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팔도 언어 ‘모듬’…‘싯가’ 따라 크고 작은 행복 한 접시[한성우의 말과 글의 풍경]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비린내·땀내 섞인 공간과 어우러져 살아 움직이는 이름들
의미 안 맞는 간판부터 ‘스키’ ‘세꼬시’ ‘마스카와’ 같은 정체불명 일본어 유래 단어까지
깐깐한 국어 선생의 눈으로 보면 ‘엉터리투성이’지만…결국 우리 언어를 풍성하게 하는 자산
‘소정방(蘇定方)이 왔다(來)’ 해서 소래라고? 단언컨대, 소정방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당나라 군대를 이끄는 소정방이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더라도 땅 이름은 그리 함부로 짓지 않는다. 소래의 한자 또한 ‘蘇萊’이니 이런 지명 유래는 그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굳이 지명 유래를 찾고자 한다면 ‘소나무 숲 사이를 흐르는 내’를 뜻하는 ‘솔내’에서 찾는 것이 낫겠다.
소정방은 소래에 오지 않았지만 서울과 경기 일원의 맛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전국은 물론 해외의 각종 바다 산물은 죄다 이곳으로 모인다. 수인선 협궤 열차의 추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나이 지긋한 이들, 여기저기 맛집 탐방을 하며 ‘안쪽별’(인스타그램)이나 ‘얼굴책’(페이스북)에 사진의 추억을 남기고자 하는 젊은이도 찾는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바가지 상술로 온갖 욕을 먹어 억울한 우리들의 억척스러운 이웃들이 이곳을 지킨다.
‘모듬’과 ‘싯가’, 소래포구 어시장의 좌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단어이다. ‘제주도’부터 ‘서울’까지, ‘진경이’부터 ‘수철이’까지, 반짝이는 간판은 각양각색의 상호를 펼쳐 보인다. 그렇다. 이곳은 한반도 전 지역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이 ‘모듬’을 이룬 곳, 나라 안팎의 정세에 따라 ‘싯가’가 들쭉날쭉하는 그런 곳이다. 그리고 각지의 말이 각양각색의 삶과 어우러져 복잡한 변주를 들려주는 곳이다.
제주 진경이부터 서울 수철이까지
소래는 포구이지만 배가 드나드는 항구보다는 어시장으로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돼 있다. 그래서 드나드는 수많은 배와 떠들썩한 경매 현장은 보기 어렵고 생선회, 젓갈, 건어물과 다양한 해산물을 파는 좌판과 크고 작은 음식점이 눈에 띈다. 큰불이 난 뒤 말끔하게 단장해 다시 문을 연 옛 시장, 그리고 수인선 철로 곁에 새로 건설된 종합어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좌판과 음식점이 저마다의 이름을 내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수산 모듬회. 어시장의 간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는 ‘수산’이고, 가장 많은 손글씨는 ‘모듬회’이다. 그런데 깐깐한 국어 선생의 눈에는 모두 어색한 엉터리다. ‘수산’ 앞의 빈자리에는 어김없이 ‘충남’이나 ‘제주’ 같은 광역 지명부터 ‘완도’나 ‘서산’ 같은 기초 지명까지 총출동한다. 그 주인들의 고향, 혹은 추억이나 사연이 깃든 지명일까? ‘수산(水産)’은 바다나 강에서 난 산물을 뜻하는데 왜 이 단어를 넣어 이름을 지었냐고 주인장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유행이어서 그렇다는 답만 나온다.
‘모듬’은 이런저런 회를 모아 1만~2만원의 가격을 매겨 놓은 손글씨나 음식점의 메뉴판에서 발견되는데 안타깝게도 틀렸다. ‘모듬’은 ‘모임’의 다른 말인데 죽은 물고기가 스스로 모이지는 않았으니 틀렸다. ‘모둠’도 가끔 보이는데 사전을 보면 이 단어는 교실에서의 소규모 공부 단위만 가리키니 역시 틀렸다. 현실에서 모듬이나 모둠은 ‘모듬회, 모둠전’ 등과 같이 여러 가지를 모아 한 접시에 담아 내는 음식 이름에 쓰이는데 규범이나 어법의 잣대로 보자면 모두 틀렸다.
