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빛이란 이름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서울 야경을 만든 이 남자
VR·AR사업 창업 도전한 기계공학도
창업 실패후 미디어아트업계서 활약
엔지니어 기술과 예술감독 비전 합쳐
16년간 200여건 ‘빛 축제’ 연출가로
관광객들이 서울의 밤거리로 나서는 이유 1위는 야경이었다. 서울의 야경이 극대화되는 계절은 겨울, 특히 매년 연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이어지는 ‘서울빛초롱축제’는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의 발길까지 붙잡는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청계천 일대를 빛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이 행사는 연평균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서울의 대표 빛 축제로 자리 잡았다. 15회차를 맞은 이번 행사는 지난달 15일 ‘잠들지 않는 서울의 빛, 화이트 나이트 인 서울’을 주제로 개최됐다.
역대 최대 규모로 최장기간 진행되는 이번 축제의 연출은 토미 림 감독(49)이 맡았다. 순천만 국가정원 워터라이팅쇼와 서울랜드 야간테마 루나파크, 인천 아시안게임 개·폐막식 라이팅쇼 등 16년간 200여 건의 국내 미디어아트 쇼를 연출한 인물이다. “몽환적인 빛 축제를 연출하기 위해선 철저히 현실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그를 매일경제가 인터뷰했다.
창업 실패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토미 림 감독을 위로해 준 것은 크리스마스트리였다. 그는 각종 조명과 음향 장치 등으로 트리를 꾸미며 머리를 식혔다. 미디어아트 업계로의 진출도 취미생활에서 시작됐다. 토미 림 감독은 “나중엔 취미로 만든 작품을 돈 내고 사겠다는 사람과 업체들이 줄을 섰다”며 “미디어아트를 업으로 삼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즈음부터”라고 말했다.
미디어아트 업계에서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아 나가던 토미 림 감독은 이내 답답함을 느꼈다. 작가나 예술감독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작품을 구현해달라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청사진을 만들어도 행사장 등 현장에 이를 구현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며 “기술적인 이해도가 부족한 예술 감독과의 작업은 비효율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토미 림 감독은 엔지니어이자 예술감독이 되기로 했다. 그는 “작품활동을 하며 쌓아온 내 감각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부족한 부분은 배우고 연구하며 채워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토미 림 감독은 “수백만 명의 인파가 작품 옆을 지나다니는 축제의 특성을 고려해 전선과 통신선은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설치해야 한다”며 “이 모든 걸 고려하기 위해선 조명기기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 통신과 전기, 소재, 프로그래밍 등에 대한 복합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연주자에게 악기로 낼 수 없는 소리를 내라고 지시하면 공연이 제대로 돌아가겠나”라고 반문하며 “비유하자면 저는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해 본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토미 림 감독은 구상했던 작품이 그대로 구현되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번 서울빛초롱축제의 대표 작품인 ‘화이트홀(White Hole)’은 빛의 삼원색이 하나로 모여 가장 밝은 흰 빛이 된다는 의미가 담겼다. 구 형태의 스크린을 설치하고, 내부에서 빛을 쏴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토미 림 감독은 조명축제는 준비만큼이나 유지·보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백만 명이 몰리는 겨울 야외 축제에서 작품들이 계속 정상 작동하도록 유지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오늘도 100여 명이 인력이 퇴근 시간도 반납하고 하루하루가 신규 오픈이라는 마음으로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땀 흘리고 있다”며 “관광객과 시민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가시는 게 축제 관계자들의 공통된 바람”이라고 말했다. 서울빛초롱축제는 오는 21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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