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기술과 인식 변화 사이
연말을 이집트 카이로에서 보냈다. 처음 간 이 사막의 나라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도로 시스템이었다. 우선 왕복 6차로를 별다른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없이도 뛰면서 건너는 사람들이 흔히 보였다. 당나귀와 말, 낙타가 끄는 마차도 혼란에 한몫했다. 근래 새로운 다리와 도로가 빠르게 늘어났는데 표지판은 별로 없어서, 깜빡이를 켜고 후진하는 차량도 곳곳에서 보였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광경은, 차선의 존재가 무의미할 정도로, 두 개 차로 안에서 세 대의 차가 함께 달리는 모습들이었다. 앞차가 느리면 경적을 울려 차들이 옆으로 비켜가게 했다. 차선을 비집고 들어가 추월하는 일이 5초에 한 번씩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옆 차가 무리하게 끼어들려고 하자 사이드미러를 접는 상황도 빈번히 발생했다. 마치 달리기 대회에서 군중의 빈틈을 빠르게 비집고 나가는 러너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한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진 나에게, 가이드는 이렇게 차들이 가다 서다 끼어들기를 반복하는 큰 원인 중 하나는 합승택시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독특한 교통수단은, 차에 빈자리만 있으면 길가 어디서든 승객을 틈틈이 싣는 작은 승합차를 일컫는다. 수시로 차를 세우기 때문에 정체가 이어진다. 그러나 대중교통 인프라가 취약한 이 도시에서는 이만한 운송수단이 없다.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깨졌을 때 놀라움의 포인트가 있다고 하지 않나. 도로에서 운전할 때 지켜야 하는 룰이 파삭 부스러진 광경을 보고 나니, 새삼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자율주행 차량이 이 땅에 과연 도입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술을 개발할 때는 룰이 엄격히 지켜지고, 노이즈(잡음)가 극도로 적은 상황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 발생 가능한 돌발 변수를 추가해가며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낸다. 그런데 카이로 도로같이 규칙보다 운전자의 직감과 운전자 간 암묵적 문화가 앞서는 곳에서는 어떤 패턴 학습도 통용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자율주행 시스템이라면, 카이로 도로에서는 모든 순간에 충돌 리스크가 너무 높기 때문에, 차가 한 치 앞도 전진하기 쉽지 않겠다 싶었다.
만일 기어이 이곳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질서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나라들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효용이 증명돼 성공 사례가 쌓여야 한다. 그다음엔 카이로의 일부 구역에 한정적으로 자율주행을 도입한다. 이후 효과가 증명되고 나면,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유인주행의 습관 개선이 이어진다. 기술이 사람의 습관을 바꾸는 그림이 형성된다. 물론 이런 고리는 매우 낙관적으로 봤을 때의 시나리오다. 실질적으론 자율주행 차량 가격도 충분히 낮아져야 하고, 정체의 주요 원인인 합승택시를 대체할 명분도 선제돼야 한다.
이집트 카이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기술을 도입할 때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느냐, 아니면 빠르게 치고 들어가 사람을 바꾸느냐를 두고 늘 의견 충돌이 있어왔다. 2024년은 이런 생각들이 더 강력하게 부딪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결정의 키를 누가 가지게 될지가 개인적으로 올해의 최대 관심사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학습하는 직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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