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 20대부터 교사 은퇴 70세까지… 세대 넘어 뜨거운 문학 열정

이영관 기자 2024. 1.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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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本紙 신춘문예 당선자 8인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한 손을 들어 옆으로 뻗었다. 높이는 제각각이지만, 이 손으로 작품을 쓰겠다는 열정은 다르지 않다. 왼쪽부터 권희진(단편소설), 김아름(동화), 이정(희곡), 추성은(시), 조수옥(동시), 최의진(문학평론), 김지연(미술평론), 조우리(시조)씨. /오종찬 기자

신춘(新春)은 언 땅에서의 기다림을 마치고, 미지의 계절에 발을 내딛는 때. 202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기다림 역시 혹독했다. 8개 부문 9538편으로 4년 만에 최대치가 응모되며 치열한 경쟁을 거쳤다.

◇”8번 떨어졌지만, 배움이 즐거웠다”

올해 당선자들은 여러 세대를 아우르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나이 평균은 40.1세로 작년(33.6세)보다 높아졌지만, 2022년(44.4세)에 비하면 낮아졌다. 올해는 당선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특징이 보인다. 최의진(24·문학평론)씨가 최연소이며, 조수옥(70·동시)씨가 최고령. 최씨는 2017년 유수연(23·시)씨 이후 7년 만에 최연소 당선자로, 작년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추성은(25·시)씨 또한 작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20대 당선자다. 30대가 김아름(36·동화), 권희진(39·단편소설), 김지연(39·미술평론)씨로 셋, 40대가 조우리(41·시조), 이정(47)씨로 둘이다.

동시 당선자 조수옥씨는 최고령임에도 동심을 가꿔 결실을 맺었다. 199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시집을 냈고, 만년(晩年)에 동시의 매력을 느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교류한 영향이 컸다. 조씨는 “동시는 마음속 동심을 소환하는 일인데 자석처럼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며 “매일 문우들과 합평 모임을 하다 보니, 아내에게 구박을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시조 당선자 조우리씨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만 9번 응모했다. 심사평에 몇 차례 언급됐지만, 번번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2008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이후, 오랜 꿈인 시조로 돌아왔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 시조를 접했다. 교과서에서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라는 시조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며 “떨어질 때마다 실망하기도 하였지만, 이내 매년 또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배움이 즐거웠다”고 했다. 문학평론 당선자 최의진씨는 당선작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당선작이 신춘문예를 위해 처음 쓰기 시작한 글이 아니라, 대학 생활 4년간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 온 결과물”이라며 “제게 대학은 다른 무언가를 위한 준비 단계나 거쳐 가는 과정이 아니라 정말 치열하게 문학을 공부하고, 부딪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특정 장르 아닌, 쓰는 게 중요했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노력의 가치를 증명한 당선자들이 있다.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한 희곡 당선자 이정씨가 대표적. 사춘기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재능의 벽을 깨닫고, 극작을 전공했다. 막상 극작과에선 “희곡이 매력적이었지만 낯설고 어려운 느낌이 있어서 푹 빠지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그는 “문학 바깥에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는 일을 다양하게 했다. 그러다 슬럼프가 길어져서 ‘나는 이제 끝인가 보다’ 했다”며 “신춘문예 당선을 향한 의지 때문에 희곡을 다시 써보기로 했다”고 했다.

동화 당선자 김아름씨가 지나온 궤적도 일직선이 아니었다.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 20대 때부터 여러 일을 했다. 그는 “언젠가는 글쓰기에 다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노동에 임했다”며 고깃집, 볼링장, 고객센터 상담원 등 10개 넘는 직장을 나열했다. 지금은 아이들을 상대로 독서 논술 수업을 9년째 하고 있다. 그는 “독서 논술 수업을 하면서 요즘 아이들이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쓰는 글은 어떤 글인지 유심히 보려고 애썼다”고 했다. 5년 전부터 한 문학 모임에 들었고, 18개월 된 아이를 키우며 이번 당선작을 썼다.

◇”욕심을 덜어낸 후에야 작품을 만났다”

당선자들은 대부분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고 입을 모았다. 시 당선자 추성은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작가를 꿈꿨지만, 의외로 책을 좋아하진 않았다. 읽는 것보다 쓰는 걸 더 좋아했다”며 “좋아하는 것의 수가 적으면, 누구나 그렇듯 몰두하게 되고 욕심이 생긴다. 제게는 시는 그런 것 중 하나였다”고 했다. 나이는 25살이지만, 신춘문예 응모는 고등학교 때 시작해 벌써 10년째. “좋아하는 시인이 고등학생 때 등단했기 때문에, 저도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욕심을 덜어낸 후에야 제 시를 찾을 수 있었어요.”

단편소설 당선자 권희진씨는 30대에 접어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뒤 회사를 다니다가 무작정 퇴사했다. “소설은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노트북만 있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글 쓰는 일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3년 전부터 합평 모임 등을 나갔지만, 소설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점차 냉정해졌다. “작년엔 등단 같은 목표는 완전히 내려놓은 채로 썼어요. 언젠간 더 좋은 글을 쓸 날이 오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쓰는 일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미술평론 당선자 김지연씨는 “공부하며 힘든 시간 위로가 되어준 미술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홍익대 예술학과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며 오래 공부했다. 평론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당찬 포부를 밝혔다. “어떤 장르이건 지면은 늘 부족하지만, 비평은 더더욱 부족해요. 동시대 작가들과 호흡하며 언젠가는 쓸모 있는 비평을 생산하고 싶습니다.” 올해 시상식은 이달 12일 오후 5시 조선일보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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