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대피 경보...골판지 덮고 질서있게 여진의 밤을 견뎠다

와지마(이시카와)/성호철 특파원 2024. 1. 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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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강진 현장 성호철 특파원 르포]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몬젠 마을 니시소학교 체육관에 피난 중인 현지 주민들/성호철 특파원

3일 오전 2시 55분,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市) 몬젠 마을에 있는 니시소학교(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경고가 울렸다. ‘삥! 삥! 즉각 대피하십시오!’ 잠결에 놀라서 깼다. 여진 발생을 알리는 경고가 피난소에도 자동으로 울린 것이다. 주변에 다른 일본 이재민들은 들썩이거나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여기는 와지마시가 마련한 주민 피난소다. 해발 14m니, 혹여 쓰나미(지진해일)가 오더라도 안전하다고 스스로 납득하며 잠을 청했다. 와지마시는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이시카와현 나토반도에서 오후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 때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이 지진으로 3일 오후까지 사망자가 73명 나왔다.

전날 오후 8시 30분쯤 니시소학교 피난소에 도착했다. 피난소라고 해서 안락한 시설이 갖춰진 곳은 아니다. 3층 건물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겼고 바람을 막아줄 건물 정도만 서있을 뿐이다. 전기는 잠깐 들어오는가 했다가 다시 끊기길 반복했다. 집이 부서져 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피난민 약 130명은 난방조차 되지 않는 추운 체육관에서 골판지를 침구 삼아 질서 있게 여진의 밤을 견뎠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몬젠 마을에 있는 니시소학교 체육관이 지난 1일 지진으로 균열이 가면서 내부에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성호철 특파원

일본인들은 외국인 기자의 방문에 처음에는 난색이었다. 피난소 자원봉사자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피난소에 많은데, 독감이 유행할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최악의 재난 상황에서 피난소에 독감이 돌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입소를 허용하며 화장실 사용법을 조건으로 걸었다.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소독제로 손을 씻으라는 것이다.

1층 교실은 계단 사용이 힘든 고령자, 2층은 비교적 젊은 이재민들이 머무르고 있다. 1층 체육관 입구엔 포장 종이 박스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침구 대용이다. “노숙자 대우라 미안하지만 없는 것보다 낫다”고 옆에 있던 일본인 나카구치 요시히토(29)씨가 말했다. 담요는 없는 대신, 커다란 금박지를 나눠줬다. 이미 피난 이틀째인 일본인 중엔 파손된 집에서 이불과 매트리스 등을 간신히 가져와, 방한하는 이들도 보였다.

‘쿠오오오.’ 한밤중엔 한 시간에 한두 차례, 건물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여진이 와서 건물이 흔들리는 소리다. 체육관에서 만난 피난민 가와카미 다다시(76)씨는 “그제 강진 때 목조 건물인 우리 집은 찌그러져 버렸다. 그나마 튼튼한 철제 건물이라 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안심된다”고 말했다.

이날 밤은 밤새 눈과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비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체육관에 크게 울렸다. 이시카와현은 영하 2도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학교 건물이라 주택 같은 수준의 방풍은 되지 않아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난방이 안 되는 데다 천장까지 높은 체육관은 손발이 시려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옷을 껴입은 몸통은 견딜 만했지만, 발은 너무 추웠다. 20여 년 전 군대 혹한기 훈련 때가 떠올랐다.

3일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몬젠 마을 니시소학교 체육관 내벽 일부가 지난 1일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져내려 있다./성호철 특파원

오전 5시에 화장실에 갔다. 나이 든 남자 어르신이 여자 화장실 앞에 서있었다. 어르신이 거동을 돕겠다는 듯 “끝나면 얘기해 줘”라고 말하자, 여자 화장실에서 짧게 ‘응’ 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방해가 될까 봐, 밖으로 나왔다. 피난소에선 ‘운동장 구석에서 방뇨하는 것도 괜찮다’고 설명했었다. 밖에 나오니, 40대 남성이 자동차 안에서 손을 비비고 있었다. 추워서 차량 히터로 몸을 녹이고 있던 것이다.

이시카와현은 강진 이후에 물·식량뿐만 아니라, 가솔린 공급도 제대로 안 된다. 밤새 차량 히터를 트는 차박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40대 남성은 30분쯤 뒤에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문득 ‘재난 때 정전 상황에서 전기차는 무용지물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통신이 끊기면 할 수 없는 일이 별로 없다. 체육관 내부에는 석유난로와 온풍기가 네 대가 있었다. 하지만 석유난로도 전기가 없으면 가동이 안 되는 기종이었다. 체육관 안쪽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석유 여덟 통은 무용지물이었다. 일본 이동통신 회사는 NTT도코모·KDDI·소프트뱅크 3사가 있는데, 도코모만 터지고 나머지는 불통이다.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몬젠 마을 니시소학교 체육관 피난소에서 3일 배급된 오니기리(주먹밥) 등 아침 식사/성호철 특파원

아침에 일어나니, 애플워치는 꺼져 있다. 아이폰은 배터리가 17%만 남았다. 통신 신호가 안 잡힐 때 통신 기기는 신호 잡는 데 배터리를 훨씬 많이 소모한다. 뒤늦게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띵띠팅팅팅….’ 오전 7시에 스피커에서 기상 음악이 나왔다. 복도에 나오니, 깨진 유리창과 파손된 벽이 눈에 띄었다. 진도 7은 무서운 재해인 것이다. 남성 일고여덟 명이 일어나자마자 학교 수영장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에서 쓸 물을 길어오려는 것이다. 다나카 요시노부(60)씨는 “풀(수영장)에 아직 물이 있어, 단수에도 화장실을 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오전 8시 20분에 아침 배식이 시작됐다. 오니기리(주먹밥)와 즉석밥, 간단한 국이었다. 재난 상황에서도 일본인은 외부인에게 따뜻한 한 끼를 나눠주는 친절함을 잊지 않았다.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에 급파된 성호철 특파원이 3일 새벽 몬젠 마을 니시소학교 체육관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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