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노루와 도루
춥다가 안 춥다가 한다만 겨울밤 방에 불은 때야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산토끼처럼 굴을 파고 들어앉아 난로에 쓸 장작개비를 주워 모으는 철이다. 어렵게 나무를 잘라 토막을 내고, 군불을 지핀 뒤 저린 어깨를 감싸고 누우면 눈에서 질금 눈물이 나올라 해. 버튼 하나 누르면 따스워지는 곳으로 도망쳐야 하는데 못 가는 신세.
노루가 뛰는지 개들이 밤중에 하도 짖어 나가봤다. 산에서 두 눈이 번쩍. 신우대 이파리 속을 뚫고 거니는 노루가 분명해. 열매 하나 남지 않은 배고픈 시기다. 개 소리에 놀라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슬픈 눈에서 광선이 쫙~. 노루 말고 도루, 어디로 단단히 튀어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 도망자가 되고 싶은 날이 있다. 귀찮고 불편하고 외로울 때. 차에 기름을 잔뜩 넣고 속옷까지 가방에 챙겼다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도루를 해봤자 금세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게 전부니까.
해태 타이거즈 ‘즉위 시대’, 최초 300도루에 성공한 김일권 선수의 팬이었다. 그는 프로 원년 도루왕에다 그 어렵다는 홈스틸도 두 번이나 달성했다. 하지만 도루 지존은 역시 이종범 선수, 일명 종범신. 요새 젊은이들에겐 이정후 아빠라 해야 알아보고 수그린다덩만. 당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1루 진출에 성공하면, 백퍼 도루를 시도한다고 보면 되었다. 1994년 1월, 30년 전 오늘, 선동열 투수, 이종범 선수, 가수 양수경이 합세하여 ‘투앤원’이란 그룹을 결성하고 음반까지 냈다. ‘사랑하고 있어’란 노래를 <젊음의 행진>이란 인기 방송에 나와 ‘어색하게’ 부르기도 했어. “사랑하고 있어. 언제나 널 볼 수 없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 네가 있어. 사랑하고 있어. 한 번도 말 못했었지만 아마 넌 알고 있을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걸~”
우리는 모두 그 풋풋한 시대를 그리워한다. 시방은, ‘미워하고 있어’ 야만과 죽임의 시대에 온갖 스피커들이 세뇌를 하면서 괴성을 질러대. 살아남으려면 도루하는 법을 익혀야 할 듯싶다. ‘종범신’ 문하생으로 들어가야 하나.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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