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정 “파도가 솟구치면 물속에 숨는 지혜도 필요”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4. 1. 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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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덮친 이상 한파로 양산 통도사로 향하는 열차는 서행과 연착을 반복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종찰 통도사의 자랑인 소나무 숲길을 지나 꼭대기에 다다르니 작은 암자가 나오고 거기서 더 한참을 올라갔다.

바닥과 가구에 칠해진 옻칠 향기가 코끝을 흔드는 사이 조계종 종정(宗正·최고 정신적 지도자) 성파(性坡)스님(85)이 나타났다.

―종정이라는 무게감이 있으실 텐데 생활에 변화는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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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스님 신년 인터뷰
도자기·옻칠·민화 10여가지 동시에
85세지만 하고 싶은게 무진장
500살 인생 정신적 장수 누리죠
행복·불행은 내가 선택하는일
모든건 마음먹기 마련
미꾸라지가 용이 되듯
청룡해엔 희망갖고 도전하길

“증오와 분노로 마음밭이 거칠어져, 화해의 덕성을 길러야”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이 인자한 모습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반도를 덮친 이상 한파로 양산 통도사로 향하는 열차는 서행과 연착을 반복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종찰 통도사의 자랑인 소나무 숲길을 지나 꼭대기에 다다르니 작은 암자가 나오고 거기서 더 한참을 올라갔다. 비닐하우스 같이 생긴 공간엔 각종 장비와 도자기, 둘둘 말은 한지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과 꼭 닮았다. 바닥과 가구에 칠해진 옻칠 향기가 코끝을 흔드는 사이 조계종 종정(宗正·최고 정신적 지도자) 성파(性坡)스님(85)이 나타났다. 예술가로도 명성이 높은 스님은 법복 대신 작업실 경량 패딩을 걸치고 악수를 청했다. 농사꾼처럼 거센 아귀힘이 느껴졌다.

―무슨 일을 하다 오신 건가요.

▷요즘 옻칠 작업인 칠화에 빠져 있어요. 이것 말고도 일꾼들하고 이것저것 해요. 시간 가는 줄 몰라요. 보통 재미가 아닙니다. 잘 돼도 희열, 못 돼도 괜찮다. 그 자체가 재미라.

―도자기를 비롯해 서예, 천연염색, 산수화, 민화, 한지 등 10여가지를 하시고 계신데.

▷가짓수가 많아요. 한 우물을 파야 하는데 다른 게 눈에 들어오고. 하나도 옳게 된 게 없어요. 허허. 말 한마디가 끄는 힘을 일 마력이라고 하죠. 말이 한 마리일 때는 일마력밖에 안 된다는 얘기에요. 열 마리가 하면 10마력이죠. 자기 혼자 10마력을 하려면 차력, 즉 남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스스로 500살 인생을 사신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한 분야의 평생 대가가 됐다 하면 적어도 50년은 했다고 봅니다. 50년 장인 10명을 모으면 500살이 되는 거죠. 신체적인 나이는 85세지만 정신적인 장수라.

―전문가에게 어떻게 배웁니까.

▷내 사정을 말하고 당신이 여태까지 한 것을 썩히지 말고 보따리를 풀어달라 간청하죠. 도용하거나 나쁜데 써먹지 않는다고 하면 다 알려줍디다.

―그렇게 해도 단숨에 명인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수준이 같아지지 않지만 시간을 벌 수는 있지요. 가령 여기서 서울로 갈라면 자전거나 버스, 기차를 타고 가도 한 가지라. 뭘 타고 가든지 서울에 도착하면 서울이라.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이 청룡의 해를 맞아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N잡러’라고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젊은이들하고 상당히 닮은 것 같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정신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5학년 때 6.25 전쟁이 났으니 그다음부터는 학교 공부를 못했죠.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익히고 사서삼경을 뗐죠. 스무살 무렵 출가하기 전 10대 때 쓴 한시가 150편이 넘어요. (스님이 16~18세에 공책에 적은 한시 190여편은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온계시초’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일본어와 중국어도 능통하신데, 끊임없이 배우는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 변명 같지만 ‘내가 가는 곳이 학교다. 만나는 사람이 다 스승’이라고 말해요. 다른 사람들은 졸업하면 학생이 아닌데 난 졸업을 못 했기 때문에 평생 학생이죠. 우주무한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이 있으신지.

