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김득신·신채호 등 역사 속 충북 용띠들
![[음성=뉴시스] 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사진=문화재청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1/03/newsis/20240103070023328rfjj.jpg)
[청주=뉴시스] 강신욱 기자 = 올해 갑진년(甲辰年)은 용(청룡)의 해다.
용띠로 태어난 충북의 역사적 인물은 누가 있을까.
용의 해에 출생한 충북의 인물 6명 삶의 궤적을 따라갔다.
양촌 권근, 중봉 조헌, 백곡 김득신, 우운 권병덕, 단재 신채호, 예관 신규식이다.
이 가운데 올해와 마찬가지로 갑진년 청룡의 해에 태어난 인물은 조헌과 김득신이다.
권근은 흑룡(임진년), 권병덕은 황룡(무진년), 신채호와 신규식은 백룡(경진년)이다.
◇조선 국가 기틀 다진 권근(임진년·흑룡)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마을에는 500년 조선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묘가 있다.
그의 아들 권제(權蹄·1387~1445)와 손자 권람(權擥·1416~1465)의 묘도 있다.
이곳 권근삼대묘소·신도비는 1980년 충북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고려 말 익주로 귀양가서 그곳에서 최초로 그림을 넣어 학문을 설명한 책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저술했다.
조선 개국 후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정총(鄭摠)과 함께 정릉묘비문(定陵墓碑文)을 지었고, 개국원종공신으로 화산군에 봉해졌다.
벼슬은 대제학(정2품)에 이르렀다.
◇호서 최초 의병장 조헌(갑진년·청룡)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은 임진왜란 당시 호서(湖西)지방에서는 가장 먼저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승장 영규대사(靈圭大師)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해 충청도 공략의 본거지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 뒤 충남 금산에서 왜군과 맞섰다가 의병 700명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음에도 호남 방어의 근거지를 회복했다.
이조참판 겸 의금부 춘추관사에 추증됐다. 이어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고 이조판서에 이어 영의정에 거듭 추증됐다.
사액 사당인 옥천 표충사에 위패가 모셔졌다.
조헌은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에 영면했다. 묘는 도 기념물, 신도비는 도 유형문화재다.
◇대기만성 표상 다독시인 김득신(갑진년·청룡)
![[증평=뉴시스]독서왕김득신문학관. (사진=증평군 제공) photo@newsis.com](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1/03/newsis/20240103070024072alah.jpg)
대기만성 다독시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증평군 증평읍 율리에 아버지 김치(金緻), 아들 김천주(金天柱)와 함께 영면했다. 김득신 묘소는 2014년 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했다.
하지만 김득신은 사기 열전 백이전을 11만3000번이나 읽는 등 다독가였다. 이 같은 노력으로 그는 59세 때 문과 증광시 병과에 급제해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섰다. 오늘날 대기만성의 표상으로 알려진 이유다.
김득신은 시 '용호(龍湖)'가 효종으로부터 극찬을 받았을 만큼 당대 유명한 시인이었다.
묘소가 있는 증평군은 독서왕김득신문학관을 건립하는 등 김득신을 지역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리고 있다.
◇3·1운동 민족대표 권병덕(무진년·황룡)
청주 출신 우운(又雲) 권병덕(權秉悳·1868~1943)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명이다.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형을 선거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천도교 종리원 서무과 주임을 거쳐 중앙교회 심계원장·감사원장·선도사 등을 지냈다.
일제에 항거한 의열투쟁사를 담은 역사서 '조선총사'를 비롯해 '이조전란사', '궁중비사'가 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경진년·백룡)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에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묘소와 사당이 있다.
신채호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탈퇴해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다.
그 뒤 1923년 창조파 임시정부가 러시아에서 해체되자 실의에 빠진 신채호는 아나키스트 활동에 심취했다.
이후 한국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의열단 선언인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했다.
국사 연구에도 몰두해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했고, '전후삼한고',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등의 글을 발표했다.
신채호는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중국 다롄시 뤼순감옥에 수감됐다가 뇌일혈과 고문 후유증 등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임시정부 실질 설계자 신규식(경진년·백룡)
청주 출신 예관(聣觀) 신규식(申圭植·1880~1922)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임정 내에서 핵심 역할을 한 항일 독립운동가다.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신해혁명에 참여했고, 1912년 동제사를 조직해 공화주의 독립혁명에 투신했다.
1919년 임정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을 맡아 1921년 쑨원(孫文)이 이끄는 중화민국정부로부터 임정 승인과 지원을 얻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22년 임정의 독립운동 분열을 안타까워하며 단식하다 순국했다. 상하이 훙차오로(虹橋路) 만국공묘에 안장됐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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