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영향력 ‘무주택 신혼부부〉다주택자’
가계부채 76% 고소득층에 집중
‘신생아특례’ 신혼부부 구매력 향상
“집을 팔려는 사람만 많아요.” KB국민은행이 지난해 12월 중순 전국 회원 중개업소 6000여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7%가 이렇게 답했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비슷하다는 응답(15.7%)을 제외하면, ‘사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주택시장에 집을 살 사람들이 사라졌다. 2022년 중순까지 급매물을 사려고 돌아다니던 주택 수요자들이 작년 8월 이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8월 3988건까지 늘었던 거래량은 9월 3400건, 10월 2337건, 11월 1812건, 12월 538건(27일까지 신고 기준) 등으로 계속 줄었다.
수요가 없으면 매물은 쌓인다.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아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개업소에 나온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채 가까이 폭증했다. 작년 초보다 3만채나 많다.
주택수요 움직임은 올해 주택시장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다.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입주량이 급감하지만 주택 수요가 더 줄면 집값은 반등하기 어렵다.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은 올해 금리가 떨어지고, 각종 규제완화 정책이 시행돼도 매수세가 살아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치로 치솟고, 무주택자들의 구매력이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여서 매수여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련 자료(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가 우리나라 전체 가계대출의 53%를 차지한다. 4분위와 합하면 전체 가계부채의 76%가 상위 40%인 4·5분위 대출이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대출 접근성이 높고 대출규모도 훨씬 더 많아서다. 이에 비해 소득수준이 낮은 하위 40%인 1·2분위 대출 규모는 전체 가계부채의 11%에 불과하다. 3분위까지 합해도 26% 수준에 머문다. 가계부채 상태가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방증으로 평가된다.
대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4·5분위 고소득층은 대부분 유주택자다. 이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수요로 돌변해 주택시장을 크게 움직인다. 다만 올해 예상되는 주택시장 침체 상황을 고려해 투자수요가 적극 나서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많다.
관건은 무주택자 비율이 높은 1~3분위 계층이 주택수요자로 나설지 여부다. 일단 내년부터 대출 여력이 추가로 생기는 계층이 있다. 무주택 신혼부부다.
정부는 새해부터 ‘신생아 특례 대출’을 최대 5억원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대출 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2023년 1월1일 이후 출생 포함)한 무주택 가구에 대해 최저 1.6% 금리로 제공한다. 올 상반기 특례보금자리론 효과로 집값이 반등했던 것처럼 신생아 특례대출을 활용해 급매물을 찾는 신혼부부가 늘면 주택시장에 회복 기대감이 커질 수 있다.
새해부터 결혼과 출산을 할 때 증여세가 대폭 공제되는 것도 무주택 신혼부부에겐 내집마련 기회가 될 수 있다. 국회는 내년 1월부터 결혼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비과세 증여 한도를 1억5000만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기존엔 5000만원만 공제됐다. 양가로부터 증여를 받는다면 최대 3억원을 비과세로 증여받을 수 있다.
각종 지표를 보면 무주택자들의 주택구매력은 회복하는 중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민들의 주택을 살 능력을 뜻하는 전국 ‘주택구매력지수(HAI)’는 지난해 9월 기준 137.1로 1월 123.8 보다 높아졌다. 이 지수는 지난해 10월 81.5까지 떨어졌다가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HAI가 100보다 높을수록 중간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가 중간 가격대 주택을 구입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시장 회복 기대감을 가진 무주택자 중 일부가, 유주택자 중에서도 아파트로 옮기고 싶은 비아파트 거주가구가, 대출 및 증여 여건 변화로 자금 여력이 생긴 신혼부부가 어떻게 움직일 지에 올해 주택시장 변화의 정답이 있을 것이다. 박일한 선임기자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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