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이 대표에게 '혁신 기회' 버스 지나간 뒤 손들어봤자 소용없으니 '결단'하라 했다"[정치행간]

박석원 2024. 1. 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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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역사' 정세균의 분노와 호소]
"당대표 피습, ‘이낙연신당’ 속도조절해야"
"통합은 최선, 연대는 차선, 분열은 최악"
'이재명 부대변인', 성남시장 후보 丁이 임명
'정 원내대표' 때 '김부겸 수석부대표' 인연
향후 '정세균 역할론' 여부도 관심
편집자주
‘박석원의 정치행간’은 국회와 정당, 대통령실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국민시대 사무실에서 한국일보 박석원 논설위원과 인터뷰하던 중 더불어민주당 분당 위기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깊은 걱정에 빠져 있다. 하상윤 기자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최근 동분서주하고 있다. 2021년 가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2년 넘게 정치휴지기를 보낸 그가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친정의 분열사태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에게 “현애살수(懸崖撒手·벼랑 끝에 매달려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를 언급해 ‘결단’을 압박했고, 이낙연 전 총리의 신당 창당 움직임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양쪽 모두를 향해 그는 진지하고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스스로가 민주당의 역사나 다름없는 ‘통합형’ 정체성을 가진 탓이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3명의 대통령과 함께 일한 사실상 유일한 인물이다. 어느 두 사람과 함께한 원로들은 있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헌정사 최초의 국회의장 출신 국무총리였던 점도 독특하다.

정 전 의장은 4월 총선을 “중대 선거”로 규정했다. 지난달 29일 싱크탱크 ‘국민시대’ 서울 종로 사무실에서 진행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중대 선거란 점에 절대 다수 국민이 공감한다고 본다”며 “윤석열 정권의 독주를 야당이 효과적으로 견제해야 하는데 그럴 준비가 돼있느냐에 국민 걱정이 있다”고 했다. 별명은 '미스터 스마일'이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날 인터뷰는 2일 ‘이재명 대표 피습’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뤄진 것이다. 인터뷰 전날(12월 28일)엔 ‘이재명-정세균 단독회동’이 있었다. 이낙연 전 총리가 이재명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한 ‘통합비대위 체제’를 요구해 분당 우려가 절정에 달한 상황이었다.

정 전 의장은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진 않았지만 이 대표에게 사실상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당시 이 대표에게 “결단의 문제다. 고심해왔을 텐데 타이밍에 맞게 해야 한다. 버스가 지나간 다음엔 손을 흔들어도 소용이 없다”며 “정당의 분열은 대표에게 책임이 있고, 수습할 책임도 당대표에게 있다. 여러 옵션이 있을 것 아닌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말했다고 들려줬다.


"정당이 분열해 승리한 적 없다, 분당 위기 신당 창당 반대"

그는 ‘이낙연 신당’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내가 2010년 당대표로 지방선거를 지휘할 때 구호가 ‘통합은 최선, 연대는 차선, 분열은 최악’이었다. 그래서 승리를 이끌었다”며 “선거에서 정당이 분열해 승리한 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 전 의장은 3일 통화에선 이 대표 피습으로 정국상황이 바뀐 점을 크게 걱정하며 “당이 비상상황이다. 어려움에 빠졌으니 (이낙연 전 대표가 신당행보의)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위기가 닥쳤으니 이 전 대표가 문병도 가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親)이재명계 쪽에선 문재인 정부 시절 총리를 지낸 정세균·김부겸·이낙연 ‘3총리’ 회동이 이뤄질 경우를 최악으로 경계하고 있다. 당의 법통을 잇는 세 사람이 이 대표 체제를 끌어내리고 ‘통합형 비대위’ 출범을 지지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였다. 세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김 전 총리는 ‘정세균 원내대표’ 시절 수석부대표였다. 과거 '김부겸 총리' 카드를 정 전 의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천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재명 대표야말로 정 전 의장이 당대표 시절 중앙당 상근부대변인 임명장을 준 관계다. 성남시장 후보로 전략공천한 것도 정 전 의장의 작품이다. 본인은 ‘평당원’을 고집하지만, 향후 친명이든 비명이든 ‘이낙연 신당’이든 '정세균'의 존재가 모두에게 필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 상황에 대해 정 전 의장의 생각을 듣고 싶다. 28일 이재명-정세균 회동 때 “당대표 내려놓으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나. 아니면 총선 불출마를 말한 건가.

”내가 족집게 도사는 아니지 않나. 지금대로 가면 분열이 막아진다는 보장이 없다.(※실제로 이재명-이낙연 최후 담판은 결렬됐다.) 어떤 선택을 하고 소통하고 수습할지 여러 옵션이 있을 거 아닌가. 당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 표정이 안 좋았을 것 같다.

”그건 비밀이다(웃음). 지금 민주당 형국이 나 같은 사람도 세게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국가 명운이 걸린 상태다. 서로 덕담이나 주고받을 시기는 아니다. 그럴 때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 나보고 사람들이 온화하다고 하는데 할 말이 있을 때 나는 아주 강하게 요구한다.”(※이 부분을 말할 때 정 전 의장은 눈에 강한 힘을 줬다.)


"국정 난맥상에 與 핵심지지층도 밖에 나가서 정권 대변 못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국민시대 사무실에서 한국일보 박석원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년 7개월을 어떻게 지켜봤나. 총평을 해달라.

