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학생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김기동 2024. 1. 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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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한 번꼴로 대입 제도 개편
학생·학부모, 교사에게도 ‘난수표’
2028학년도 선택·심화수학 없애
신뢰성 높이고 대학 자율권 줘야

이론의 여지없이 입시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입시제도를 둘러싼 불만은 끝도 없다. 공정만 앞세우면 획일적 줄세우기라고 비판받고, 전형의 다양화는 늘 불공정 논란에 휩싸인다. 절대평가는 성적 부풀리기가 걱정스럽고, 상대평가는 학교를 전쟁터로 만든다. 그러다 보니 수험생을 둔 학부모 입장에서는 ‘내 자식에게 가장 유리한 것’이 공정한 제도다. 입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웃픈’ 현실이다. ‘입시한파’라는 단어도 어찌보면 한 번의 시험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절박감이 빚어낸 시대의 산물일 것이다.

1945년 대학별 단독시험제에서 출발한 대입제도는 1969년 고교 교과목 중심의 대입예비고사로 바뀌었다. 이후 대학별 시험을 치르는 ‘본고사 세대’가 등장했다. 예비고사·본고사 체제는 1980년까지 유지됐지만 과외 금지를 내건 전두환 정권을 거쳐 1982년 대학입학학력고사가 시작됐고,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큰 틀이 바뀌었다. 해방 이후 입시제도는 굵직한 것만 20여차례, 평균 4년에 한 번꼴로 바뀌었다. 세부 기준까지 감안하면 40차례 이상 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김기동 논설위원
그렇다면 80년 가까이 고치고 보완해 현재에 이른 입시제도가 과연 모두에게 환영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3박자를 갖춰야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제는 다르다. 부모는커녕 고교 입시담당 교사마저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대입제도는 난수표가 돼버렸다. 잦은 입시제도 개편이 빚은 병폐다.

교육부가 또다시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선택 과목을 없애 선택 과목에 따른 유·불리를 없앤 게 골자다. 모든 수험생은 진로와 관계없이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이 아닌 같은 문항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내신도 예체능을 제외하고 9등급 상대평가에서 5등급 상대평가로 바뀐다.

심화수학이 사교육을 유발하고 학생·학부모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게 이유지만, 교육부는 이미 ‘양치기 소년’이 된 지 오래다. 학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공계 학생이 문과 수준의 수학 시험만 보면서 학력 저하와 첨단 과학기술 인재 양성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미적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인공지능(AI)의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게 말이 되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공계가 건축학과와 같은 5년제로 갈 것이라는 탄식도 쏟아진다. 정상적인 대학수업이 가능하도록 1년 정도의 수학 과외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번 개편이 통합수능에 따른 이른바 이과의 ‘문과 침공’을 줄이는 데 일부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학생의 학습 부담과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이 준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수능 중요도가 커지면서 외고, 국제고, 인문계 학생의 의대·이공계 쏠림이 심화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취업이 용이한 이과 쏠림은 대세다. 통합수능이 문과 침공의 불쏘시개가 됐을 뿐이다. 부작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과 지원생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고,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는 인문사회 학문의 황폐화나 붕괴도 가속화할 것이다.

어렵다고 가르치지 않고 ‘나몰라라’하는 건 교육이 아니라 방치다. 수월성 교육을 주창해온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입시 자체가 경쟁인 만큼 100% 만족할 제도가 나오기 힘든 건 사실이다. 정권과 시대적 분위기 등에 따라 입시정책이 조변석개했다. 혼란과 불안감은 모두 학부모와 수험생의 몫이었다. 학생은 교육 대상자이지 정책의 실험무대가 아니다.

애초부터 공정한 입시는 없을지도 모른다. 경쟁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입시제도는 타당성과 신뢰성 확보가 공정 그 자체일 수 있다. 정부 정책이 자주 바뀌는 건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는 행위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은 우수 인재를 싹쓸이하려는 ‘입도선매’에 나선다. 다른 대학에 뺏기지 않으려고 가뜩이나 복잡한 전형이 해마다 더 꼬인다. 대학의 책임을 강화하는 장치와 더불어 대학에 자율적 선발권을 주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정권은 짧고 교육은 길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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