그러나 정작 틀려먹은 건 비린내와 땀내가 어우러진 이 공간에 와서 단어의 뜻이나 규범을 따지고 있는 이 국어 선생이다. 무슨 이유, 어떤 사연에서든 가게 이름을 짓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들의 고향이 목포나 서산이 아니어도, ‘진경이’나 ‘수철이’가 아이의 이름이 아니어도 지역의 이름과 자녀의 이름을 걸고 ‘수산업’에서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자세 아닌가? 모듬회든 모둠전이든 게으른 국어학자들이 적절한 이름을 짓지 못하는 사이에 저들이 먼저 멋진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닌가?
비린내 가득한 이곳은 교과서나 사전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말과 글의 황금어장이다. 간판 속의 지명과 이름을 보면 요즘 뜨는 지역, 혹은 사람들의 향수와 구매욕을 자극하는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매직으로 쓱쓱 휘갈겨 쓰기 시작한 음식 이름은 우리의 먹거리뿐만 아니라 말과 글을 풍성하게 하고 사전의 두께를 늘리는 자산이다. 국어 선생은 그런 팔도의 말 모둠을 그저 배우면 된다.
‘활어 사시미’의 생존력
“형님, 스키 많이 줄게. 삼촌, 도다리 세꼬시도 맛있어. 사장님, 색다르게 즐기려면 참돔 마스카와 어때요?”
좌판을 지날 때마다 들리는 호객 소리에 마음이 영 불편해진다. ‘난 당신 같은 동생이나 조카를 둔 적 없어. 이제까지 살면서 사장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리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속으로는 이렇게 되뇌면서 그 말들을 귓등으로 흘려 버린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나는 무엇을 불편해하는 것일까? 호칭? 반말? 손님 하나라도 더 붙잡고 싶은 그들의 절절한 호객의 말?
호칭이 기분 나쁘다면 대안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이름, 직업, 직책을 모르는 이들이니 나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아저씨, 형씨’는 왠지 깔보는 느낌이 들고, ‘여기요, 저기’는 호칭인지 의심스럽다. ‘사장님’은 그들이 모르는 사람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호칭이고, ‘형님, 삼촌’은 처음 보는 이지만 살갑게 다가서려는 마음의 표현이다. 반말은 낮춤말이 아니라 편한 말이라고 스스로 말해 오지 않았는가? 멀뚱히 앉아서 지나가는 손님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면 오히려 기분 나빠할 것 아닌가? 불편해할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답답해하는 호칭과 경어법에 대해 답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일이다.
더 불편한 것은 ‘스키’ ‘세꼬시’ ‘마스카와’ 등 정체불명의 일본어이다. 각각 회에 곁들여 나오는 반찬, 뼈째 썬 회, 가죽을 벗기지 않고 살짝 데쳐 낸 회를 뜻하는데 일본어에서 유래했지만 발음이나 표기가 엉터리고 뜻도 모호하다. 이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은 ‘회(膾)’ ‘사시미(刺身 さしみ)’ ‘생어편(生魚片·Shengyupian)’의 관계이다. 한·중·일 삼국은 모두 한자를 쓰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한자어로 쓰고 있다. 이는 이 음식이 어느 나라 음식인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음식의 종주국과 그 이름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은 제쳐 두고 소래포구, 나아가 우리의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면 ‘활어회’는 우리의 음식이다. 우리는 펄펄 뛰는 물고기를 잡아서 바로 회를 뜨니 숙성해서 회를 뜨는 사시미와는 다르다. 일본이 먼저 세상에 알려 ‘사시미(Sashimi)’가 만국 공용어로 쓰이고 있지만 어시장과 바닷가를 가득 메운 ‘횟집’과 그곳을 찾는 사람의 수는 우리가 훨씬 더 많을 듯하니 활어회는 곧 우리 음식이다.
문제는 ‘쓰키다시’ ‘세꼬시’ ‘마스카와’ 등 일본어의 잔재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이를 두고 언어학자와 음식 전문가들은 저마다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 또한 소래포구의 물고기처럼 펄펄 뛰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말은 책상물림들이 순화해야 할 말이 아니라 소래포구를 비롯한 전국의 횟집을 이끌고 있는 ‘칼잡이’들이 결정할 문제다. 고급 서양 음식점의 ‘셰프’들이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원어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쓰듯이, 회칼을 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결정할 문제다.
