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퇴직금 2~5달치 줄이는 은행…그래도 평균 3억대
성과급도 축소 움직임…경영 현황 보고서 공개 영향?
“40·50대 직원 많아 평균 퇴직금 높을 수밖에 없어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은행권이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도 희망퇴직금 지급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성과급도 줄이는 분위기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된 '돈 잔치' 비판과 상생 금융 등 잇단 압박 속에 눈치보기에 들어간 셈이다. 이에 더해 당국은 금융권 퇴직금 산정 기준도 공개하겠다는 계획이라 당분간 금융권의 몸 사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최대 36개월치 주던 희망퇴직금, 31개월로 축소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모두 희망퇴직금 기준을 전년보다 하향 조정했다. 월 평균 급여의 최대 31~36개월 치를 지급하던 특별퇴직금 규모를 최대 5개월 줄이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퇴직금은 근로기준법 등에서 정하는 기본퇴직금과 노사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희망퇴직금으로 구분한다. 희망퇴직금은 생년, 직급, 정년까지 잔여월수 등을 감안해 월 기본급의 26∼36개월 상당의 특별퇴직금과 학자금, 의료비, 전직지원금 등 복지지원을 합한 퇴직금이다.
은행별로 보면, KB국민은행은 1972년생 이하 직원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가운데, 특별퇴직금은 월 평균 급여의 18~31개월 치를 지급한다. 지난해 23~35개월 치를 준 것에 비하면 4~5개월 치의 월급만큼 액수가 줄어든 셈이다.
신한·하나·우리은행도 전년보다 축소했다. 신한은행은 월 평균 임금의 7~31개월 치를 지급하면서, 전년(9~36개월 치)보다 2~5개월 치 하향 조정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월급의 36개월 치였던 최대수령액을 5개월 치 줄였다.
농협은행은 만 56세 직원에겐 28개월 치 월급을, 일반 직원에겐 20개월 치 월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일반 직원에게 20~39개월 치 월급을 지급한 데 비해 크게 줄어든 셈이다.
성과급도 쪼그라드는 분위기다. 농협은행은 최근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 성과급을 '통상임금의 200%+300만원'으로 결정했다. 지난해 '400%+200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 가량 줄어든 것이다. 신한은행도 1년 전 기본급의 361%였던 성과급을 281%로 축소했다.
역대급 실적에도 정부 압박에 태세 전환
은행권은 코로나로 인한 대출 확대로 증가한 이자 수익과 지난해 금리 상승으로 최근 수년간 매년 호실적을 거두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5대 은행의 누적 순익은 약 11조328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4% 증가한 가운데, 이자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늘었다.
올해 전망은 더 밝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올해 연간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17조231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순익 추정치(16조5510억원)보다 4.1% 더 늘어난 수치다.
역대급 실적을 매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태세 전환에 나선 이유는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은행권이 고금리 기조 속 거둔 수익을 공익에 환원하라는 압박을 줄기차게 이어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이 돈 잔치를 한다"고 비판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국무회의에선 "소상공인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은행 종 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며 직격했다. 이에 은행권은 지난 연말 2조원 규모의 상생 금융안까지 내놓은 바 있다.
매년 퇴직금·성과급 현황, 공개 예정…"인력효율화 위한 선택"
경영 현황을 일괄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퇴직금 및 성과급 축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7월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은행 경영 현황 공개 보고서' 발간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보고서엔 공개가 제한됐던 직원 희망퇴직금과 성과급 산정기준 및 변동요인까지 담길 예정이다. 은행이 어떻게 수익을 내고 발생한 수익을 어디에 쓰는지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11월엔 은행 경영 현황 공개 보고서가 시범 공개됐다. 여기엔 2022년 임원 및 직원 경영성과급, 희망 퇴직금 등의 산정 기준 및 과거 대비 주요 변동 원인 등이 담겼다. 당장 오는 4월부터 이 같은 경영 현황을 매년 낱낱이 공개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희망퇴직금 축소는) 은행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영향을 미쳤다"며 "지난해부터 '돈 잔치'를 한다는 등 비판적인 여론을 내부에서 인식하고 맞춰 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같은 감축에도 은행권의 퇴직금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3월 공개한 '5대 은행 성과급 등 보수체계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5대 은행의 1인당 평균 희망퇴직금은 3억6000만원이다. 기본퇴직금까지 합하면 희망퇴직자의 총 퇴직금은 평균 5억4000만원이다. 희망퇴직금에서 수개월치의 월급이 빠져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1960~70년대생 직원이 많은 은행 구조상 평균 퇴직금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희망퇴직은 인력효율화를 위한 선택"이라며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그만큼의 젊은 피를 수혈할 여력을 확대하고 조직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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