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첫 흑인 총장의 ‘최단기 퇴진’…사임 배경에 ‘기부자 영향’도 주목
인종·성별 등 ‘문화전쟁’으로 번져…여진 계속될듯
일부 교수들 “정치적 압박의 승리” 우려도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클로딘 게이 미국 하버드대 총장이 2일(현지시간) 자진 사퇴했다. 지난해 7월 취임 후 불과 5개월여 만이며, 1636년 하버드대 개교 이후 최단기 퇴진 기록이다. 그동안 게이 총장이 논문 표절과 반(反)유대주의 논란 등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왔지만, 하버드대 기부자들 사이에서 지지가 무너진 것이 그의 사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하버드대 기부자들 사이에 게이 총장에 대한 지지가 무너진 것이 그의 사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표절 논란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지만 고액 기부자들의 압박, 진보 성향의 대학을 겨냥한 문화 전쟁의 진통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게이 총장은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대의 약 400년 역사상 첫 흑인 총장, 두번째 여성 총장으로 주목받았다. 학교 뿐만 아니라 미 재계와 정계까지 확산한 거취 논란 속에서도 하버드대 이사회는 지난달 그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지만, 결국 당사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을 택했다.
대학 총장은 지적 공동체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캠퍼스의 행정가, 그리고 기금 모금가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하버드대는 미국 내 어느 대학보다도 막대한 507억달러(한화 약 66조4000억원)를 굴린다.
재정 면에서 최근 하버드대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지난해 스탠퍼드대의 기부금 수익률은 4.4%에 비해 하버드대는 2.9%에 그쳤다.
하버드대의 유대계 고액 기부자들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고조된 학내 갈등 속에서 게이 총장이 학생들의 반유대주의 발언에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며 기부 철회 의사를 밝혔다. 특히 유대계 헤지펀드 거물 빌 애크먼은 게이 총장을 여러 차례 공개 저격했다. 게이 총장이 신속하게 테러 행위를 규탄하지 않아 대학가에 반유대 물결이 확산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캠퍼스 이념화’가 문제라며 게이 총장의 자격을 문제 삼기도 했다.
사퇴 압박은 지난달 5일 미 연방 하원이 아이비리그 대학 유대인 혐오 논란과 관련해 개최한 청문회 참석 이후 커졌다. 게이 총장은 ‘유대인을 학살하자’는 일부 학생들의 주장이 대학 윤리 규범 위반이 아니냐는 질문에 “끔찍한 발언”이라면서도 “하버드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답변이 나온 후 분명한 입장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이 가중됐다.
반 유대주의 논란 이후 게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고, 교내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했다. 보수 성향의 온라인 매체 워싱턴 프리 비컨은 최근 몇주간 게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잇따라 제기했다. 이달 1일에도 6건의 추가 표절 의혹을 보도했다. 이 매체의 주장에 따르면 게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은 약 50건에 달한다.
다만 게이 총장의 한 측근은 CNN에 그가 새 표절 의혹 보도가 나오기 전인 지난주 말 사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올해 하버드대 지원자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동문 기부자들의 실망감을 키웠다고 NYT는 전했다. 한국의 수시 입학에 해당하는 조기 전형인 ‘얼리 디시전’에 지원한 하버드대 2024학년도 입학 희망자 수는 전년에 비해 17%나 줄었다.
일부 기부자와 동문은 게이 총장의 사퇴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하버드 유대인 동문연맹은 성명을 내고 “게이 총장은 하버드에서 증오를 퍼뜨리려는 이들을 암묵적으로 독려했다”며 “많은 유대인은 더 이상 하버드 커뮤니티에서 공부하고 활동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졸업생이자 유명 벤처 투자자인 샘 레신은 소셜미디어에 “게이 총장이 나가는 걸 보게 돼 기쁘다”고 적었다.
게이 총장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여진도 예상된다. 흑인이자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그를 향한 비판의 핵심은 하버드대가 표방했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에 공격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 내 반유대주의, 표현의 자유, 인종·성별 등 다양성 잣대를 둘러싼 격렬한 문화 전쟁이 게이 총장의 거취를 둘러 표면화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반유대주의로 시작된 논란은 게이 총장의 인종과 성별, 학자로서의 자격을 둘러싼 논쟁으로 옮겨갔다. 보수 진영에서는 애초 그의 총장 선출이 능력과 관계없이 다양성을 증진하려는 대학 정책의 산물이었다고 공격했다.
일부 교수들은 게이 총장의 사퇴가 결국 교육의 장에서 벌어진 정치적 압박의 승리라며 우려했다. 칼릴 지브란 무함마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끔찍한 순간”이라며 “공화당 지도부는 대학의 독립성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게이 총장의 사임으로 더욱 대담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 교수 앨리슨 프랭크 존슨도 “이보다 실망스러울 수는 없다”며 “확립된 학문적 원칙에 기초해 결정을 내리는 대신, 우리는 대중의 사냥을 받았다”고 아쉬워했다.
게이 총장의 뒤를 이어서는 하마스에 비판적인 입장을 공개 표명한 앨런 가버 교무총장이 임시 총장을 맡는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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