만원의 ‘싯가’
‘한 접시에 만원.’ 회는 비싼 음식이란 인식이 있는 이들에게 소래포구의 좌판에서 발견되는 이 문구는 무척이나 반갑다. 좀 더 양이 많거나 ‘고급진’ 회는 2만원이니 이 또한 고맙다. 이와 반대로 횟집의 메뉴판에서 공포를 자아내는 글자는 도대체 얼마일지 가늠이 안 되는 ‘싯가’이다. 본래 한자어 ‘시가(時價, 市價)’이니 잘못된 표기이지만 발음이 [시까]이고 메뉴판에 ‘시가’라고 적어 놓으면 손님들이 어리둥절할 테니 이 또한 국어 선생이 시비 삼을 문제는 아니다.
‘라떼’보다 더 오래된 옛날이지만 세종대왕 한 장이면 두 사람이 영화를 보고 저녁까지 함께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1만원으로는 한 사람의 점심과 ‘아아’ 한 잔을 감당하기가 벅차다. 물가는 곧 ‘시가(時價)’다. 1980년대와 현재의 1만원 가치는 각각의 시기가 결정한다. 40여년의 시간이 물가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니 과거의 물가로 현재의 물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지만 시가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물가는 곧 ‘시가(市價)’이기도 하다. 공급과 수요가 이루어지는 곳, 파는 이와 사는 이가 만나는 곳인 시장이 가격을 결정한다. 그 시가를 피부로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 접시에 만원’이다. 이 한 접시에는 물고기를 잡거나 기르고 유통하는 비용, 썰어서 접시에 담는 이의 노동력, 그리고 파는 이의 이문이 포함돼 있다. 이것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모두에게 만원의 행복을 준다.
때때로 이 ‘싯가’가 말썽을 일으킨다. 부르는 게 값일 때, 저울 속임과 눈속임으로 물건을 팔 때, 뜨내기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울 때 문제가 되고 그때마다 심심찮게 소래포구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렇지만 고마운 만원의 시가는 소래포구에서 오래도록 유지될 듯하다. 세종대왕으로는 감당이 안 돼 신사임당이 등장해야 하기 전까지 상인들은 최선을 다해 ‘한 접시에 만원’을 유지하려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점 한 점 정성스럽게 썰어 접시를 가득 채우는 손길과 간절한 손님을 부르는 대다수의 형님, 동생, 누님, 아우, 조카들이 있는 한.
‘오세요’와 ‘임대’
“오세요, 오세요. 싸고 맛있어요. 많이 드릴게요.”
끊임없이 외쳐대는 좌판 상인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다 보면 영락없이 발견하게 되는 문구가 ‘임대’ 또는 ‘세놓음’이다. 상인들의 간절한 호객 소리만큼이나 가슴 아픈 문구이다. 텅 빈 채로 남아 있는 수조와 각종 집기들, 이전의 주인은 남은 설비마저 처분할 경황도 없이 떠났으리라. 안타까운 것은 세를 놓은 주인도 마찬가지, 매달 들어와야 할 월세 없이 관리비만 나가니.
‘오세요’는 좌판 상인만의 목소리가 아닌 소래포구 전체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팔도의 모든 지명이 모둠으로 있는 곳, 그곳에 이 땅의 모든 진경이와 수철이가 모듬을 갖는다면 임대라는 문구는 사라질 것이다. 사시미가 아닌 펄펄 뛰는 활어회를 즐길 수 있는 곳, 누구나 만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 소래포구의 풍경은 여전히 ‘오세요’를 외친다.
필자 한성우
한국어의 방언과 말소리를 연구하는 국어학자이다. 삶 속의 말과 글을 쉽게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도록 돕는다. 첼로를 사랑하는 목수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어규범정비위원회 위원이며, 한국방언학회 수석부회장이다. 문화방송(MBC) 우리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방언정담> <우리 음식의 언어> <노래의 언어> <문화어 수업>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꿈을 찍는 공방> <방언, 이 땅의 모든 말> 등의 책을 썼다.
한성우 국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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