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3인자, 이스라엘군 공격에 사망
하마스 “모든 협상 중단”…헤즈볼라·이란도 보복 시사
이스라엘군이 2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시설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하마스 정치국 2인자로 불리는 살레흐 알아루리 부국장(사진)이 사망했다. 하마스는 곧바로 휴전협상 중단을 선언했고,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도 보복을 예고했다. 이란도 “저항에 다시 불이 붙을 것”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일부 철수하기로 하면서 다소 누그러지는 듯했던 전쟁의 불길이 다시 치솟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무인기(드론)가 베이루트 외곽 하마스 사무실을 타격해 7명이 사망했다. 이후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알아루리 부국장이 사망자 명단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알아루리 부국장은 하마스 정치국 2인자이자 하마스 전체 서열 3위로 평가받는 핵심 인사다.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하마스 지도자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으며, 하마스 핵심 전력인 카삼 여단을 창설한 초기 멤버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엔 주로 베이루트에 머물며 사실상 헤즈볼라 주재 하마스 대사로 활동했다”고 보도했다. 이란과 헤즈볼라, 하마스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던 셈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0월7일 전쟁 발발 전부터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와 함께 알아루리 부국장을 우선 제거 대상으로 꼽아왔다. NYT는 “이스라엘이 하마스 조직을 섬멸하고 지도부를 모두 제거하겠다고 공언한 이후 살해된 첫 하마스 최고위 인사”라며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밖에서 하마스 최고 관리가 암살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알아루리 부국장 사망의 후폭풍은 거셌다. 하마스 정치국장인 이스마일 하니예는 “이는 테러 행위이자, 레바논 주권 침해이자,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 행위”라며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의 모든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개전 후 하마스와 거리를 둬왔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함마드 시타예흐 총리는 “뒤따를 수 없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집권당 파타 라말라 지부는 3일 하루 총파업을 예고했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임시 총리는 “레바논을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알아루리 부국장 암살은 대응 없이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며 “저항 세력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자지구에 주둔하던 이스라엘 일부 지상군의 철수와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 재개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중재 노력 덕에 진정 기미가 보였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로써 다시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무엇보다 하마스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온 이란이 보복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확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나세르 카나니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순교자의 피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자유를 추구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 사이에서 시온주의 점령자들에 맞서 싸우려는 저항에 다시 불을 붙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군은 말을 아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알아루리 사망 관련 질문에 답변을 피한 채 “방어와 공격 모든 분야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 또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미국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의 미 고위 관계자는 NYT에 “휴전 합의를 위한 회담이 당분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일로 예정됐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이스라엘 방문 계획도 다음주로 연기됐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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