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현역' 슈퍼 에이저 비결은 '타고난 유전자·왕성한 활동'

고광본 선임기자 2024. 1. 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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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키신저 등 경제·외교 거물
역동적 소통·규칙적 생활 유지
"의미있는 일 하면서 말년 즐겨"
콜라를 앞에 놓고 대화하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출처=버크셔해서웨이
[서울경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말 한 장짜리 약식 건강 진단서를 공개했다. “신체 상태도 정상 범위이고 인지력 등 정신건강도 탁월하다”는 게 주치의의 판단이다. 1946년 6월생인 그는 1942년 11월생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나이를 문제 삼지 않는 대신 무능력하고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끄는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를 20여 년 전 인기 가수인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헷갈리는 등 말실수가 잦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지난해 한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하는 등 말실수를 하곤 한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건강검진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백악관이 맞불을 놓은 가운데 11월 미국 대선에서는 건강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건강에 관한 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유명 인사는 1930년 8월생으로 투자의 전설인 워런 버핏과 외교가의 살아 있는 전설로 지난해 말 100세를 넘겨 숨진 헨리 키신저가 있다. 버크셔해서웨이 창업자인 버핏은 고령에도 아침 출근길에 저렴한 맥도날드를 사다가 사무실에서 먹고 밀크 브리지와 콜라 등을 수시로 마신다. 건강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의 생활 습관을 보면 약육강식 같은 투자의 세계에서 70여 년이나 살아남은 비결을 엿볼 수 있다.

그는 8시간가량 잔 뒤 오전 6시 45분께 기상해 신문을 읽고 증권시장이 개장하는 9시 30분 이후 출근한다. 컴퓨터 없이 최소한의 회의만 주재하고 빈번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고 독서와 구상을 많이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신속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도 특징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존경하는 워런의 습관 중 하나는 회의를 하지 않고 일정을 지키는 것”이라며 “그는 사무실에 앉아서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버핏은 소셜미디어 공해에서 해방돼 있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은 소셜미디어에 대해 일부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건강과 행복을 해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버핏이 건강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여유롭게 일에 몰두하는 것도 장수 비결이다. 다비드 마타익스 콜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정신의학 연구센터 교수팀에 따르면 건강 염려증 그룹은 심장·혈액·폐 질환이나 자살 등으로 일찍 숨질 가능성이 대조군보다 84% 높았다. 스웨덴 인구·건강 조사 데이터베이스(1997~2020년)에서 건강 염려증으로 진단된 4129명(진단 시 평균 34.5세)과 성·연령을 감안해 건강 염려증이 없는 10배수의 대조군을 비교한 결과다.

버핏의 60년 지기 단짝이었던 찰리 멍거 전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도 지난해 말 100세 생일을 앞두고 숨질 때까지 백내장 수술 합병증으로 인한 왼쪽 눈 실명만 빼면 건강한 삶을 누렸다. 그는 즐겨 마신 다이어트 콜라에 대해 “확실히 내 삶을 조금 단축시키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 인터뷰에서 장수 비법에 대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신 나간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파산하는 데는 술·여자·레버리지(빚을 내 투자함)가 있다고 했다. 시기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 상대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77년 8월 헨리 키신저(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국제관계에 관해 보고를 하고 있다. 출처=AFP 연합뉴스

지난해 말 100세를 넘겨 숨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도 평소 소시지와 오스트리아식 돈가스 등 기름진 음식과 육류를 좋아했고 운동도 특별히 따로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말년에도 ‘헨리 키신저의 외교’ ‘AI 이후의 세계’ 등을 출간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꺼지지 않는 호기심으로 세상과 역동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장수 비결이라는 게 그의 아들(데이비드 키신저)의 말이다. 키신저는 95세인 2018년부터 인공지능(AI)의 실용적·철학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몰두했다. 마지막까지 세계여행을 계속 다니며 연설도 많이 했다. 그의 또 다른 건강 비결 중 하나로는 사명감이 꼽힌다. 미소 냉전이 한창일 때도 아나톨리 도브리닌 주미 소련 대사를 집으로 자주 불러 체스 게임을 같이 하며 세계 정세를 논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대인으로서 나치 독일 치하에서 가족과 친구를 대거 잃은 아픔을 교훈 삼아 미소 세력균형을 넘어 긴장 완화를 추구한 것이다. 그는 1979년 미중 수교를 이끌어내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이렇듯 장수 유명인들을 보면 유전적 요인에 더해 왕성한 활동이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세계에서 만성 질환 비율이 낮고 장수하는 ‘블루존’ 거주자들을 봐도 가족과의 유대관계가 좋고 사회적 관계가 양호하다. 소식하고 활동적이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 점도 특징이다. 블루존은 이탈리아 사르데냐, 일본 오키나와섬, 코스타리카 니코야반도, 그리스 이카리아섬,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마린다를 가리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외로움을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사회적연결위원회’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로움이 매일 담배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 것이다. 특히 노인의 외로움은 치매와 관상동맥 질환, 뇌졸중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산부인과 의사로 인공지능(AI) 기반 난임치료 솔루션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워런 버핏 등을 보면 장수 유전자를 가진 특이한 체질로 볼 수 있다”며 “말년에도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점도 공통점”이라고 했다. 키신저의 경우 부모가 각각 97세와 95세까지 생존한 것처럼 장수 유전자를 타고 났지만 끊임없이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실행했다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대의 ‘뉴잉글랜드 100세 연구’ 책임자인 토마스 펄스 박사도 “90세까지 사는 것은 30%의 유전적 요인과 70%의 생활 방식이 결정한다”며 “110세까지 산다면 유전자 요소가 약 70%로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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