▷ 나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알려면 단순히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책에 나오는 그 사람의 평소 말을 읽으면서 대화를 하는 거라. ‘그리 말했냐 난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석가모니, 공자, 맹자, 노자 책을 보면서 자문자답하면 이해가 잘 됩디다.

―예술은 나만의 독창성을 중시하는데 불교는 나라는 아상(我相)을 없애라고 합니다.

▷아상을 버리면 진상이 나오죠. 난 나만의 것을 강조하거나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꿋꿋하게 한결같이 죽 가다보면 저절로 자기 색깔이 나타나는 거지. 문인화의 경우도 꽃이나 잎 형상을 보고 문기(文氣)가 나타나는 거라, 느낌으로 나타나는 거지. 도가 깊으면 뭔가 나타나겠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 나라는 존재가 있는 한 내가 즐기면서 하는 거지요. 그 이상의 궁극적인 결과를 목표로 삼는 것은 없어. 하고 싶은 게 무진장이다. 끝을 내려고 하지 않고, 하는데 까지 하는 거로 만족합니다.

―불교에서는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 나는 무소유가 아니라 욕심이 대적(大賊)이라 말해요. 가령 깊은 물이 있으면 수영을 금지한다고 써 붙여요. 이런 말은 일반 대중들에게 적용되는 거지. 현해탄을 넘는 조오련은 들어가도 됩니다. 계율 역시 그래요. 욕심도 여러 질이라. 과욕을 부리지 말고 탐욕을 부리지 말라는 말이지 욕망이 없으면 어떻게 견성성불을 하나. 발심 자체가 욕망이라. 내 욕심은 다르지요.

―종정이라는 무게감이 있으실 텐데 생활에 변화는 없으신지요.

▷무게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행사에 나가면 그 행사를 하는 거고, 벗어나면 작업복 입고 뛰어다니죠. 종정 됐다고 뭐 다른가. 평소 생활하고 똑같습니다.

―항상심을 갖고 있는 것이 쉽진 않은데.

▷어렵지만 그게 필요한지라. 부처님도 석가모니 주불이 있고 문수보현이 있어요. 문수는 지혜고 보현은 행(行)이라. 필요에 따라 문수를 행할 때가 있고 보현을 행할 때가 있는 거라. 보현이 따로 있고 문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처에 다 속해 있어요. 내 몸도 오른팔, 왼팔이 있듯이 왼팔을 썼을 때는 왼팔을 쓸 뿐이지, 고정돼 있는 게 아닙니다. 불법도 그래요. 무유정법이라. 딱히 정해 놓은 법은 없어요.

―퇴직을 앞둔 많은 직장인이 뭘 할지 몰라 불안해합니다.

▷답답해요. 나는 여든다섯 살이라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할 일이 저리 많은데. 직장에 묶여 있다 풀려나면 자유의 몸이 돼 더 좋지요. 해탈했다 생각해야지. 할 일이 없으면 만들면 할 일이라. 물론 자신감이 많이 없을 수가 있어요. 이는 극복해야지요. 퇴직했을 뿐인지 나는 나 그대로고, 이 세상도 그대로라.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이 청룡의 해를 맞아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평소 수행이나 마음공부를 해야 할까요

▷그런 말은 너무 어렵고 예를 들어볼게요. 부산의 어떤 여성 분이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해서 태종대 자살바위를 갔어요. 떨어지려고 하다가 아이 생각이 나고 또 떨어지려다 영감 때문에 못 떨어졌지. 다섯번을 그러다 통도사에 도인스님이 있다는데 한번 만나보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극락암 경봉스님을 찾아왔어요. 어디서 태어났냐는 스님의 물음에 이북에서 넘어왔다고 해요. 넘어올때 광경을 말해보라 했더니 포탄이 비 오듯 하는데 송장을 넘고 넘어 구사일생으로 왔다고 답했어요. 스님은 이렇게 말했죠. 그때를 생각하라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어요. 결국 그분은 재기에 성공했죠.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에요.

