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패거리 카르텔”, 검찰이 떠오른 이유

한겨레 2024. 1. 3.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24년 신년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기고] 강상현
연세대 명예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올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대신 준비된 신년사를 읽는 데 그쳤다. 지난해 일부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몇가지 두루뭉술한 정책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런 걸 대통령 신년사라고 하나 싶을 정도로 알맹이가 없었다.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는 없었고, 그렇고 그런 의례적인 말들로 채워졌다. 아니함만 못한 썰렁한 신년사였다.

그런 중에 귀를 의심할 만큼 의아한 발언이 하나 있었다. 연설 중간쯤 언급된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는 대목이다. 특히 “패거리 카르텔”이라는 말을 듣자, 누구를 가리키는지 순간 혼란스러웠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검찰이었다. 그동안 검찰 권력이 자신들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두고 얼마나 무도하고 무리한 일들을 계속 저질러 왔는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언론학자인 나는 적어도 그랬다.

패거리 카르텔=검찰? 이런 생각이 든 까닭은 방송 장악을 위해 검찰 권력이 패거리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물론 방송통신위원장까지 검찰 특수통 출신이고, 방송 규제의 또 다른 한 축인 방송통신심의위원장마저 검찰 권력과 아주 밀접했던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출신. 게다가 최근 임명된 한국방송(KBS) 사장도 같은 법조언론인회장 출신이니 이들이야말로 “자기들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검찰 법조 패거리 카르텔 아니고 뭐라 하겠는가.

정부·여당은 언론과 방송 장악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이미 많은 패악을 저질러 왔다. 낮은 대통령 지지율과 현실적으로 여당에 불리한 총선 판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론 장악이 필수라고 보는 것 같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정부·여당에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방송은 어떻게든 줄이거나 없애고, 정부·여당에 유리하거나 도움이 되는 방송은 어떻게든 늘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5월, 임기가 2개월 남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거의 강압적으로 면직시키고 “언론통제 기술자” “방송장악 기술자”라는 이동관을 어떻게든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히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 이동관 위원장 임명을 전후해 방통위는 온갖 편법과 무리수를 써가며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진들을 교체했고, 공영성이 강한 보도전문 채널들(YTN, 연합뉴스TV) 주식의 민간기업 매각에 나섰다. 한국방송을 길들이려는 수신료 분리징수 조치도 이때 이루어졌다.

결국 국회에서 이동관 위원장 탄핵안이 발의됐고, 그는 투표 직전 자진사퇴했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방통위가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가 돼 방송 장악이 어려워지기에 자진사퇴와 함께 후임을 급히 임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홍일 위원장이 임명됨으로써 방송 장악을 위한 검찰 법조 패거리 카르텔은 더욱 공고화됐다.

검찰 법조 패거리 카르텔의 한 축인 한국방송 새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마음에 안 드는 인기 시사프로그램들을 속전속결로 없애고 진행자들을 쫓아내거나 교체했다. 더 끔찍하면서도 가관인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경우다. 같은 패거리 카르텔의 또 다른 한 축인 위원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초법적 만행을 저질렀다. 진실과 범죄 여부가 불확실한 온라인 미디어(뉴스타파)의 오래된 인터뷰 보도를 검찰이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이라고 규정하자, 전 방통위원장은 이를 “국기문란행위”, 대통령실은 “희대의 정치공작 사건”,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는 “사형에 처해야 할 반국가범죄”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극렬 비난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기다렸다는 듯 긴급심의를 강행하여 이를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에 최고 수위 중징계를 내렸다. 최근 드러난 바로는 류희림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들을 통한 청부 민원을 근거로 셀프 심의를 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직원이 이런 청부·셀프 심의를 했다가 파면당한 바도 있다. 방심위는 새 위원장이 들어오자마자 법적 근거도 없이 “가짜뉴스 심의전담 센터”를 세웠다가 내부 반발과 사회적 논란 끝에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어쩌자고 이렇게 불법 무도한 일들을 거리낌 없이 계속 자행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대통령 신년사에서 타파해야 한다고 언급한 “패거리 카르텔”은 어떤 패거리를 두고 한 말인지 자못 궁금하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