”후하게 평가해야 덕스러워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안 된다. 인사 실패가 컸다. 노동탄압, 언론탄압, 야당탄압도 문제다. 그런데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문제, 민생이 굉장히 어렵지 않나. 성장률이 1.4%로 훨씬 후퇴했다. 작년에는 2.2% 정도였다. 내년엔 1.2% 정도로 더 떨어질 것이라 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선진국 중에서 우리 경제가 저조한 편이다. 대통령이 열심히 하는 외교안보도 내가 보기엔 기가 막힌다. 엑스포 유치 실패를 보면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오독하고 오판해서 큰 낭패를 보지 않았나. 국민 가슴에 상처를 안겨줬다.”

-외교안보 성과를 꼽는다면 한미일 협력 강화가 주로 거론된다.

”우리나라는 통상국가이고 지정학적으로 특별한 위치에 있는 나라다. 나는 원래 미국에서 오래 지냈고 우리가 미국과 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미국 일변도 외교만으론 우리에게 맞지 않다. 신냉전이 온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대응이 너무나 ‘나이브’하다. 어떻게 국익을 지킬건가. 게다가 과거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나. 내치를 보면 감사원을 동원해 공직사회를 얼어붙게 만들어 지금 관료사회가 움직이질 않는다. 경제가 잘 돌아갈 일이 있겠나.”

-너무 박한 평가를 내리는 건 아닌가.

”아무리 찾아봐도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게 없어 참담하다. 국정난맥에 여당 핵심 지지층도 지지는 하지만 밖에 나가서 대변은 못하는 상태 아닌가.”

-윤 대통령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국민은 늘 옳다”며 이념전쟁 배제, 민생올인 등의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실천적 부분이 전혀 없지 않나. 지도자는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안 그러니 불신만 키웠다. 대통령이 ‘윤석열 검사’는 아니지 않나. 야당대표가 사법적 리스크가 있다면 그건 사법기관에서 관장하면 될 일이고 대통령 입장에선 과반수 넘는 의석의 대표를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임기 동안 이뤄내야 할 국가적 담론이 뭐라고 보나.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어려운 민생을 회복하는 것이다. 국정지지율을 높이는 비책은 따로 없다. 대통령이 변하고, 여당이 변하면 국민이 알아줄 것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식으로는 어렵다. 정당은 잘못되면 고치거나 다시 문을 열면 되지만 나라는 되돌릴 수 없다.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떨어진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영특한 분인 것 같긴 한데, 표를 많이 모으는 데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새로 갓 취임했는데 여당의 장수에 대해 야박한 얘기는 점잖은 게 아닌데(웃으며). 그래도 무게감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특검’을 꼭 밀어붙여야 하나. 문재인 정부 때도 이 문제에 관해선 검찰 수뇌부와 달리 일선 검사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 아닌가.

”그렇다. 뼈아픈 대목이다. 지금도 안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검찰은 조직이기주의가 어느 다른 곳보다 강하다. 그렇게 표류해 지금 야당의 특검 추진으로 이어졌다. 법치가 제대로 실천이 안 되고 있다. 그래서 검찰개혁이 이토록 힘들고 지금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전통의 민주당이 달라졌다, 낯설고 정이 안 간다는 말 듣는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국민시대 사무실에서 한국일보 박석원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민주당의 모습은 어떻게 보나.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뒤 총선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든 진영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 여권은 총력적 태세로 나올 텐데 야당이 평상시 대응 자세로 가면 어떻게 되겠나. 야당의 비판은 정부의 변화를 끌어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혁신의 시늉조차 안 보인다.

”(김은경) 혁신위도 완전히 실패작 아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총선은 일종의 전쟁인데 당연히 총력전이 될 것 아닌가. 단일대오를 만들어 대통합을 해서 힘을 쏟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승률의 차이가 크게 된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총선 때 정권심판론과 야당심판론 중 어느 쪽이 클 것 같나.

“시기적으로 봐도 정권심판론이 우세한 것 아닌가. 당연히 이 기준이 선거에 영향을 줄 거다. 그런데 민주당이 거기에만 기대고 있어선 장담하기 어렵다. 대통령 중간평가인데 야당이 그런 국민의 마음을 잘 받아들일 체제가 돼야 하는 것이다.”

-이낙연 전 총리가 민주당에 화가 많이 나 있다.

”나는 이해가 간다. 미국에 있을 때도 (친명 지지자들) 수만 명이 나가라고 그랬다는데. 평정심을 갖기 어렵지 않겠나.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데. (지금) 민주당이 전통의 민주당과 다르다. 낯설고 정이 안 간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재명 대표한테 내가 솔직하게 (비판적 시각을) 가감없이 이야기했다. 고민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DJ는 우리 역사 최고의 대통령이다. 과거 청산의 원한이 얼마나 컸겠나. 그런데 관용하고 화해하고 포용한 리더십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솔직하고 원칙을 중시해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성격은 본인 마음에 안 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바로 반응한다. 문 전 대통령은 들어주긴 잘 들어주는데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미소 지으며). 합리적인 분이고, 코로나19 위기극복에 성공한 대통령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지난달 28일 단독회동을 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으로 들어서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1950년 전북 진안 출생, 15대를 시작으로 6선 의원을 지냈다.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이다. ‘의전형’과 달리 유력계파를 거느린 현역정치인형 의장이었다. 2016년 6월 일본 방문 때는 아베 신조 총리가 면담 때마다 한국측 의자높이를 낮게 배치해온 관행을 그가 고쳐놓았다. 바로잡지 않으면 귀국한다고 엄포를 놔 개선된 것이었다. 대선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2020년 총리로 호흡을 맞췄다. 코로나 시국이었다. 대구에서 3주간 체류하는 등 재임 15개월간 설날과 추석 이틀을 제외하곤 하루도 쉰 적이 없다.

박석원 논설위원 spark@hankookilbo.com
변한나 사원 bloss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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