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키워드로 보는 2024년 경제 전망 [조원경의 경제·산업 답사기]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2024년 세계 경제가 기대치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가 발간한 ‘매크로 아웃룩 2024(Macro Outlook 2024)’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2.4%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어려운 시간은 끝났다”고 밝혔는데 우리와 세계경제 여건을 보면 여전히 숲 속에 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자. 올 한해 경제를 ABC 글자로 6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해 보기로 한다.
A 미국 경제의 연착륙(American economy’s soft landing)과 인공지능(AI)
지난해 세계경제에서 미국 경제는 예상과 달리 호조세였다. 올해에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세계 경제 성장도 미국경제가 연착륙할지 혹은 경착륙할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지난 80년 동안 경기 침체를 초래하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상당 수준으로 끌어내리는데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올해에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대폭 끌어내리고도 경기를 연착륙(소프트랜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그 근거는 금리 인상 중단과 물가안정 기조에 있다. 견조한 노동 시장흐름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몇 달 동안 물가 흐름이 안정적으로 낮아졌다. 지난 12월 연준이 사실상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와 동시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 논의가 시작됐음을 공식화했다. 40년 만에 가장 가팔랐던 연준의 통화 긴축 행보가 피크아웃(peak out)에 접어들었다. 연준은 FOMC 결과와 함께 공개한 경제전망요약에서 올 12월 기준금리를 4.6%로 제시했다. 이는 9월 전망치였던 5.1%에서 50bp(1bp=0.01%포인트) 낮춰 잡은 것이다. 현 기준금리보다는 75bp 낮다. 한 번에 25bp씩 내린다고 가정한다면 내년 중 세 차례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
물론 올해 소비 증가세가 둔화하거나 감소하면서 미국 경제성장률이 상당히 낮아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그동안 가처분소득에 비해 소비지출이 더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 3년간 실질 가처분소득은 2.1% 증가했는데, 실질 소비지출은 10.9%나 늘었다. 미국 가계가 저축한 돈을 많이 써버렸다는 이야기다. 소비의 주축 역할을 하는 중간가구의 소득 감소가 소비를 제약할 전망이다. 2019년 가계 중위소득은 7만8250달러였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가계 중위소득은 2022년에 7만4580달러로 하락해 2021년 추정치인 7만6330달러에서 2.3% 감소했다. 중위소득은 지난 2019년 정점을 찍은 뒤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감소했다. 중산층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금리가 하락할 수 있지만 여전히 높아 기업과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자본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민간경제연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The Conference Board)는 올 상반기 얕은 침체(Shallow Recession)를 포함해 2024년 미국 GDP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경제에서의 화두는 여전히 AI가 될 전망이다.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의 ‘2030년까지의 글로벌 AI 시장 전망’ 보고서를 살펴보자. 전 세계 AI 시장 규모가 2023년 1502억 달러에서 2030년 1조3452억 달러로 연간 36.8%의 고속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머신러닝, 자연어 처리, 컴퓨터 비전, 생성 AI 등 여러 가지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금융, 제조, 소매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며 확산하고 있다. 조직 운영 효율성 개선과 고객 경험 향상을 위한 디지털 경쟁 우위 확보 수단으로 AI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생성형 AI 시장이 2022년에 400억달러(약 52조4600억원) 규모에서 10년 후에는 1조3000억달러(약 1704조원) 규모로 성장할 거라고 예상했다. AI 반도체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폭증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전통적인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와 함께 반도체 빅사이클을 예상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구글, 샤오미 같은 주요 스마트폰 제조 기업들이 일제히 생성형 AI 제품을 내놓거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온 디바이스(On-device) AI는 클라우드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기기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연산할 수 있다. 침체한 클라우드 업체들이 생성형 AI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추세는 반도체 수요를 강화한다.
