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도 못피한 유대 파워…첫 흑인총장 결국 퇴진

反유대 논란 휘말리며 휘청
논문시비에 5개월만에 백기

유대인 혐오를 방치했다고 비판받았던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대 총장이 결국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공식적인 사임 이유는 '논문 표절 의혹'이지만, 학내외에서는 반(反)유대주의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미국 대학가를 두 쪽 낸 '표현의 자유' 논란이 한층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임시 총장으로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앨런 가버 교무처장이 임명됐다.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사진)은 2일(현지시간) 학생과 교직원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게이 총장은 "무거운 마음이지만 하버드대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내가 총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며 "대학 구성원들과 상의한 결과 내가 사퇴하는 것이 하버드대에 가장 이익이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흑인 최초이자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하버드대 총장에 선임된 그는 불과 5개월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는 1636년 하버드대 개교 이래 최단 기록이다. 게이 총장은 하버드대에서 교수직을 유지하며 전공인 정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논문 표절 의혹은 지난달 5일 연방 하원이 아이비리그의 유대인 혐오 여론과 관련해 개최한 청문회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청문회에서 공화당의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뉴욕주)은 게이 총장을 비롯한 대학 총장들에게 "유대인 대학살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교내 괴롭힘 관련 행동강령을 위반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거듭 던졌다. 게이 총장은 "맥락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며 "하버드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고 답해 보수층의 반발을 샀다. 게이 총장과 함께 청문회에 출석해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던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교내외 반발 탓에 나흘 만에 사퇴했다. 게이 총장은 물론, 샐리 콘블루스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도 함께 사퇴 압박을 받았다.

당시 게이 총장은 청문회 발언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고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유임을 택했다. 그러나 지난달 게이 총장이 과거 발표한 논문에서 표절 증거가 발견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다. 하버드대는 그의 박사 논문 2편에서 몇 가지 부적절한 인용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지난해 10월 말 조사를 통해 알게 돼 시정 조치를 했지만, 적발된 위반행위가 연구상 위법행위 수준은 아니라며 게이 총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게이 총장이 저지른 실수를 학생이 했다면 가혹한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며 '이중 잣대'라는 불만이 제기되고, 새해 들어 추가로 표절 의혹이 공개되자 게이 총장과 학교 측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제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