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새로운 여행 제안, 지역 관광 추진 조직 DMO
(시사저널=글·사진 이승태)
지역 주민과 사업체, 지방자치단체가 뜻을 모아 지역 관광 추진 조직 DMO를 이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평창·강릉 DMO의 제안을 따라 즐거운 여행길을 나섰다.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행하듯 일상을 보낸다면 삶이 얼마나 충만할까. 휴식 같은 풍광 속에서 지역 주민과 어울리며 현지의 삶을 경험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여행자에게 근사한 탈출구가 되어 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DMO(Destination Marketing & Management Organization)는 지역 기반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관광 현안을 발굴하고 해결을 주도하는 조직으로 지역 관광 마케팅 및 관광 산업 육성 기능을 수행하며, 주민과 사업체, 지자체가 함께 지역 여행 활성화를 위해 전력투구한다. 지역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지역관광추진조직(DMO)은 그 지역만의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자생력을 높이는 사업을 전개한다. 마침 1월 19일부터 2월 1일까지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가 열리니, 강원도의 유려한 두 고장 평창과 강릉에서 색다른 여행을 즐겨 보기로 한다.
평창 DMO의 '평창스테이'는 숙박 시설과 관광두레 등 주민 사업체가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한 체류형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단기 여행자는 물론 중·장기 체류자가 생활 인구로 정착하도록 다채로운 방안을 모색한다. 여기에 테마형 걷기 여행 프로그램 '평창 여행 구독'을 함께 이용한다면 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 이참에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발급해도 좋을 것이다. 디지털 관광주민증이란 한국관광공사가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 중인 사업으로, '대한민국 구석구석' 앱 또는 홈페이지에서 발급받는다. 알펜시아리조트와 발왕산 관광케이블카, 백룡동굴 등 평창 대표 여행지에서 QR코드를 스캔한 후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제시하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평창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많은 이와 나누고 싶다면 SNS 서포터즈 '평창공감'의 일원이 되어 본다. 보다 긴 호흡으로 여행지를 살피니 여유로운 미소와 따듯한 마음으로 지역에 다가서게 된다.
긴 호흡으로 머무르다, 평창스테이
인체에 가장 적합한 기압 상태를 유지해 생체 리듬에 좋다는 해발고도 700미터 지대. 한국을 대표하는 고원 지방인 강원도 평창의 평균 고도가 그쯤이다. 이 고장의 슬로건이 'HAPPY700'인 이유다. 평창에서도 손꼽는 고랭지인 대관령 양떼목장 들머리에 근사한 은신처 한 곳이 있다. 유럽 소도시의 주택이 연상되는 외관, 맑고 상쾌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이곳은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펜션 '퀸스가든'이다. 평창 DMO의 체류형 프로그램 '평창스테이'를 대표하는 숙소다. 뜰로 들어서자 아름드리 나무와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기분을 들뜨게 하니, 과연 여왕의 정원임을 상기한다. 해발 770미터 지대인 숙소 어디서든 대관령과 백두대간, 용평스키장을 품은 발왕산 조망이 시원스럽다.
여길 다녀간 이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것은 목공 체험. 나무 다루는 일을 사랑하고 또 잘하는 이시근 대표는 대관령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 넓은 펜션을 짓고, 화목 난로가 정겨운 '카페 로스트가든'과 조촐한 '감성목공소'를 함께 운영한다. "우연히 접한 캄포(녹나무) 향에 취해 나무를 수집했어요. 저마다 톡특한 무늬와 빛깔로 제 마음을 사로잡더군요. 숙박객을 위한 서비스로 목공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숙박하러 오는 손님이 적지 않습니다.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은 건 도마와 우든 펜 만들기 체험이에요.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도 꽤 높답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까 궁리하다가 조각도를 들었다. 연필을 깎듯 조심스레 나무 토막을 다듬자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손 가는 대로 20분 만에 뚝딱, 자작나무 화분을 완성했다. 풀 한 포기만 옮겨 심어도 근사한 나만의 정원이 될 것 같다.
이 대표는 아내 이희주 씨와 '퀸스가든과 함께하는 창작 예술 여행'을 5년째 운영 중이다. 평창 DMO의 평창스테이 시즌 2 지원 사업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퀸스가든에서 숙박과 가든 파티, 목공 체험을 하고 대관령 주변의 비경을 찾아 떠나는 코스로 이뤄진다. 지역 주민만 아는 매력적인 장소를 발굴하는 것이 관건인데, 노을이 곱거나 별이 예쁜 곳 등 계절마다 대상지를 조금씩 바꾼다. "숲 치료 여행은 나무와 우리 마음을 두루 치유하는 여정입니다. 흙을 한 봉지씩 가져가서 등산로에 드러난 나무뿌리를 덮거나 부러진 나뭇가지를 정리한 후 그 위에 나무 연고를 발라 줍니다. 정리한 가지는 수거했다가 저녁에 모닥불을 피워 '불멍'을 즐기죠." 창작 예술 여행에 대한 숙박객의 만족도가 높다는 이희주 씨의 자랑을 곱씹으며 객실로 돌아왔다. 창밖엔 어느새 하늘 가득 별이 빛난다. 직접 구운 빵에 신선한 채소와 블루베리, 대관령 감자가 곁들여 나온다는 조식을 기대하면서 눈을 붙인다. 내일은 또 어떤 이를, 어떤 풍경을 맞닥뜨릴까. 별빛이 총총한 강원도의 밤이 길기만 하다.
