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옥중 사색’의 반면교사[이제교의 시론]
朴 전 대통령 3년 9개월 수감
원망 버리고 모든 멍에 짊어져
尹, 진실 자기편 생각은 착각
특검 거부 후엔 명품가방 공격
납득할 해명이 여론 이탈 막아
정치인에게 권력의 박탈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 권력의 크기가 클수록 상실의 충격은 더해가고, 몰수의 방식이 파괴적일수록 황폐함은 극대화한다. 국민은 권력을 안겨주기도 하고 한순간에 빼앗아가기도 한다. 군주제나 공화정, 민주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진영 간 대립이 빚는 힘의 충돌에서 사실이 무엇인지, 판단이 합리적인지는 결과적으로 보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3년 9개월을 보냈다. 문재인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및 권력남용 사건’ 특별사면으로 2021년 12월 31일 출소하기까지 1730일을 갇혀 지냈다. 그 긴 시간 동안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세력, 등을 돌린 여당 의원들, 탄핵을 선고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그리고 국민을 원망했을까. 심경 변화를 일일이 추적할 수 없어도 최종 도착지가 본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믿었던 주변 인물(최순실)의 일탈로 적폐로 낙인 찍히고…(중략)…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버렸고, 모든 멍에는 제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옥중편지 모음,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 서문 중)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1889년 프랑스 남부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서 그린 이 걸작에는 열한 개의 별이 소용돌이치듯 흐른다. 죽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불멸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검은 불꽃처럼 솟구친다. 고흐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해. 증기선, 마차, 철도가 지상의 운송수단인 것처럼 콜레라, 결핵, 암은 하늘로 가는 운송수단일 거야.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서 간다는 것이겠지”라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박 전 대통령 곁을 지켰던 유영하 변호사는 2500여 권의 책을 영치했다고 한다. 그는 고흐의 그림을 곁에 두고 봤다. 직접 돈 한 푼 받지 않았고 그럴 의도도 없었지만, 광장의 분노로 탄생한 새로운 질서는 변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은 탈출구였다. 그는 사색의 긴 시간을 인내했다. 언젠가 국민이 진실을 알아줄 거라는 소망을 품고서….
윤석열 대통령은 세밑이던 지난달 29일 박 전 대통령을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둘의 연(緣)은 복잡하게 얽힌다. 윤 대통령은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었고, 그 공로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에 올랐다. 권력에 칼을 들이대면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지금은 4월 총선에서 지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처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층 결집으로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대장동 50억 클럽 특검)’ 정국을 돌파하려 한다면 국민 분노가 폭발할 것”이라며 “기댈 곳은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 아스팔트 부대뿐이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정권의 전복, 혁명에는 종종 음모가 깃든다. 프랑스 대혁명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비방하는 ‘리벨(libelle)’이 난무했다. 정적을 비방하는 소책자인 리벨에는 미확인 소문이 즐비했다. 검소했던 앙투아네트는 사치스러운 왕비로 묘사됐다. 불륜에 희대의 색광, 동성애자라는 중상모략이 이어졌다. 진보가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박근혜 탄핵 때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굿판’ ‘세월호 7시간 공백’ 등 온갖 루머가 퍼졌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유언비어를 동원하는 것은 고금과 동서가 동일하다. 거짓의 산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덮는다.
‘김건희 특검’이 총선용 정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문재인 검찰이 19개월을 수사했지만, 기소조차 못 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진실은 자기편이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를 퍼뜨리고도 박수를 받는 국회의원이 존재하는 곳이 한국 정치다. 과거 김건희 여사가 ‘줄리’로 일했다는 거짓말은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은 독이 든 잔이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또 다른 공격이 취해질 것이다.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대한 효력 불인정), 몰래카메라 공작이라지만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납득할 만한 해명이 필요하다.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자신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게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총선에서 보수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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