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동성 커플 결혼증명서 발급 거부했다가 "5억 배상"

"결혼은 남녀만, 하나님 권한으로 거부"
종교 신념 따라 서류 발급 거절한 공무원
법원 "손해배상·변호사비 36만 달러 내야"

동성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법정에 섰던 미국 켄터키주 전 법원 서기관 킴 데이비스. AP통신 홈페이지 캡처

미국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전직 법원 서기관이 값비싼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발급을 신청한 동성 커플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에 이어, 이번엔 소송에 든 변호사 비용까지 대라는 법원 판결이 나와서다. 피해 커플에게 지급할 손해배상금과 변호사 비용은 총 5억 원 가까운 금액이다.

영국 가디언은 2일(현지시간) 미국 켄터키주(州)에서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했던 킴 데이비스 전 카운티 법원 서기에게 동성 커플의 변호사 비용 26만104달러(약 3억4,000만 원)를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 9월엔 동성 커플에게 손해배상금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를 지급하라는 명령도 내려져, 데이비스는 총 36만 달러(약 4억7,000만 원)를 내게 생겼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안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2015년 6월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지만, 같은 해 9월 법원 서기로 근무하던 킴 데이비스는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며 동성 커플에게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했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발급을 신청한 커플과의 언쟁에서 "무슨 권한으로 행동하느냐"는 말에 "하나님의 권한"이라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증명서 발급을 명령했지만 데이비스는 이 또한 거부해 5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결국 다른 직원이 대신 서류를 발급해줬다.

이 사건을 맡은 데이비드 버닝 켄터키 연방지법 판사는 지난해 3월 "선출직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자신의 헌법적 권리를 방패로 다른 사람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며 데이비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어 지난해 9월 배심원단은 데이비스가 피해 커플에게 손해배상금 10만 달러를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버닝 판사는 이번 판결에서도 "동성 커플의 변호사 비용 26만104달러도 지불하라"고 추가로 명령했다. 데이비스 측은 여기에 항소할 전망이다. 데이비스를 대변하는 로펌 리버티카운슬은 "데이비스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근거해 편의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2022년 6월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걸려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미 연방대법은 2015년 6월 "결혼은 한 국가의 사회적 질서의 이정표"라며 "동성 커플이든 이성 커플이든 이런 원칙을 존중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고 동성결혼 합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6월엔 보수화한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낙태)권 관련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하며 '동성결혼 합법화'도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같은 해 12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동성결혼의 효력을 성문화하는 '결혼존중법'에 서명하면서 판결 번복 가능성을 차단했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