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혹은 소인배···김수영문학상 수상시인 박참새의 자평[이 사람을 보라]

임지선 기자 2024. 1. 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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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라]
2024년 남다른 생각과 단호한 행동으로 없던 길을 내는 문화인들을 만납니다.

“누가 시 왜 쓰냐고 하면은, 내 깡패 되려고 그렇소,라고 답하면 되겠습니다.”

지난해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이의 수상소감이다. “깡패”가 되겠다는 폭발적 에너지를 선보이는 수상자의 이름은 ‘참새’다. 1995년생 박참새. 그를 두고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김수영이라는 이름의 상에 값하는 당선자”라고 표현했다.

박참새는 ‘시인’이라는 두 글자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는 수상 이전부터 문학계 안팎에서 ‘핫한’ 인물이었다. ‘가상실재서점 모이’의 북큐레이터였고 팟캐스트 ‘참새책책’ 진행자이자 김겨울·이슬아 등을 인터뷰한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세미콜론)의 작가이다.

김수영문학상 수상 작품을 모은 시집 <정신머리>(민음사)를 출간한 박참새를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이제 막 시인의 타이틀을 단 그에게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답은 단 세 글자였다. “또라이.”

박참새 시인이 지난달 2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자신의 첫 시집 <정신머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박참새는 “수상소감이 이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제 삶의 반경이 너무 좁아요. 활동 영역도 좁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타입이에요. 규칙과 규율에 따라 살고 있는데 시를 쓸 때는 안 그래도 되고, 오히려 그러지 말라고 하니까 시를 쓸 때 사지로 내몰리는 기분이 좋았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 그 상태가 좋았어요. 그래서 시를 쓰게 됐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시를 쓰기 시작한 건 이제 ‘2년6개월쯤’ 됐다. 2021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4주짜리 수업을 들었다. 좋아하는 김소연 시인의 수업이었다.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시를 모아 김수영문학상에 응모했다.

북큐레이터·팟캐스트 진행·대담집 작가 그리고 시인
지난해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정신머리’ 출간
등단 전부터 톡톡 튀는 실험…“그냥 자유롭게 쓰겠다”

<정신머리>에 담긴 시들은 틀을 깨고 비튼다. 제목 그대로 정신머리를 흔든다. 시 ‘Defense’는 같은 내용의 시가 영어로 한번, 한국어로 한번, 또 한국어로 한번 반복된다. 첫번째 시는 박참새가 영어로 지은 시이고, 두번째 시는 원문 영어 시를 챗GPT-3.5에게 번역해달라고 했다. 마지막 시는 박참새가 원래 의도한 내용을 담은 한국어 시이다. “i wish i had me/ as my own ally”, “내가 나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동맹으로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아군이라면/ 나 자신을 원하겠지”.

이 시는 ‘내가 넘어서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로 시를 쓰는 수업 과제의 일환이었다. 그는 주제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모국어를 떠올렸다. “모국어를 배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한국어가 모국어여서 무의식 속에 한국어를 탁월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이걸 벗어나고 싶어서 영어로 써봤는데 신기하게도 기대했던 바를 완전히 벗어난 결과가 나왔어요. 시를 쓸 때 한글과 영어의 간극이 컸어요. 정말 한국어에 너무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연습을 많이 해볼 생각이에요.”

박참새는 “시가 어렵다고 느끼면 그 시집이 자기랑 안 맞는 것”이라며 “잘 맞는 시집은 잘 읽힌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어도 사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쉬운 행위는 아니다. 그는 ‘착란’을 통해 시 읽는 법을 말한다. “-읽는 방법 /루 : 위아래로 읽으시오 /리 : 뒤집어서 읽으시오 /루와 리 : 살고 싶니?”

박참새 시인이 지난달 2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시만 이렇게 썼지, 인간은 소인배예요.”

파괴적이고 강렬한 시를 보여줬지만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내향형이고 멀리 가는 것도 싫어하는 스타일이지만 그의 삶은 늘 사람과 책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필명은 참새라는 새의 속성에 딱 들어맞는다. 만나자마자 필명의 뜻을 물었을 때 그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할 때 누구나 잘 아는 일상적인 새라고 생각하고 필명으로 썼는데 독자들과 접점이 커지면서 의미가 더해졌다”고 말했다. “참새가 사람을 무서워하면서도 엄청 좋아한대요. 사람 근처에서 맴도는 속성이 있어서 저랑 닮았다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 후 그는 미술관 큐레이터, 잡지사 에디터를 거쳐 북카페 한쪽에서 ‘박참새가 고른 책’ 코너를 운영했다. 북카페를 다녀간 이들은 ‘박참새 픽(pick)’에 호응했다. 이때 독자들과 관계를 확대해 만든 게 서점 ‘모이’였다. 이때부터 그는 이미 ‘문학계 인플루언서’였다.

2022년 김겨울·이슬아 등을 인터뷰한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 여성 창작자들에게서 듣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초판 3000부가 다 팔렸다. “소속 없이 독립자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던 거죠. 평소에 알거나 동경하던 선배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도 지금 제가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있었을 테니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시인 7~8명을 인터뷰한 두번째 대담집도 곧 출간된다. 박참새는 “책을 만들다가 편집자들과 ‘저도 시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여러 활동을 해온 박참새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가장 좋아할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의 제가 가장 빛났으면 좋겠어요. 일이 오래 끊겼을 때 저를 많이 비관했거든요. 다시 그런 시기가 온다면 ‘지금 잘 쉬는 거다’ ‘지금 아주 멋지게 집을 지키고 있는 거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시기가 안 오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요.”

그의 시, 답변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뿜어내듯 앞으로 박참새가 보여줄 길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을 묻자 “시와 소설, 에세이 같은 장르는 편의상 만들어졌고, 시장 논리에 따른 구획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르를 의식하지 않고 써보고 싶어요. 소설 수업을 들었을 때 선생님은 제 소설이 ‘시 같다’고 했어요. 시 수업에서는 ‘너무 소설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차피 그렇게 이야기할 거라면 그냥 자유롭게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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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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