B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와 채권 시장(Bond Market)
연준은 금융위기와 팬데믹 이후 대폭 증가한 자산을 축소하기 위하여 대차대조표 축소인 양적 긴축(QT, Quantitative Tightening)에 속도를 내고 있다. QT에 따른 시중금리향방이 초미의 관심사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연준의 대차대조표상 자산 규모는 12월 20일 기준 7조7240억 달러다. 대차대조표상 자산 규모가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5월(8조5500억 달러)과 비교하면 1년여 만에 8260억 달러(약 1000조원) 가까이 줄었다. 대차대조표 축소는 채권 등 연준이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는 것으로, 연준이 자산 규모를 늘리는 양적 완화(QE, Quantitative Easing)와 반대개념이다. 연준은 시중 유동성을 줄이기 위해 2022년 6월부터 QT에 들어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조 달러 규모 QT는 기준금리를 0.15~0.25%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연준이 2025년 중반까지 대차대조표상 자산 규모를 6조달러(약 8000조원)로 지금보다 1조5000억달러(약 2000조원) 규모 더 줄일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 재무부도 재원 조달을 위해 대규모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어 채권 금리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은 마무리됐지만 QT는 채권 수익률 곡선(장·단기 금리 차)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채 금리 하락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도 가파르게 떨어지며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시장은 주시하고 있다. 시장이 너무 서둘렀다면 국고채 금리의 단기 반등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통화량(M2)은 2022년 7월 고점을 찍은 후에 작년 4월 일시적으로 소폭 늘었다. 작년 3월 10일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한 사건 여파로 유동성 공급이 잠시 늘어난 것이다. 이후 유동성 감소는 추세화 되고 있다. M2는 상거래나 투자 등에서 현찰이나 다름없는 돈(M1)에다 준결제성 예금(약간의 시간 또는 비용을 치르면 현금으로 쓸 수 있는 예금)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작년 M2는 1949년 이후 7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미국 M2 증가율이 2022년부터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국 경제는 침체에 허덕이고 있지 않다. 소비를 보완하는 투자와 수출이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10월과 11월 5%를 상회하기도 했다. 위험자산인 주식은 채권금리 등락에 따라 움직였다. 주식은 예금이나 국채보다 높은 수익률 할증(프리미엄)을 요구한다. 주식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주당 순이익률에서 10년물 국채금리를 뺀 값이다. 기업 순이익이 좋거나 장기금리가 낮아져야 주식시장 상승이 가능하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4%대를 하회하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국채금리와 유동성 변화가 주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12월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주요국 금리가 더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외 요인이 많이 안정돼 독자적으로 국내 상황을 보며 통화정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시장은 한은의 기준금리가 올해 2분기 말~3분기 중 인하할 것으로 전망한다. 고금리 여파 → 소득 감소 및 소비둔화 → 부동산 매수 심리 하락 → 주택 담보 대출 감소 → 가계대출 부담 완화 흐름이 금리인하 선결 조건으로 보고 있다.
C 환율(Currency Exchange Rate)과 가상자산 시장(Crypto Currency)
올해 세계경제는 저성장 기조 지속에 달러화 약세가 예상된다. IMF의 세계경제성장률은 ‘22년보다 0.1%p 낮은 2.9%다. 올 하반기 중 미국의 금리인하 가능성으로 달러화는 완만한 약세 흐름이 예상된다. 엔화·유로화·위안화 강보합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여전히 높은 금리와 상대적으로 좋은 경기는 달러화 하락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원/달러 평균 환율은 일시적으로 1300원 초반을 넘길 수도 있지만 대체로 평균 1260원 내외로 하락을 예상한다.
이런 경제상황에서 혹자는 비트코인을 올해 가장 유망한 자산으로 보기도 한다. 비트코인은 이미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금을 포함한 세계 자산 상위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테슬라 시가총액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있다. 가상자산 절대 예찬론자는 올해 비트코인이 애플 시가총액을 따라잡는 게 관전 포인트라고 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정말로 강세론자들의 염원이자 희망인 100,000달러(1억3000만원)를 돌파할 지는 미지수다. 강세론자는 비트코인에는 2가지의 강력한 호재가 있다고 본다. 우선 4년마다 규칙적으로 반감기가 도래하며 공급량이 절반으로 축소되는 현상이 반복됐고 그 때마다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 펀드(ETF) 승인 이슈다. 시장전문가들은 빠르면 올 1월, 늦어도 3월에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는 순간 기관투자자들의 비트코인 수요는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환율이든 비트코인 가격이든 가치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올 한해 시장을 전망하면서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란 과거 정부의 구호가 생각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높은 가계부채는 어려움을 예상하는 대목이다.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수가 20만개 가까이에 이르며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우울하다. 빚 의존도가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금리 상승 기조에서 기업의 수익성과 함께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했다. 이 한파 속에서 우리 경제는 디지털, 그린, 포용이라는 화두에 걸맞게 한파를 뚫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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