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세상만窓] 아르헨 밀레이 대통령은 `히틀러`일까?
밀레이, 국가 부도와 고물가에 시달리는 경제 개혁위해 동분서주
개혁은 '피와 땀' 요구...성공 여부는 아르헨 국민들의 선택에 달려있어
개혁(改革)은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고통과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개혁'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포퓰리즘 정책에 오랫동안 중독된 나라일수록 그렇다. 나라의 기틀과 살림을 튼튼히 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기대이익은 기약할 수 없는 반면 눈앞의 작은 이익을 뺏기는 것이 대중들엔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르헨티나의 모습이 딱 여기에 해당한다.
◇"밀레이 대통령은 히틀러"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으로 20세기초만 하더라도 세계에서 부유한 나라 10위권에 들었던 아르헨티나는 에바 페론이라는 좌파 포퓰리스트의 집권 이후 나라가 산산조각으로 망가졌다. 페론의 선심성 정책은 국민들에게 노예의식을 깊숙이 심었으며, 대외 교역에 필요한 달러가 모자라 여러 차례 국가부도라는 수모를 당하게 했다.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경제학자 출신의 정치인 하비에르 밀레이를 새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물가를 잡고 화폐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 달러화 사용과 중앙은행 폐지라는 극단적 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방만한 공무원 수를 조정하는 등 발빠른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그런데 이런 조치는 역시나 일부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심지어 나치의 '히틀러'라는 비난조차 가해진다. 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매체 페르필에 따르면 인권운동가이자 198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92)은 밀레이 대통령을 히틀러에 견줬다.
에스키벨은 밀레이 행정부가 지난주 국회에 전달한 총 664조항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법안 중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2년간 입법부의 권한을 행정부에 이양하는 것과 관련, "히틀러도 그랬다"며 비난했다. 그는 "선거로 선출된 아돌프 히틀러도 1933년 독일 국회에 특별 권한을 요구했으며 결국 정치지도자, 노조원,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박해와 숙청이 시작됐다"며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닌, (행정부가) 국회에 특별 권한을 요구하는 지금, 우리의 현재를 조명해야 한다"면서 인권과 시민들의 자유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밀레이를 히틀러와 비교한 건 에스키벨뿐만이 아니다. 중남미의 좌파 지도자들도 일제히 그를 히틀러라고 비난하고 있다.
지난 8월 아르헨티나 예비선거에서 밀레이 당시 후보가 깜짝 1위를 차지하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상황을 설명하면서 히틀러의 시작을 회상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히틀러는 인플레이션 이후에 지도자로서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는 언제나 우파에 도움이 된다.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와 약간 비슷하다. 나는 밀레이와 히틀러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적었지만, 여론은 그가 밀레이와 히틀러를 동일시했다고 판단했다. 에바 페론이라는 좌파 리더가 나라를 망가뜨렸는데도 책임을 인정하진 않고, 우파가 그 과실을 따먹는다는 것이다. '극우 프레임'을 악용한 전형적인 좌파들의 '본말전도' 선전선동으로 볼 수 있다. 좌파 정치인인 오브라도르의 구호는 '사회정의와 복지'다.
콜롬비아에서 사상 첫 좌파 정부를 수립한 게릴라 출신 페트로 대통령도 지난 8월 말 밀레이 후보가 "사회주의자들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더 빛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모두 비참해지기를 바라는 '쓰레기'이자 '인간 배설물'이며 '정신과 영혼의 질병'이고 나쁜 사람들이다. 이게 현실이다"라고 언급한 인터뷰를 자신의 SNS에 공유하면서 "이것이 바로 히틀러가 했던 말이다"고 주장했다.
◇개혁은 인기가 없어…"국민들의 선택에는 반드시 댓가가 따른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올해 신규 채용된 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해고 법안에 서명하고 이를 관보에 게재했다. 이에 따라 2023년 1월 1일 이후 채용돼 12월 31일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공공부문 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계약은 연장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번 공무원 해고 법안으로 최소 5000명 이상의 공무원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공무원노조(ATE)는 7000명 이상의 공무원들이 해고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르헨티나 공공부문은 재정적자로 국가가 부도난 그리스처럼 만성적인 정실주의 폐해로 인해 비대해지면서 나라살림을 망가뜨린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아르헨티나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기준 공공부문 근로자는 341만3907명으로, 전체 인구(4600만명)의 약 7.4%에 달한다. 이는 2%대 수준인 주요 선진국의 3배 이상이다.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의 2.2%가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급여로 지출되고 있다.
밀레이 행정부는 복잡했던 수입절차를 간소화해 국내 수입 물가 완화 조치도 실행했다.
공무원 해고와 수입 제한 해제 조치는 밀레이 대통령이 발표한 대대적인 경제 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정부부처를 18개에서 9개로 축소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와 함께 화폐 가치 정상화를 위해 페소화 가치를 50%나 평가절하했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와 페소화 간 괴리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12월 20일에는 정부지출 삭감, 국유기업 민영화, 수출입 자유화, 각종 가격 통제 및 교통·에너지 보조금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300개가 넘는 경제 개혁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책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을 리 없다. 국민들은 신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반발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긴축재정을 위해 올 1월부터 교통비 등 정부보조금이 삭감될 것으로 알려지자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모든 선택에는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 페론주의를 선택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정부가 주는 '작은 당근'을 즐긴 이유로 일자리 증발, 정부 재정 적자, 고물가, 화폐가치 추락이라는 댓가를 치러야 했다. 밀레이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당장은 '채찍'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나라살림의 건전화와 물가·화폐가치 안정이라는 댓가를 기대할 수 있다.
밀레이는 자유주의 경제철학의 신봉자다. 그는 "제가 존경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면 둘 중 하나도 달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며 "(반면) 평등보다 자유를 우선시하면 두 가지 모두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장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저서 '격동의 시대'(The Age Of Turbulence)에서 국가 번영의 가장 큰 요인으로 '경제적 자유'를 꼽는다. 각 경제주체들이 스스로의 계산으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때 생산성이 높아지고 국민소득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밀레이 대통령에 '극우파'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괴짜 대통령'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밀레이의 개혁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이는 '국가의 노예'냐, 아니면 '자유인'이냐 사이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어느 길을 선택할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강현철 신문총괄 에디터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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