세상 모든 직장인이 딱딱한 사무실 책상 앞에 반듯이 앉아 일할 필요는 없다. 근무 형태 변화에 따라 일과 여행을 동시에 즐기는 워케이션이 화제다. 강릉 DMO는 워케이션 여행자를 위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이름하여 '해피하게 오감' 프로젝트. 관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유형의 오피스 인프라를 확대하고, 원격 근무 관광 상품을 통해 체류형 여행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다. 대표적 프로그램이 코피스(coffee + office)를 표방하는 '공감오피스'와 미니 관광 안내소 역할을 하는 '오감안내소'다.
하나 더. '일잘러' 여행자라면 강릉을 대표하는 바다 여행지, 연곡솔향기캠핑장에서 해마다 열리는 '강릉 워케이션 페스티벌'을 주목해야겠다.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지역에 머물며 일과 삶을 영위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보여 주기 위해 기획한 축제다. 지난해에는 비치 요가와 실크스크린 체험, 재즈 공연 등으로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디지털 노매드족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제 푸른 바다와 싱그러운 솔숲을 마음껏 누빈 뒤, 맛 좋기로 소문난 강릉 커피 한잔 음미하며 향긋한 워케이션을 보낼 시간이다.
여행하듯 일한다, 해피하게 오감
강릉시 슬로건이 '솔향 강릉'이라지만, 사실 강릉은 솔향만큼이나 커피 향기로도 기억되는 도시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숭늉처럼 들이켜는 한국에서 강릉은 '커피 수도'의 위상을 누리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다. 오죽헌을 산책하고 커피 마실 곳을 물색하다 카페 한 곳과 마주친다. '서원커피랩'이라는, 고아하면서도 현대적인 상호가 눈에 든다. 들어서자마자 오감안내소와 공감오피스 간판을 발견하곤 마음을 놓는다. 여행자가 일하기에 편안한 카페라는 의미다. 다채롭고 알찬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오감안내소와 디지털 노매드를 위한 업무 공간인 공감오피스는 모두 강릉 DMO에서 운영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서원(徐園)은 '느릿느릿 찾아와서 노니는 동산'을 뜻합니다. 누구든 이곳에 들러 천천히 쉬어 가시라는 의미죠." 최덕헌 대표는 오죽헌 방문객이 잠시 휴식할 공간을 구상하다 카페를 열었다. "오죽헌 외에 어딜 여행해야 할지 묻는 이가 많았는데, 그분들께 강릉의 명소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강릉 DMO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오감안내소와 공감오피스 사업에 동참했습니다." 출입문 옆에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비롯해 강릉 DMO가 지원하는 '휴대용 오피스 세트'를 비치했다. 단출하지만 필요한 건 다 갖췄으니, 여행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사무 환경이다. 카페 대표 메뉴인 인절미 크림 라테를 주문해 2층으로 오른다. 천장이 높고 좌석 간격이 넓어 업무 공간으로는 그만이다. 한쪽엔 회의와 미팅이 가능한 세미나실과 대청마루도 보인다. 창 너머로는 오죽헌과 생태저류지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만큼 자연 친화적인 오피스가 또 있을까 싶다. 머릿속이 절로 맑아지니, 일할 맛 제대로 난다.
새하얀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사천해변으로 걸음을 옮길 차례다. 이곳엔 통창 가득 넘실거리는 바다를 감상하기 좋은 '고심쌀롱'이 자리한다. 해변 특유의 느긋한 공기가 감도는 카페로,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반려동물과 종일 머무르든 주인장이 눈치 주는 일이 없다. "음악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다멍' 즐기기엔 최고죠. 좌석이 워낙 편해서인지, 더러는 명상하듯 잠드는 손님도 계세요." 인심까지 넉넉하니 이보다 더 훌륭한 워케이션 장소가 존재할까? 서울에 거주하던 임동석∙방지현 대표는 틈만 나면 사천해변을 찾아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돌연 현관문을 잠그고 무작정 살림을 옮겨 왔다. 그길로 사천해변에서 가장 전망이 빼어난 자리에 군고구마 디저트 전문점을 열었다. 특수 오븐에 구운 고구마가 주메뉴이다 보니 양질의 고구마를 공수하는 게 관건. 가족과 나누어 먹는다는 생각으로 고집스럽게 엄선한 고구마를 내는 덕에 금세 맛있다고 입소문이 났다. "고구마는 가장 비싸고 큰 것을 고집합니다. 주문 즉시 만들어 최적의 상태로 드리죠. 고구마 속살이 제대로 익는 데까진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저희처럼 사천 바다를 즐길 줄 아는 손님이기에 조금 늦어진다고 독촉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우스갯소리로 "고구마의 마음이냐" 묻는 이가 많다는 가게 이름 고심(古心)은 '옛사람의 순박한 마음'을 뜻한다. 주인장 부부의 마음과 딱 어울리는 상호다. 군고구마 한 개에 천연 벌집이 그대로 올라가는 '허니 아이스크림 군고구마'를 주문해 본다. 그러고는 사천바다를 그대로 끌어안은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하늘 색과 바다 색이 마치 팔레트 위에서 섞인 물감처럼 자연스레 하나의 빛깔을 이룬다. 아아, 바다가 저리 예쁘고 군고구마는 이리 달콤하니, 아무래도 노트북은 잠시 덮어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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