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진 칼럼] 선과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로

손성진 2024. 1. 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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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용서가 넘쳐나고
증오와 폭력이 사라지는
밝고 희망찬 새해가 되길
손성진 논설실장
세상에는 선악(善惡)이 존재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선악은 분명히 나누어지고 악한 사람도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안다. 악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알면서도 단지 행하지 않을 뿐이다. 대개 목전의 이득을 얻기 위해 선을 팽개치고 악을 택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디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라고 하자. 2300년 전의 성선설과 성악설을 놓고 뭐가 맞는지 새삼 따질 필요도 없다. 태어나서 선악을 모르는 백지 상태의 인간을 어느 한쪽으로 이끄는 것은 결국 주변 환경이다. 환경이 생물의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듯이 인간에게도 같은 원리가 통용된다.

돼지도 깨끗한 자리만 찾아 눕는다. 더러워 보여도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깨끗한 것을 선이라 하고, 더러운 것을 악이라 할 때 인간도 더러운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돼지처럼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악의 길을 가지만 선을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사랑, 평화, 양보, 용서, 화해, 감사, 기부, 봉사 등이 선이다. 증오, 폭력, 사기, 비방, 과욕, 악플, 전쟁 등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악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도덕과 예의에 어긋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악이다. 길섶에 휴지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행위도 그렇고 마주치는 옆집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도 작은 악이다.

새해 벽두에 선악을 거론하는 것은 선을 가까이하고 악은 쳐다도 보지 않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다. 법규와 질서는 당연히 지킬 것이며 예의, 도덕에 어긋난 악을 행하지 말자는 말이다. 선을 행하는 것은 작은 것부터 가능하다.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선의 기본이다.

선을 행하면 악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악이 줄어들고 선이 늘어나면 세상은 밝아지고 기쁨으로 가득 찬다. 한 사람의 노력이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다. 거창하게 도덕성 회복운동까지 거론할 것도 없다. 개인의 조그만 노력과 실천이 모이면 사회에 범람하는 악을 압도하며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

나 하나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작은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 가정이나 직장, 사회생활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만 해도 크나큰 선의 실행이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물을 이룬다. 공동선이 별것도 아니고 작은 선의 집합체다.

다만 문제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눈곱만 한 이익을 위해 남을 크게 해치는 짓까지 불사한다. 정치판과 노동현장이 그렇다. 그런 악행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정파와 이념은 어떤 화해도 거부하고 이전투구에 빠져 있다. 노사도 한 치의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린다.

가장 거대한 폭력, 전쟁은 어떤 수단이라도 불사하는 가장 큰 악, 최대의 악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집합체인 국가의 전쟁과 폭력은 이미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물론 거악만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 한 사람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판단력만 있다면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일뿐이다.

선은 상식(common sense)과도 상통한다. 상식이란 보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합리적 판단을 뜻한다. 미국의 사상가 토머스 페인이 말한 상식도 그런 뜻이다. 작은 섬나라가 큰 대륙을 지배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논리는 미국 독립과 근대 이념의 바탕이 됐다.

악이 선을 짓밟고 비상식이 상식을 비웃는 세상이 됐다. 악과 비상식을 키우는 잘못된 환경부터 고쳐야 한다.

출발점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가정이다. 성인 여성을 성폭행한 미성년 아들을 감싸는 부모에게서 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른이 먼저 달라져야 자식들에게 선을 전파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의 책임은 학교다. 결국은 교육으로 귀결된다. 선과 상식이 악과 비상식을 파묻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tonio66@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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