―출가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요.

▷경쟁 대상이 없어서 내가 행복한 거라. 내가 멍청해서인지 어제의 나하고도 비교하지 않아요. 일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밑천이 들고 본전 생각이 들죠. 난 그게 없기 때문에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

―스님처럼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극단 선택이라는 게 있잖아요. 극단 선택을 하지 말고 죽었다고 생각하면 제일 편합니다. 내가 없다고 해도, 내가 있다가 없을 뿐이지 다른 변동이 없어요. 살아있는 자체가 죽은 것보다 낫지요.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서 내가 내 것을 찾아 먹어야지. 내 시간을 찾아 먹어야 합니다.

―시간이 중요하군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살아있는 자체가 내 시간이다. 죽어버리면 내 시간이 없어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가. 어떤 자산보다 가치가 있는 게 시간이라.

―날마다 새롭게 사는 ‘일신우일신’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다했다’는 것은 없어요. 새로운 게 끝이 없지요.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파도가 배를 엎어버리기도 해요. 센 파도가 솟구치면 배가 넘어집니다. 이 물이라는 것이 어떨 때는 잔잔하고, 어떨 때는 파도가 세요. 물에 있으면서 파도에 전복 안 되도록 하는 것이 배를 운항하는 묘지요. 파도를 무시하고 덤비면 배가 넘어져요. 넘어지면 자기만 손해지.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사람이 물에 뜬 배와 같아요.

―파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파도를 정면 돌파하겠다고 넘다 보면 자빠집니다. 잠수해서 파도 속으로 쑥 빠져나가야돼. 물속에 들어가버리면 파도가 지나가 버려요. 때로는 자존심도 버리고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요즘 정신과 예약이 미어터진다고 합니다.

▷정신과는 병이 났을 때 약을 처방해주는 곳입니다. 병나기 전에 능히 예방하는 게 낫지요. 불교는 의학으로 치면 예방의학입니다. 약사여래가 지옥이니 뭐니 설명하죠. 그런 것도 다 예방하기 위해서 한 거라. 죄를 지으면 무슨 지옥에 가고, 이렇게 살면 도산지옥에 간다고. 사전에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예방하는 것이죠.

예술가이기도 한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이 통도사 암자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 대립과 혐오 정서가 심각한데요.

▷제일 우려되는 것이 정신력입니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정신력을 키우려면 각자가 기본기를 쌓아야 하고, 교육에서도 인문학을 중시해야 합니다. 증오와 분노로 마음밭이 거칠어졌는데 인내와 용서하는 화해의 덕성을 길러야 합니다.

―청룡의 해를 맞이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청룡은 희망을 말하는 겁니다. 미꾸라지가 용이 된다는 어변성룡처럼 용이 돼보자 그런 희망과 용기를 가지라는 뜻이라. 행불행은 본인에게 있어요. 행복할래? 불행할래? 이건 내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임자가 있어요. 그런데 행복은 형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강호의 맑은 바람과 산속의 밝은 달은 아무리 취해도 누가 범죄라고 하지 않아요. 얼마든지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지요. 행복도 남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취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를 알아차려야 행복한 거지 손에 쥐여줘도 모릅니다.

양산/이향휘 선임기자

성파스님은

△1939년 경남 합천 출생 △1960년 통도사 출가 △1981년 통도사 주지 △2013년 16만 도자대자경 조성·장경각 건립 △2018년 영축총림 방장 추대 △2022년 3월~ 조계종 제15대 종정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이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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