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비대위, ‘86 운동권 심판론 + 알파’ 필요하다[지하세계]
86세대 청산만으론 1차원적 그쳐
파격·수혈·단절 더해져야
본질적인 총선 구도 변경 가능해
정당의 위기는 대개 선거 패배에서 온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인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정당으로선 위기인 거다.
위기를 해결하려고 정당들은 종종 혁신위원회란 하위 조직을 만들고, 위기의 규모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되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다. 혁신위는 정당의 기존 지도부를 유지한 채 권한을 위임받아 뜯어고치기에 나선다. 비대위는 기존 지도부 자제를 대체하기 때문에 비대위 결정이 곧 당의 결정이 된다. 때론 혁신위도 비대위도 아닌, 정당의 기존 조직을 유지하면서 뜯어고치기에 나서기도 한다.
위기에 처한 정당의 당면 목표는 ‘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선거에 졌다는 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뜻이다. 더 이상 심판의 대상이 아니게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유권자의 지탄 대상이 된 구도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구도 변경의 방법은 국민이 이쪽이 아닌 저쪽이 심판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선에서 패했던 민주당은 그동안 한참 이 방법을 구사해 왔다. 바로 정권심판론이다. 대선에서 진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도 졌다. 그런 이후 달리진 거라곤 대선 후보가 당대표가 됐다는 것 말고는 딱히 없다. 대신에 정권과 집권여당을 비판하고 실책을 꼬집으며 정권심판을 외쳤다. 국정 책임에서 자유로운 야당으로선 손쉬운 방법이다. 그 덕분인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압승했고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정권심판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도 변경 방법은 1차원적이고 본질 회피적이다. 상대방이 나쁘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국민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1차원적이고, 위기에 처한 정당 자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본질 회피적이다.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니 상대 정당이 같은 방법을 동원하면 순식간에 처지가 바뀔 수 있다.
고차원적이고 본질 직시적인 구도 변경 방법은 정말로 확 달라졌고 그래서 장점이 생겼으니 선택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저쪽이 할 수 없거나 할 마음이 없는 일이지만 이쪽은 할 수 있으니 뽑아달라고 외치는 거다. 저쪽의 물건이 나쁘니 이쪽 물건을 사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쪽 물건이 좋으니 사달라고 설득하는 거다.
2011~2012년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박근혜 비대위 체제였다. 포장지부터 바꿨다. 당의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꿨고 당색을 당시 만해도 보수정당에서 금기되던 빨강으로 골랐다. 단절이었다. 또 청년과 중도 인사를 지도부에 포함시켰다. 수혈이었다. 여기에 더해 당의 내용을 수정했다. 단적으로 야당의 이슈이자 정책인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파격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달라졌으니 뽑아달라고 호소했다. 결과는 총선 승리였다.
민주당의 경우 대선 이후 걸어간 길을 보니 지금으로선 총선 일까지 정권심판 구도 외에는 다른 것을 들고나올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여당의 변화에 자극을 받아 포장지를 바꾸고 단절, 수혈, 파격을 이뤄낸다면 역시 구도를 추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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