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동훈에 “동료시민으로 부탁…채 해병 묘소 참배” 외친 MZ 예비역
대전현충원 찾은 한 위원장에 요청
보좌진·당직자에 접근 제지 당해
“외면하고 가시니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채○○ 해병의 생일입니다! 참배하고 가주십시오!”
지난 2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바로 곁에서 이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해병대 군복을 입은 한 남성이 현충원 방명록 작성을 마친 한 위원장에게 다가가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채모 상병 묘역에 들러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한 위원장이 이 남성에게 응답하지 않고 떠나는 모습이 담긴 37초짜리 영상이 돌고 있다. 접근을 제지하는 보좌진·당직자 등에 가로막힌 채 “참배해달라”고 목청껏 외친 그는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채 상병 사망사고의 진상규명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복직 등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3일 통화에서 “그날이 채 상병의 생일이었다. 대전까지 내려오신 김에 참배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라며 “외면하고 가시니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한 위원장과의 조우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에 따르면 이들은 한 위원장이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달 19일부터 채 상병의 생일을 맞아 추모 행사 참여자를 모집했다. 정 위원장은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 일찍 현충원에 도착했다가 때마침 그곳을 방문한 한 위원장을 보게 됐다고 했다. 그를 포함한 해병대 예비역 서너 명은 “대전까지 내려오신 김에 조문해주십사 부탁하는 마음으로 인파를 헤치고 다가갔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청년의 생일을 맞아 여당 비대위원장에게 추모를 부탁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특검법을 통과시켜달라는 것도 아니고, 참배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충분히 들릴 만한 크기로 얘기를 했는데, 당 관계자인지 알 수 없는 분들이 자꾸 밀치며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그러니 더 크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정 위원장의 요청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민들과 취재진을 향해 “대전은 우리에게는 승리의 상징”이라며 “당연히 제가 먼저 와야 할 일이고 당 행사 가서 많은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이어 단체 사진 촬영을 위해 현충문 입구로 이동했다.
정 위원장은 한 위원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 붙잡기를 단념했다고 한다. 그는 “한 위원장이 말하는 ‘동료 시민’으로서 부탁을 드린 것인데, ‘싫으면 싫다 바쁘면 바쁘다’ 말도 없이 무시당했다”고 했다. 뒤늦게 한 위원장이 지지자들과 악수하는 사진 등을 보고선 ‘외면당했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고 했다.
자신을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밝힌 그는 “당원이자 동료 시민으로서, 역시 동료 시민이었던 이에 대한 추모를 부탁했을 뿐인데 씁쓸하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현충원 방명록에 “선열들의 삶과 죽음을 배우고, 동료 시민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정 위원장은 한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군 복무 중 급성 백혈병에 걸리고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고 홍정기 일병의 유족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을 인상 깊게 봤다고 했다. 그는 “순직 장병에게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라 생각했기에, 더 기대가 컸다”고 했다. 한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이던 지난달 15일 홍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씨와 1시간쯤 면담하며 눈물을 흘힌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터다.
2013년 전역한 ‘MZ 세대’ 해병대 예비역인 정 위원장은 전역 후 10년간 해병대 활동에 나선 적이 없었으나 “해병대라는 집단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후배에 대해 아무 소리도 않는다는 게 부끄러워 나서게 됐다”고 했다.
한 위원장이 떠난 후 해병대 예비역 30여명은 채 상병을 비롯한 순직 해병 묘소에 참배했다. ‘어떻게 채 상병의 생일을 알았나’라는 질문에 정 위원장이 답했다. “그 묘소에 자주 가서 들여다봤어요. 묘비에 생몰년이 써있거든요. 2003년 1월2일생이요”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9231724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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