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무작정 덤비면 뒤집혀 때론 물 속에 숨는 지혜도 필요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4. 1. 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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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덮친 이상 한파로 경남 양산 통도사로 향하는 열차는 서행과 연착을 반복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종찰 통도사의 자랑인 소나무 숲길을 지나 꼭대기에 다다르니 작은 암자가 나오고 거기서 한참을 더 올라갔다.

비닐하우스같이 생긴 공간엔 각종 장비와 도자기, 둘둘 만 한지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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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정 성파스님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이 통도사 암자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스님은 "나는 여든다섯 살이라도 시간이 모자라다"며 평생 학생이라고 말했다.

한반도를 덮친 이상 한파로 경남 양산 통도사로 향하는 열차는 서행과 연착을 반복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종찰 통도사의 자랑인 소나무 숲길을 지나 꼭대기에 다다르니 작은 암자가 나오고 거기서 한참을 더 올라갔다. 비닐하우스같이 생긴 공간엔 각종 장비와 도자기, 둘둘 만 한지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과 꼭 닮았다. 바닥과 가구에 칠해진 옻칠 향기가 코끝을 흔드는 사이 조계종 종정(宗正·정신적 최고 지도자) 성파(性坡)스님(85)이 나타났다. 예술가로도 명성이 높은 스님은 법복 대신 작업실 경량 패딩을 걸치고 악수를 청했다. 농사꾼처럼 거센 아귀힘이 느껴졌다.

―무슨 일을 하다 오신 건가요.

▷요즘 옻칠 작업인 칠화에 빠져 있어요. 이것 말고도 일꾼들과 이것저것 해요.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보통 재미가 아닙니다. 잘돼도 희열, 못돼도 괜찮다. 그 자체가 재미라.

―도자기를 비롯해 서예, 천연염색, 산수화, 민화, 한지 등 10여 가지를 하고 계신데.

▷한 우물을 파야 하는데 다른 게 눈에 들어오고 하나도 옳게 된 게 없어요. 허허. 말 한 마리가 끄는 힘을 1마력이라고 하죠. 말이 한 마리일 때는 1마력밖에 안 된다는 얘기예요. 열 마리가 하면 10마력이죠. 자기 혼자 10마력을 하려면 차력, 즉 남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스스로 500세 인생을 사신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한 분야의 평생 대가가 됐다 하면 적어도 50년은 했다고 봅니다. 50년 장인 10명을 모으면 오백 살이 되는 거죠. 신체적인 나이는 85세지만 정신적인 장수라.

―'N잡러'라고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젊은이들과 상당히 닮은 것 같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정신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6·25전쟁이 났으니 그다음부터는 학교 공부를 못 했죠.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익히고 사서삼경을 뗐죠. 스무 살 무렵 출가하기 전 10대 때 쓴 한시가 150편이 넘어요. (스님이 16~18세에 공책에 적은 한시 190여 편은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온계시초'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일본어와 중국어에도 능통하신데, 끊임없이 배우는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변명 같지만 '내가 가는 곳이 학교, 만나는 사람이 다 스승'이라고 말해요. 다른 사람들은 졸업하면 학생이 아닌데 난 졸업을 못 했기 때문에 평생 학생이죠. 우주무한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이 있으신지.

▷나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려면 단순히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책에 나오는 그 사람의 평소 말을 읽으면서 대화를 하는 거죠. '그리 말했냐 난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석가모니, 공자, 맹자, 노자 책을 보면서 자문자답하면 이해가 잘됩디다.

―불교에서는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나는 무소유가 아니라 욕심이 대적(大賊)이라 말해요. 가령 깊은 물이 있으면 수영을 금지한다고 써 붙여요. 이런 말은 일반 대중에게 적용되는 거지 현해탄을 넘는 조오련은 들어가도 됩니다. 계율 역시 그래요. 욕심도 여러 질이라 과욕을 부리지 말고 탐욕을 부리지 말라는 말이지, 욕망이 없으면 어떻게 견성성불을 하나. 발심 자체가 욕망이라 내 욕심은 다르지요.

―항상심을 갖고 있는 것이 쉽진 않은데.

▷어렵지만 그게 필요한지라 부처님도 석가모니 주불이 있고 문수보현이 있어요. 문수는 지혜고 보현은 행(行)이라 필요에 따라 문수를 행할 때가 있고 보현을 행할 때가 있죠. 보현이 따로 있고 문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처에 다 속해 있어요. 내 몸도 오른팔, 왼팔이 있듯이 왼팔을 썼을 때는 왼팔을 쓸 뿐이지, 고정돼 있는 게 아닙니다. 불법도 그래요. 무유정법이라 딱히 정해 놓은 법은 없어요.

―퇴직을 앞둔 많은 직장인이 뭘 할지 몰라 불안해합니다.

▷답답해요. 나는 여든다섯 살이라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할 일이 저리 많은데. 직장에 묶여 있다 풀려나면 자유의 몸이 돼 더 좋지요. 해탈했다 생각해야지. 할 일이 없으면, 만들면 할 일이라. 물론 자신감이 많이 없을 수가 있어요. 이는 극복해야지요. 퇴직했을 뿐이지 나는 나 그대로고, 이 세상도 그대로라.

―출가 후 행복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하셨는데요.

▷경쟁 대상이 없어서 내가 행복한 거라. 내가 멍청해서인지 어제의 나와도 비교하지 않아요. 일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밑천이 들고 본전 생각이 나죠. 난 그게 없기 때문에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이 인자한 모습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날마다 새롭게 사는 '일신우일신'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다했다'는 것은 없어요. 새로운 게 끝이 없지요.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파도가 배를 엎어버리기도 해요. 센 파도가 솟구치면 배가 넘어집니다. 이 물이라는 것이 어떨 때는 잔잔하고, 어떨 때는 파도가 세요. 물에 있으면서 파도에 전복 안 되도록 하는 것이 배를 운항하는 묘지요. 파도를 무시하고 덤비면 배가 넘어져요. 넘어지면 자기만 손해지.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사람은 물에 뜬 배와 같아요.

―파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파도를 정면 돌파하겠다고 넘다 보면 자빠집니다. 잠수해서 파도 속으로 쑥 빠져나가야 됩니다. 물속에 들어가 버리면 파도가 지나가 버려요. 때로는 자존심도 버리고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우리 사회 대립과 혐오 정서가 심각한데요.

▷제일 우려되는 것이 정신력입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정신력을 키우려면 각자가 기본기를 쌓아야 하고, 교육에서도 인문학을 중시해야 합니다. 증오와 분노로 마음밭이 거칠어졌는데 인내와 용서하는 화해의 덕성을 길러야 합니다.

―청룡의 해를 맞이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청룡은 희망을 말하는 겁니다. 미꾸라지가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처럼 용이 돼 보자 그런 희망과 용기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행불행은 본인에게 있어요. 행복할래? 불행할래? 이건 내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임자가 있어요. 그런데 행복은 형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강호의 맑은 바람과 산속의 밝은 달은 아무리 취해도 누가 범죄라고 하지 않아요. 얼마든지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지요. 행복도 남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를 알아차려야 행복한 거지, 손에 쥐여줘도 모릅니다.

성파스님

△1939년 경남 합천 출생 △1960년 통도사 출가 △1981년 통도사 주지 △2013년 16만 도자대자경 조성·장경각 건립 △2018년 영축총림 방장 추대 △2022년 3월~ 조계종 제15대 종정

[양산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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