하지 않았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보험 비교·추천은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단순 광고에 해당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결국 사업 자체를 포기했다. 이후 카카오페이·토스 등 일부 업체만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2021년 9월 보험 비교·추천을 판매 행위로 규정해 사실상 서비스를 금지했다. 인슈어테크(보험과 기술의 합성어) 보맵도 마이데이터 사업권을 획득해 보험 비교·추천을 강화하려 했으나 보험대리점 겸업 허용 불가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내놓지 못했다. 금융 당국은 1년이 지난 2022년 8월이 되어서야 보험 비교·추천을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해 규제를 풀었다.
최근에는 생명보험사들의 요양산업 진출도 법적인 규제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KB라이프생명이 위례·서초·평창 등 도심에 요양시설을 만들어 돌풍을 일으키자 신한라이프와 삼성생명, NH농협생명도 요양산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10인 이상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하려면 사업자가 토지와 건물을 소유해야 한다는 노인복지법 규정이다. KB라이프생명처럼 도심에 요양시설을 확충하려면 보험사가 직접 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세워야 하는데, 수백억원의 초기비용은 물론 3년 이상의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요양시설 임차 허용 등 다양한 대안이 떠오르고 있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시설에 입소하는 것보단 자신의 집에서 요양서비스를 받아보는 게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라며 “방문 요양·간호·목욕 서비스를 한곳에서 다 받아볼 수 있는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보완책이 있다”고 했다.
◇ 신흥 시장 빼앗길라… “추가 규제 완화 검토해야”
또 다른 규제 개혁 대상은 보험사들의 해외진출 부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일본·독일·프랑스의 총당기순이익에서 해외사업 부문 비중은 66.8%에 달하는 반면 국내 생명보험사는 1.5%, 손해보험사는 0.5%에 불과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 4개사와 손해보험사 7개사 등 총 11개사가 미국·영국·스위스·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11개국에 39개 점포를 설치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5년 전인 2007년 9월 기준(10개사 16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자금조달 규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보험사가 해외에 진출할 때는 통상 합작법인·신설투자나 현지 보험사 인수·합병을 하는데, 투자 대비 위험부담이 높아 자금조달 수단을 다양화시킬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보험사는 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경우에 자금차입을 할 수 있고, 후순위채·신종자본증권 발행한도는 자기자본의 1배 이내로 한정돼 있다.
반면 일본·프랑스·영국은 보험사 채권 발행 목적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이 중 일본은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신속히 해외사업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국내 보험사의 해외진출 현황과 과제’를 통해 “보험사가 해외사업 확대를 위한 지분투자 등을 수행함에 있어 대규모 자금조달이 수반되기 마련이다”라며 “보험사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필요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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