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과 함께 짓는 농사, CSA
[똑똑! 한국사회]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해마다 1월이 되면 우리 농장에서 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 씨 뿌리는 봄부터 김매고 가꾸고 수확하는 가을까지의 모든 농사일이 중요하지만 우리 농장 회원들과 맺는 계약 또한 중요하다. 남편과 나는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회원들에게 농산물을 지속적으로 보내주겠다고, 회원들은 1년간 우리 농산물을 구매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렇듯 농부와 소비자가 맺는 계약이 ‘공동체 지원농업’(CSA: 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이다.
7년 전 대산농촌재단에서 마련한 호주(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농업연수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그 연수 중에 공동체 지원농업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소비자가 필요한 농산물을 1년간 받겠다고 농부와 계약한다고? 1년치 농산물값을 미리 지불한다고? 심지어 농사가 안되어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도 환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실제로는 공동체 지원농업 농장들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 당시 찾았던 조나이 유기양돈 농장에서는 어느 해 어미 돼지들이 계속해서 새끼를 적게 낳는 바람에 돈육과 소시지를 회원들에게 약속한 만큼 공급할 수가 없었는데, 다음해에는 새끼를 많이 낳아 전해에 부족했던 양을 다 보내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소비자 쪽에서는 농부가 가질 수밖에 없는 농사의 위험부담을 함께 지겠다고 마음먹고 계약한다.
호주 연수에서 공동체 지원농업 이야기를 들으면서 20년 전 만난 미국인 농부가 생각났다. 그 몇해 전 월터 골드스타인이라는 유기농 연구자가 우리 농장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그는 한 농부와 함께 몇해 뒤 다시 농장을 찾았다.
그 농부는 농사지은 채소를 시장이 아닌 도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한다고 했다. 1년 계약하고 농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1주일에 한번씩 농장에 와서 농산물을 가져가고, 차로 두세시간 거리에 사는 소비자에게는 트럭으로 배달해 준다고 했다. 가정마다 따로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고 미리 정해놓은 장소에 내려놓으면 소비자들이 와서 자기 이름이 적힌 상자를 가져간다고 했다. 그때는 그 농부만의 판매방식이라 생각했다. 지난가을 우리 집에 온 독일 농부 크리스토프는 일정한 장소에 농산물과 저울을 갖다 놓으면, 소비자들은 미리 신청한 양만큼 달아서 가져간다고 했다. 생산자에게 편리하고 안정적이지만 소비자에게는 불편한 구조다. 공동체 지원농업은 유럽과 미주 등 여러 대륙과 나라에서 이미 자리 잡은 유기농산물 판매방식이었다.
호주 연수를 다녀온 뒤 공동체 지원농업을 우리 농장에 적용하고 싶었다. 그런 판매방식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 몇해 전부터 나는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팔고 있었기에, 농사를 제대로 지으면 소비자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낸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용기 내서 우리 농장에 맞게 공동체 지원농업을 시작했고, 올해 7년째를 맞는다.
회원제로 판매하려면 농부는 사람과 자연에 이로운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물론 좋은 농산물을 생산했다고 해서 모든 소비자가 회원제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는 물론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기 위해 공동체 지원농업에 참여하지만, 농부가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기후 등의 요인으로 수확물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을 때도 농장이 넘어지지 않도록 돕는다. 공동체 지원농업 회원이 되는 것은 그들이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바라보는 농장을 돕고, 나아가 자연과 환경을 살리는 농업방식에 동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 공동체 농업 회원은 우리와 더불어 공동생산자다.
남편은 요즘 지난여름에 거둔 밀을 손질하고 있다. 이 밀을 직접 빻아 구워 만드는 빵은 2024년 우리 농장 회원들께 보내줄 첫번째 품목이다. 우리 농장과 회원들 사이 애정과 신뢰가 사회 다른 관계들에도 있다면 좀 더 따뜻하고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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