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말로만 ‘국가책임’…돌봄서비스의 구조적 한계
돌봄이 필요한 국민이 살던 곳에서 돌봄을 받으며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달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고령화로 인한 우리나라 돌봄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막상 본인 가족이나 주변에서 곤란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얼마나 막막한 문제인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가족 간의, 또는 도덕적인 갈등을 겪다가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는 것이 대강의 결말이다. 모두 그것이 또한 자기 인생의 결말이 될 것을 예감하지만 애써 잊고 오늘을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이 법으로 이제 돌봄 문제가 막막하지 않고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살던 곳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까? 안타깝게도 그리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돌봄에는 서비스가 부족한 문제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돌봄서비스조차 필요한 사람이 적절하게 받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보통 복지국가에서는 주민에 의해 구성된 일선 지방정부가 돌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돌봄서비스를 총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장기요양보험이나 장애인활동지원 같은 핵심 돌봄 제도를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곳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건강보험공단이나 국민연금공단과 같은 중앙조직 ‘지사’들이다.
이러한 ‘지사’들에는 지역에서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고독사가 일어난들, 간병 살인이나 간병 자살과 같은 비극이 벌어진다 한들, 책임이 돌아가지 않는다.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성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난은 주민 복리에 관한 자치권이 부여된 지자체를 향하지만 정작 지자체는 핵심적인 돌봄 제도와 거리가 있으니 실질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돌봄 책임이 없는 ‘지사’에서 핵심 서비스에 대해 판정하다 보니 돌봄의 진짜 필요보다는 기계적인 점수에 따라 판단을 내릴 뿐이다. 아무리 돌봄이 절실해도 점수 따는 요령이라도 익히지 않으면 등급조차 받기 힘든 배경이다.
그 외 다양한 돌봄서비스를 지자체가 담당하기는 하지만 수십, 수백 가지로 쪼개져 있는 대부분 서비스는 서로 다른 중앙정부 담당 부서에서 제각기 내리는 공문과 지침에 의해 운영되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에서조차 주민의 필요보다는 지침에 엄격하다. 사정이 이러니 돌봄이 필요해지면 필요한 서비스를 알아서 찾아 얻어내야 하는 것은 언제나 국민 몫이다. 구호로는 ‘국가 책임’을 내세우지만, 실은 서로에게 미루며 주민 돌봄 책임을 외면하기 좋은, 그래서 국민만 골탕 먹기 좋은, 편리한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해법은 명료하다. 그래도 지역에 책임이 있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돌봄과 관련된 기관들이 한데 모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돌봄을 어떻게 할지 같이 결정하도록 제도화하면 된다. 그러면 서로 남 탓으로 돌릴 수 없으니 돌봄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고, 지역 관내의 총괄적 관할권을 가진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니 수발뿐 아니라 질병 관리, 식사, 주거, 이동 등 돌봄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방식을 시도했던 것이 지난 정부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이었고, 이번 정부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이다. 이번 법안도 이를 골자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법안 마지막에 이런 돌봄에 대한 판정부터 중앙정부가 정하는 바에 따라 ‘전문기관’에 넘길 수 있도록 단서 조항을 끼워놓았다. 지자체는 핵심 서비스도 모자라 모든 돌봄을 ‘지사’에 넘길 수 있고, ‘지사’들은 돌봄 제도에 관한 기득권을 키울 수 있는 장치이다. 책임이 모이기는커녕 지자체와 ‘지사’들 사이로 분절이 굳어질 위험은 더 커진다. 결국 고령화 위기에도, 돌봄서비스가 서 말이 된다 한들 책임 있게 국민을 위한 돌봄을 꿸 생각은 여전히 없는 셈이다.
김보영 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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