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논문 표절 논란’ 하버드대 첫 흑인 총장 사임
미 대학가 문화전쟁 격화
미국 명문 하버드대의 클로딘 게이 총장(사진)이 2일(현지시간) 사임했다. ‘반유대주의’ 논란으로 일부 고액 후원자들과 공화당 정치인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온 게이 총장은 논문 표절 의혹까지 겹치면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미 대학가를 강타한 학문과 표현의 자유 논쟁, 보수 대 진보 진영 간 ‘문화전쟁’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게이 총장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구성원들과 상의한 결과 내가 사임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가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 하버드에 최선이 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하버드 역사상 첫 흑인 총장인 그는 지난해 7월 취임했다. 1636년 설립된 하버드 대학의 386년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반유대주의 논란 끝에 6개월 만에 자진 사임하면서 역대 최단 기간 총장이라는 불명예도 얻게 됐다.
게이 총장은 지난달 5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학생들의 ‘유대인 학살’ 주장 등이 대학 윤리 규범에 위배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변해 논란이 됐다. 곧바로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움직임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게이 총장은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지만, 유대계를 포함한 월가 고액 후원자들은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 당시 청문회에 함께 출석해 비슷한 대답을 했던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닷새 만에 사퇴했다.
하버드대 이사회가 게이 총장의 유임을 만장일치로 결정하면서 그는 사임 위기를 벗어나는 듯했지만 재신임 뒤 과거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를 둘러싼 논란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버드대는 조사를 거쳐 게이 총장의 논문에 부적절한 인용 사례가 발견됐지만 연구 부정행위 관련 기준을 위반하지는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새해 들어서 보수 성향 매체가 추가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계속되자 게이 총장은 결국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게이 총장은 입장문에서 “인종적 적대감에서 비롯된 개인적 공격과 위협이 두려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고액 후원자들의 퇴진 요구가 계속되고, 11월 조기전형 지원자가 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게이 총장을 지지했던 이사회도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로써 지난달 대학 내 반유대주의를 주제로 열린 의회 청문회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두 명의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들이 낙마하게 됐다. 청문회에서 대학 총장들을 맹공한 엘리스 스터파닉 공화당 하원의원은 “두 명이 나가떨어졌다”고 말했다. 반면 게이 총장에 대한 ‘퇴진 캠페인’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치적 압박이라며 비판했던 하버드대 교수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칼릴 지브란 무하마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이것은 끔찍한 순간”이라며 “공화당 의회 지도부는 대학의 자유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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