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만 되면 켜지는 '벽 없는 미술관'..."예술 감상은 특권일 수 없다"
① 청와대 영빈관 '열두 개의 빛'
② 광화문 일대 '서울라이트 광화문'
③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호두까기 인형'
"온 도시를 예술작품으로 도배하자. 그래서 모두가 예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작가 앙드레 말로(1901~1976)는 1954년 이 같이 주장했다. 특권이 된 문화 예술 향유 기회를 공평하게 공유하자는 구상이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그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었다.
새해부터 전국 곳곳의 도심이 '거대한 캔버스'가 됐다. 밤의 어둠을 배경으로 건물 외벽에 알록달록한 빛을 입히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는 것. 미디어 파사드는 공공예술의 성격이 짙다. 외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안진국 미술평론가는 "카메라의 발명이 르네상스 미술에서 모더니즘 미술로의 변화를 이끈 것처럼 기술 변화가 예술의 형태를 급속도로 바꾸면서 미술관 안 전시가 바깥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① 청와대 영빈관 수놓은 '열두 개의 빛'
청와대 개방 1주년을 맞아 공개된 미디어 파사드 작품 '열두 개의 빛'. 과거 대통령들이 국빈 행사장으로 쓰던 청와대 영빈관 외벽이 캔버스이자 무대가 됐다. 돌기둥을 따라 하얀 빛줄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면 청와대를 거쳐간 12명의 전직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영빈관을 수놓은 색색의 빛은 어느새 덩어리를 이뤄 하늘을 향하고 이내 태극기를 그려낸다. 이어 국민 150명이 보낸 희망의 메시지가 차례로 등장하며 새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청와대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 역대 정부 역사를 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해 표현했다. 웅장한 음악이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이 작곡·연주한 곡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김성수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박주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청와대와 국민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데에는 미디어 파사드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매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총 12회 상영되는 미디어 파사드는 이달 5일까지 청와대를 방문하면 누구나 볼 수 있다.
② 광화문 광장 일대가 모두 공공예술의 장 '서울라이트'
요즘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는 밤마다 빛과 음악의 향연이 열린다.. 이달 21일까지 계속되는 '2023 서울라이트 광화문'. 100년 만에 복원된 광화문 월대에서 광화문 광장에 이르는 800m의 직선 구간을 따라 미디어 파사드, 조명 쇼, 미디어아트 전시가 펼쳐진다.
하이라이트는 광화문과 경복궁 담장에 하루 4차례씩 35분 동안 펼쳐지는 미디어 파사드다. 이달부터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6시 정각에 시작한다. 한국, 헝가리, 독일, 프랑스, 호주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광화문에 빛을 입힌다. 이이남 작가의 '광화산수도'는 서울을 배경으로 도시와 산수가 어우러지는 도시산수도를 형상화하는데, 조선왕실 어좌 뒷편에 놓였던 '일월오봉도'와 십장생을 그린 조선 민화 '십장생도'를 소재로 빛의 물결을 도심에 수놓는다.
③ '호두까기 인형극'의 디지털 재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에서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디지털 인형극으로 재해석한 '호두까기 인형극'을 다음날 4일까지 상영한다. 가로 34m, 세로 14m에 이르는 예술극장의 대형 개폐형 문이 디지털 인형극의 스크린이 됐다. 이번에 재생되는 미디어 파사드는 전당에서 진행한 '콘텐츠 발굴-문화예술 전문가 양성 교육'에 참여한 교육생들의 작품이다. 매일 저녁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30분 간격으로 5분 간 상영된다.
미디어 파사드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남긴 고민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도 미디어 파사드를 적극 활용한다. 매해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미디어 파사드 인증 사진을 찍으려 인파가 몰리는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벽에 새해 인사를 수놓는 방식으로 올해 신년 행사를 진행한 서울 신천동 롯데월드타워가 대표적 예.
새로운 예술 형식의 출현은 새로운 고민 거리도 남긴다. 유원준 영남대 미술학부 교수는 "본래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시도했던 실험성이나 예술성은 흐려지고 대중친화적이거나 상업적 메시지에 (한국 작가들과 관객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공예술로서의 미디어 파사드가 예술을 향유하려는 시민들의 욕구를 고취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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