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R&D 혁신이야말로 위기 극복 과정
지난달 21일, 2024년 R&D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부안 대비 6000억원이 증액된 26.5조원으로 확정됐다. 이는 전년 대비 4.6조원이 감액된 규모이다. R&D 예산이 줄어든 대신 복지·고용부문 예산은 확대됐다. 저소득층 재난의료비 지원, 비정규직 권익보호 등에 예산이 중점 편성된 점에서 정부의 사회적 약자 지원을 위한 의지와 불가피하게 R&D 예산을 감액해야 했던 고민이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R&D 예산 삭감이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과학기술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액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총 감액 예산 4.6조원 중 비R&D 예산 1.8조원을 제외할 경우 실질적인 R&D 감액은 2.8조원 규모로 10% 이하임을 알 수 있다. 다행인 것은, 국가전략기술 육성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젊은 연구자 지원을 위한 기초연구사업, 출연연 대형장비 등 절실하게 필요한 부문의 예산 확대와 투자 전략성이 한층 강화된 점이다.
한편, 2012년부터 2019년까지 R&D 예산은 연평균 3.6% 수준으로 증가해오다가, 이후 2023년까지는 연평균 11% 수준으로 대폭 증가했다. 지난 4년간의 폭발적인 예산 증가와 최근의 세수 감소 현상을 감안한다면, 올해의 감액 규모는 일견 수용 가능한 범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부에서 예산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계와 좀 더 소통하여 R&D 효율성의 필요성이 잘 설명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분명히 있다.
과학기술계를 포함한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상황은 첨단과학기술이 경제와 외교, 안보를 좌우하는 기술패권시대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무한경쟁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에서 필요로 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와 해외 선도기관과의 협력 연구 등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R&D 투자 규모 등 양적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으며 R&D 다운 R&D,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 과학기술 혁신의 가속화 등 국가 R&D의 질적 성장으로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방향성은 '윤석열 정부 R&D 혁신방안'에 잘 제시되어 있다. 변화의 과정에서 일부 연구기관들이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에 통감하는 바이나 이러한 아픔의 과정을 곱씹으며 뼈에 원망만을 새기는 원입골수(怨入骨髓) 보다는 오히려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는 괄골요독(刮骨療毒)의 자세가 필요하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듯이, 과도한 과제수탁 부담을 경감하고 고유목적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역시 괄골요독의 자세로 R&D 혁신과 효율화를 실현하기 위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올해 기존사업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개편을 통해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R&D를 활성화하고, 그 성과를 활용한 창업과 사업화에 집중 투자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특구를 국가전략기술과 딥테크 글로벌 사업화의 전초기지로 육성하고 지역특화분야 창업과 실증 스케일업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또한, 도전적·혁신적 기술이 시장에서 사장되는 일이 없도록 규제샌드박스 제도와 실증 테스트베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특화 펀드 조성과 민간 투자 연계를 통해서는 혁신기업의 시장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다. 비록 당장에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필요한 일에 주저하지 않고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과학기술 혁신으로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이지 않을까?
우리나라 과학기술혁신과 국가경제를 선도해 온 대덕특구가 지난해 50주년을 맞이했다.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연구자·창업자·기업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과 혁신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중대한 변화의 시기에 혁신의 길이 일시적으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앞으로도 산·학·연 과학기술인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협력해 대한민국 미래 50년 R&D가 과거와 같이 영광스러운 역사를 써내려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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