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점의 습지 그림···마지막 퍼즐은 '관객의 상상'

서지혜 기자 2024. 1. 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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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3m, 가로 12m의 커다란 벽에 같은 크기의 59점 작품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있다.

두어 발자국 더 뒷걸음질 치면 59점의 그림은 습지를 그린 거대한 하나의 구상 작품이 된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 안쪽 전시 공간 벽에 자리 잡은 이 작품은 총 59점의 캔버스로 구성된 연작이다.

작가가 60점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 떼어내고 벽면이 그대로 노출되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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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개인전 '블로우 업'
습지사진을 거대한 회화로 제작
60개로 나눠 1개만 따로 전시
"하나의 작품이자 독립된 작품"
시각적 진실에 대한 질문 던져
이광호 작가. 사진 제공=국제갤러리
[서울경제]

세로 3m, 가로 12m의 커다란 벽에 같은 크기의 59점 작품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있다. 가까이서 보면 얇은 선을 아무렇게 휘갈긴듯 보이는 추상화. 한 점의 그림은 각각 수많은 색과 수많은 획을 담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꿩, 물, 풀 등 다양한 자연물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을 수 있다.

그림에서 한 발씩 뒤로 물러나보자. 한 점의 그림은 위, 아래, 옆의 그림과 퍼즐처럼 이어진다. 두어 발자국 더 뒷걸음질 치면 59점의 그림은 습지를 그린 거대한 하나의 구상 작품이 된다. ‘선인장 작가’로 잘 알려진 이광호 작가의 신작 ‘무제(Untitlted)-4819’다.

이광호 개인전, ‘블로우 업’ 설치 전경.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이광호 개인전, ‘블로우 업’ 설치 전경.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 안쪽 전시 공간 벽에 자리 잡은 이 작품은 총 59점의 캔버스로 구성된 연작이다.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작가는 뉴질랜드 여행 중 케플러 트랙 인근에서 우연히 습지를 발견했고,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 60점의 같은 크기의 조각 회화로 재구성했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블로우 업(Blow up·확대)’은 작가가 영감 받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정사(blow-up)’에서 인용한 것으로 사진이나 영화를 확대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시선의 욕망과 시각적 진실에 의문을 던지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전시 기획은 작가가 영감을 받은 ‘블로우 업’의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전체 그림은 하나의 사진 이미지를 ‘구획’한 것으로, 작가는 ‘화가라는 업의 본질은 보이는 세계의 일부를 구획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작품의 의도를 설명했다. 전시관 벽에는 59점만 걸려있고 상단의 한 자리는 비어 있다. 작가가 60점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해 떼어내고 벽면이 그대로 노출되게 했기 때문이다.

빈 공간은 관람객의 상상의 영역이다.

이광호, 4819-63. 사진 제공=국제 갤러리
이광호의 설치작품 빈자리의 그림. ‘Untitled 4819-61’. 사진 제공=국제 갤러리

빈 공간의 그림은 사실 바로 맞은편에 걸려있다. 하지만 그 공간에 들어가기엔 다소 큰 작품이다. 작가는 떼어낸 작품을 의도적으로 확대(Blow-uo)해 다시 그렸다. 마치 새로운 풍경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작품이 ‘4819’의 일부이면서 독립된 작품이 한 전시실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관계 맺는 셈이다. 60개의 캔버스는 각각이 전체 풍경 이미지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식물의 한 부분으로 보일 만큼 정밀하고 정교하다. 하나의 작품을 봐서는 전체 크기와 작품이 실제로 무엇인지 추정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관객이 이것을 이끼로 인식하든 타지의 풀로 인식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확대해 추상성을 부여한 작품 앞에서 개인이 느끼거나 교류하는 것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동일한 방식의 변주는 K1의 창이 있는 앞쪽 전시 공간에서도 나타난다. 역시 ‘4819’ 이미지의 일부이기도 한 독립된 작품들은 벽으로 나뉘어진 다른 공간이 작품과 관계 맺으며 전체 전시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이게 한다.

이광호, 선인장. 사진 제공=국제갤러리

이광호는 우리에게 ‘선인장 작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작가의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선인장’ 연작에서도 작가는 대상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대상을 대하는 작가의 내면, 촉각적 표현 욕구를 극대화했다. 이는 작가만의 회화를 만드는 방법, ‘매너(manner)’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대상과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캔버스 위에 표현하기 위해 회화의 근간에서부터 새롭게 접근했고, 그 면면을 살펴봄으로써 고유한 회화적 시선을 드러내는 기술, ‘매너'를 사유하고자 한다. 그는 “매너는 단지 기술이 아니며, 지문 같은 고유한 회화의 흔적”이라며 “가수의 음색, 소설가의 문체처럼 회화에서는 고유한 붓질을 구사하는 방법이 매너”라고 말한다. 전시는 1월 28일까지.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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