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마야 역법의 독특한 세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10 천간(天干)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12 지지(地支)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함께 순서대로 되풀이하며 진행하는 방식으로 우리 선조는 해의 이름을 정했다. 지난해는 계묘년이었으니 계에서 이어지는 갑, 묘 다음의 진이 모여 올해는 갑진년이 되는 식이다. 10과 12의 최소공배수는 60이어서 갑자, 을축, 병인으로 이어지는 육십갑자는 60을 주기로 반복된다. 갑 다음은 을, 진 다음은 사여서 내년은 을사년이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불법적으로 박탈한 을사늑약이 120년 전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120살까지 살면 환갑 잔치를 두 번 할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환갑을 축하할 기회가 딱 한 번뿐이다.
중미 마야인의 역법은 상당히 독특했다. 매일의 날짜를 표기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먼저 하브(Haab) 역법에서 1년은 20일 길이의 18개의 달에 5일을 추가하는 방식(20×18+5=365)으로 구성되어서 365일을 주기로 반복된다. 한편 촐킨(Tzolk’in) 역법은 20일 길이인 13개의 달로 구성되어 주기가 260(20×13)일이다. 2024년 1월4일은 촐킨으로는 ‘5추엔’, 하브로는 ‘19칸킨’이이서 이 둘을 함께 적은 ‘5추엔 19칸킨’이 오늘 날짜를 표시하는 마야인의 방법이었다.
두 역법으로 함께 표시한 날짜가 다시 반복되는 주기는 365와 260의 최소공배수 1만8980이 365×52와 같으므로 52년이다. 우리가 환갑을 축하하듯이 마야인도 평생 딱 한 번 자기가 태어난 날과 정확히 같은 하브와 촐킨 날짜를 맞게 된다. 마야 역법으로 오늘 ‘5추엔 19칸킨’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52년 뒤의 일이어서 나는 두 번 다시 이날을 맞을 수 없다.
영어 단어 디지트(digit)가 숫자와 손가락의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가 익숙한 10진법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10개라는 단순한 사실에서 비롯했다. 0과 1로 이루어진 2진법에 기반한 4진법, 8진법, 16진법이 컴퓨터의 모든 디지털 계산에는 훨씬 더 편리하다. 우리 손가락이 8개였다면 인류가 더 일찍 디지털 기술을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 봤다.
마야의 20진법은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20개라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하나씩 늘다 20이 꽉 차면 다음달이 시작되는 것이 마야의 역법이다. 20진법은 아주 긴 시간을 재는 마야의 독특한 장주기 역법에도 등장한다. 마야의 하루는 킨인데 20킨이 모여 1위날이 되고, 18위날이 모여 1툰이 된다. 20위날이 아니라 18위날이 1툰이 된 이유는 이렇게 해야 1툰이 360킨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20툰이 1카툰, 20카툰이 1박툰이 되는 식으로 마야인은 긴 시간을 표시했다.
우리가 이용하는 달력 날짜를 장주기 역법으로 환산해 마야의 멋진 그림 문자로 표시해주는 인터넷 사이트(https://maya.nmai.si.edu/calendar/maya-calendar-converter)가 있다. 박툰, 카툰, 툰, 위날, 그리고 킨을 순서대로 적으면 2024년 1월1일은 13.0.11.3.8로 적을 수 있다. 위의 홈페이지에서 2012년 12월21일은 마야의 장주기 역법으로 13.0.0.0.0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날 세상이 멸망한다는 주장이 책과 영화로 만들어져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마야의 고대 신화에 따르면 지금 세상 이전의 세상이 멸망한 시점이 13.0.0.0.0이라고 한다. 과거 언제 이전 세상이 멸망했는지를 표기할 뿐,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 것이 결코 아니다. 놀라운 마야문명이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마야인은 이날 멸망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천년을 축하했듯이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큰 잔치를 벌였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말 ‘올해’는 금년을 뜻하는 ‘옳’에서 왔다고 한다. 이미 ‘온 해’에 대비되는 앞으로 ‘올 해’의 뜻은 아니다.
그래도 난 올해 매일 아침 떠오를 앞으로 ‘올’ 해를 손꼽아 기다린다. 올해 하루하루 떠오를 해는 내 인생에서 볼 마지막 갑진년의 해이고, 올해의 매일은 마야의 역법에서 내가 두 번 다시 마주할 수 없는 날이다. 오늘 해가 뜨면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떠오르지만, 그사이 나를 찾아올 매일의 시간은 나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마지막 기회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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