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팬덤·선동정치...“민주주의는 총구가 아니라 투표함에서 죽는다”
바이든이 읽은 외서
민주주의의 깨어남(Democracy Awakening)
운명을 바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무슨 책을 읽었을까요?
지난해 11월 24일 추수감사절 때 바이든은 손녀 피네건과 함께 매사추세츠주(州) 휴양지를 찾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한 서점에서 들렀다가 나오면서 구입한 책 한 권을 기자들에게 흔들어 보였습니다.
푸르고 노란 빛깔의 책이었습니다. 눈에 확 띄었습니다.
무슨 책인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국내 어느 매체도 이 책이 뭔지 다루지 않았더라고요.
뉴스레터 외설(外說)이 챙겼습니다. 사진을 확대해보니까요. 제목이 ‘데모크러시 어웨이크닝(Democracy Awakening·민주주의의 깨어남)’이었습니다. 저자는 헤더 콕스 리처드슨(Heather Cox Richardson) 미 보스턴 칼리지 역사학 교수.
바이든은 왜 이 책을 고른 걸 까요? 책 내용은 뭘까요? 궁금하시죠? 구해 읽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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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에서 미국이 갈림길(crossroads)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한 때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우뚝 섰던 미국이 권위주의의 수렁에 빠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입니다. 간당간당할 정도로 불안한(teetering) 상황이라고 우려합니다.
책에서는 양극화, 정치 혐오, 과도한 팬덤 정치, 갈라치기, 특정 인종·부류·계층 적대화하기 등을 언급합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수명이 다했다” “민주주의 체제는 국제사회의 정치 모델이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등 같은 자유 민주주의 진영에 영향을 줍니다. 세계 정치에 파장을 일으키고 국제질서에 균열을 냅니다. 전체주의, 권위주의 진영의 독재자들이 떵떵거리며 큰소리치게 됩니다. 적반하장이라고 방귀 뀐 놈이 더 성을 내는 행태가 더 심해집니다. 착하게 살면 호구,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총부리’보다 ‘투표함’에서 더 빈번히 죽는다(Democracies die more often through the ballot box than at gunpoint)”고요. 무력(武力)이 아니라 문(文)의 힘을 악용해 민주주의 체제를 변질시키고 유권자를 선동하는 짓들이 민주주의의 건강에 더 해롭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그러면서 2차 세계 대전 때의 상황을 소환합니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스크린에서 나치 독일의 군인들이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열고서는 저벅저벅 ‘거위걸음(goose-stepping)’으로 행진하며 우리 이렇게 강력한 군사력이 있다고 근육질을 자랑하는 모습을 세대를 건너며 숱하게 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만 보면 마치 히틀러가 강력한 무력으로 권력을 잡고 독재를 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거리에 탱크만 안 보이면 민주주의가 안전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히틀러가 제도권 정치에서 얼마나 인기있는 정치인이었는지,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득표율 36.8%로 2위에 올랐던 사실은 잘 모릅니다. 당시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득표율 과반으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할 줄 알았지만, 히틀러가 그의 과반을 막았고, 결선 투표까지 가는 이변 속에 히틀러가 36.8%의 최종 득표율로 2위를 했던 것입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운 선거)’였습니다.
히틀러는 이 선거로 자신의 인기가 얼마나 탄탄한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을지를 확인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이듬해 혼란 정국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히틀러를 내각 수상에 앉힙니다. 히틀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존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나치당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창했고 1934년 대통령이 사망하자 국민투표를 통해 총리가 대통령 지위까지 겸하는 ‘총통’, 독일어로 ‘퓌러(Führer)’가 됩니다.
뉴욕타임스가 독일의 권력자로 부상하는 히틀러는 ‘샛별’이라고 띄워 주고 그의 반유대주의적 발언은 단순한 선전 구호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반복해 보도하기도 했지요. 80~90여년이 흐른 2015년이 돼서야 뉴욕타임스는 과거 자신들의 히틀러 보도에 대해 반성한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독재자는 이렇게 투표장에서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난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 명예회장도 최근 출간한 저서 ‘더 빌 오브 오블리게이션스(The Bill of Obligations·의무장전)’에서 유권자가, 시민이,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지금 우리를 있게 한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면서 정치·사회 문제의 사실 관계를 바로 알고 정통해지기, 침묵하거나 방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등을 의무 사항으로 제안했습니다.
