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 더욱 강해진 동상이몽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 동결과 함께 시장에 상당한 서프라이즈를 던져주었다. 2022년 3월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된 이후 연준은 FOMC에서 단 한차례도 기준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내비친 적이 없었는데, 지난 12월 FOMC에서 현재와 같은 물가 안정세가 이어진다면 금리 인하도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향후 금리 인하 플랜을 담는 점 도표(Dot Plot)에서 2024년 말까지 3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예시하며 이제 금리 인하 사이클로의 태세 전환, 즉 피벗(pivot·금리 방향 전환)의 가능성을 높여준 것이다.
FOMC가 열리기 2주 전 파월 의장은 한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며 추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대응할 것임을 밝혔던 바 있는데, 불과 2주 만에 반대로 돌아서게 되니 시장 참여자들도 상당히 놀라는 분위기였다. 무엇이 연준의 심경 변화를 이끌었을까?
연준은 2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하나는 성장의 극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물가의 안정이다. 영어와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둘 다 90점이 넘어야 합격인데, 영어는 91점, 수학은 65점이라고 가정한다. 이 경우 학생은 수학 점수가 워낙 뒤떨어지기에 수학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영어 점수가 하락하는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너무나 부족한 수학 점수를 끌어올려야 한다. 연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실업률은 여전히 반세기 최저 수준이다. 양호한 실업률로 안정적 성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는데, 이에 연준은 일정 수준 성장을 희생해서라도(경기 침체를 감수해서라도) 물가를 잡고자 했다. 그러나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2년 정도 이어지면서 미국의 물가는 연준의 목표치인 2%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정점이었던 9.1%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아진 3%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수학 점수가 82점까지는 올라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영어 공부, 즉 성장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성장을 바라보니 현재의 5.25~5.5% 수준의 기준금리는 다소 높아 보이기에 향후 물가 안정이 현재의 예상대로만 이어진다면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음을 밝혔던 것이다.
다만 성장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하는 연준의 의도와는 달리 금융 시장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 2년여 동안 긴축 사이클을 겪으면서 상당히 힘겨워했기에 금리 인하라는 표현 그 자체에 상당히 크게 반응했다. 금융 시장은 과거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에 접어들게 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상당히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2001년 기준금리 인하 당시에는 6.5%에 달했던 기준금리는 2년여 만에 1%대 초반으로 끌어내렸다.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5.25%였던 기준금리를 1년여 만에 0%로 낮추고 대규모 양적완화에 돌입했던 바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돌아서기가 어렵지, 인하로 돌아서게 되면 매우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가 진행된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에 금융 시장은 연준의 예상보다 훨씬 강한 금리 인하 기대를 반영, 2024년 1년간 6~7차례 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연준이 전격 금리 인하에 대한 암시를 주면서 예고했던 연간 3차례의 기준금리 인하보다 훨씬 더 나아간 모습이다. 일단 기준금리 인하에 돌입하게 되면 연준이 계속 시장에 끌려가면서 빠른 인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연준의 예고를 넘는 금융 시장의 기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금리 인상기 내내 연준은 더 높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려 하고 시장에서는 인상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는 동상이몽이 이어졌다. 금리 인하로의 피벗 가능성을 시사했음에도 불구, 여전히 연준과 시장의 동상이몽의 갭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둘의 괴리는 2023년 같은 금융 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야기할 수 있는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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