‘데모크러시 어웨이크닝’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은 ‘말’ 그리고 ‘거짓된 역사’를 활용해 대중을 선동해 권력을 잡는다고 분석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1958년 작 ‘디 오리진스 오브 토탈리태리언니즘(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전체주의의 기원)’ 등을 인용해서요.
이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기존에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이점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특정 부류, 세대, 계층, 세력과 진영을 상대로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너희의 권리를 보장해줄게” “저쪽 애들이 너희를 쓸어버리지 못하도록 내가 막아줄게”라며 약속합니다. 특정 세대가 앞에서 뒤로 물러나고, 특정 직업군이 예전 같지 않아지는 데는 수많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삯꾼 정치인들은, 독재자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낱낱이 알려주기보다는 “당신이 쫓겨나는 이유는 저 적들이 당신의 자리를 당신의 권력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라고 주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에 대한 지지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이 영웅에 대한 그 어떤 부정적인 의견이나 사건도 지지층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나의 마음을 준 영웅의 오류는 곧 나의 오류,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자기 부정을 하지 않으려는 보호 본능에 따라 ‘나의 영웅’을 더욱 지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의 선택,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 공고화하기 위해서라도 영웅의 잘못이 실제로는 잘못이 아닐 수 있는 근거와 논리를 찾게 되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가 나’이고 ‘내가 ○○○’가 되는 정체성 동일시화가 이뤄지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팬덤화가 과해지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무시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의 미덕인 준법 정신, 양심과 관례, 열린 태도와 협치 정신 등도 남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뿐입니다.
나의 영웅이 무슨 범죄나 비도덕한 행실을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로 판명나더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밝히려 한 언론과 수사·사법기관을 ‘못된 놈’이라고 폄훼하고 악마화합니다. 그리고 나의 영웅은 이런 악마의 희생양이라며 연민하며 ‘내가, 우리가 지켜줘야 할 영웅’으로 승화시킵니다.
2016년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미국을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로 평가했습니다. 등급이 떨어진 것입니다. 세계 민주주의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비영리 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2021년 “지난 10년 동안 미국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며 개혁을 “시급히” 촉구했습니다.
저자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앞서 설명드린 문제점 외에 특정 부류가 또는 ‘나는 우월해’ ‘더 대우받을 자격이 있어’ ‘나는 저들이 하지 않은 걸 해낸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소수들이 미 의회와 행정부 등을 틀어쥔 탓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책장을 덮으면서 ‘깨어 있는 시민이 고인 물 같은 정치인들을 새 물로 갈아줘야 한다’고 저자가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 대선이 올 11월에 치러집니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바이든의 재선이냐 트럼프의 복귀냐 아니면 제3자의 이변이냐로 소비되고 말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살아있느냐 앞으로 지속가능 하느냐, ‘다시 민주주의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느냐’를 가늠해보는 시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민주주의의 각성’. 이 말은 곧 우리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헤더 콕스 리처드슨 교수는 책 목차 앞장에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언론인인 월트 휘트먼 (Walt Whitman)의 저서 ‘민주주의의 풍경(Democratic Vistas·1871년)’의 한 문장을 소개했습니다.
“We have frequently printed the word Democracy. Yet I cannot too often repeat that it is a word the real gist of which still sleeps, quite unawaken’d.”
“우리는 자주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찍어낸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여전히 잠들어 있으며 깨어나려면 멀었다고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지만, 그 깊고 진정한 의미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민주주의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죠.
리처드슨이 책 제목을 ‘민주주의 어웨이크닝(깨어남)’이라 한 것도 휘트먼의 이 문장에 영감을 받아서인 듯합니다.
바이든도 읽은 이 책, 우리 정치인들도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러고보면 바이든이 굳이 이 책을 취재진 앞에서 들어올린 것은 세계 시민에게 일독(一讀)을 권하는 제스처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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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왜 목에 히브리어 타투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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