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시오니즘은 부활할 것인가
2014년 아옐레트 샤케드라는 이스라엘 의원이 소셜미디어에 게시물을 공유했다. “팔레스타인의 모든 애 녀석들은 뱀이다. 뱀과 그 어미들은 죽어야 한다.” 물의를 빚었지만, 샤케드는 당당했다. “이스라엘의 적들에 대한 ‘합리적’ 태도일 뿐.”
이스라엘 국적자(약 1000만명) 가운데 팔레스타인 사람(팔레스타인인)의 비율은 무려 20%다. 또한 이스라엘은 1967년(3차 중동전쟁) 이후 자국 영토가 아닌 ‘서안지구(서안)’와 ‘가자지구(가자)’를 장기 점령하고 있다. 서안과 가자의 팔레스타인 인구도 500만명을 웃돈다.
이런 나라에서, 정치인이 ‘인종 청소’를 선동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인권과 자유,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심지어 위선적으로라도) 지향하는 체제다. 샤케드는 이후에도 승승장구해 이스라엘의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잇달아 맡는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선 용납되지 않는 독특한 정신세계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신세계의 이름은 시오니즘(Zionism)이다. 시오니즘의 기원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에서 반(反)유대인 정서가 격화되면서 ‘조상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 지역(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으로 돌아가 민족국가를 세우자’는 여론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조성되었다. 그 민족국가는 박해와 차별로부터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든든한 요람이 될 터였다. 유대인들은 20세기 들어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시오니즘을 더욱 강화했다. ‘꿈’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에 이루어진다. 유대인들은 국제연합(유엔)의 기획하에 당시 영국령이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절반 정도인 공간에 민족국가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는 ‘유대인 할당 구역’에 살던 원주민이 축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팔레스타인과 주변의 아랍 ‘형제 국가’들은 분노했다. 건국 이후 여러 차례의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모두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당초 유엔으로부터 할당받은 영토 밖으로 나간다. 동쪽으로 접경한 서안과 서남쪽 접경 지역인 가자를 ‘점령’한 것이다. 이후에도 점령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유대인들을 서안과 가자로 투입해 ‘정착촌’을 곳곳에 건설했다. 군대도 따라 들어간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하나님이 유대민족에게 내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까.
팔레스타인인들에겐 가혹한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절반을 국제사회의 비호 아래 차지했다. 나머지 땅까지 가로채려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장투쟁 단체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기치하에 ‘이스라엘 소멸’을 목표로 싸웠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이스라엘인들의 시오니즘은 단지 ‘유대인의 민족자결과 안전을 위한 민족국가’를 넘어 ‘유대 민족 제일주의’와 ‘팔레스타인 절멸’로까지 치닫게 된다.
자유주의 시오니즘의 짧은 전성기
그러나 이런 종류의 시오니즘(국수주의 시오니즘)을 이스라엘인 전체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1993년 미국 백악관에서 체결된 ‘오슬로 협정’이 그 증거다.
1980년대 중반, PLO는 수십 년에 걸친 성과 없는 투쟁에 지쳐 있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를 서안과 가자에 세우자는 현실주의 노선으로 기운다. 그러려면 이스라엘이 그 지역에서 철수해야 한다. PLO의 평화 공존 노선에 반발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를 거점으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인 하마스를 따로 결성했다. 1987년에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인들의 대규모 봉기)가 터진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이 시위와 총격전으로 붉게 물들었다.
1992년, 양쪽의 필요성을 함께 충족시킬 정치적 여건이 조성된다. 팔레스타인과 평화 공존을 지향하는 노동당이 집권한 것이다. 이듬해,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노동당 대표)와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미국 백악관에서 만나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다. 합의 사항은 ‘가자와 서안에서 정착민 철수’, 그 땅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PLO의 행정조직)에 양도’ 등이다. 이른바 ‘두 나라 해법’.
이스라엘 노동당과 라빈은 시오니스트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 ‘다른 종류의 시오니스트’였을 뿐이다. 이스라엘 건국 및 대(對)아랍 전쟁의 영웅인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와 골다 메이어 총리도 좌파 성향 노동당 소속이었다. 그들 역시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 국가’를 신성한 존재로 간주했다. ‘유대인 국가’ 생존의 필요조건이 ‘팔레스타인 절멸’이라고 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당초의 시오니즘은 2023년의 ‘국수주의 시오니즘’과 결이 크게 달랐다.
오스트리아 언론인 출신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19세기 말 시오니즘의 주창자이자 이스라엘의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당대의 유럽이 인권, 평등,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짓밟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증거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보편 가치들이 실현되는 민족국가를 세우자고 역설했다. 그런 가치 중 하나는 아랍인들에 대한 존중과 공존이었다. 헤르츨은 유대인 국가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담은 소설도 발간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유대인 국가는 아랍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 참정권을 부여한다. 소설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아랍인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자’고 주장하는 유대인 정치가다. 이 소설을 소개한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VOX)’(2023년 12월12일)에 따르면, 헤르츨은 오늘날의 국수주의 시오니즘을 예견했다. “헤르츨은 유대인 국가가 비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의 씨앗을 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유럽인들이 유대인에게 가졌던 편견을, 유대인들이 아랍인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유대인 국가’와 ‘민주주의적 가치(그중 하나는 아랍인의 권리 존중)’가 함께 실현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자유주의적 시오니즘(Liberal Zionism)’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의 건국 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 독립선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종교,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사회·정치적 권리의 완전한 평등을 보장할 것이(었)다.”
‘자유주의적 시오니즘’의 명맥은 중도좌파 노동당, 그보다 왼쪽인 메르츠당, (좌파) 자유주의 성향의 시민사회와 언론 등을 통해 이어졌다. 그 결실이 1993년의 오슬로 협정이었다. 노동당은 1990년대에 언론 자유 등 개인의 권리를 크게 강화하는 ‘기본법(Basic Law)’을 통과시키는 등 자유주의 개혁도 추진했다. 이스라엘은 헌법이 없다. 의회(크네세트)가 때때로 통과시키는 기본법(일반 법률은 따로 있다)들이 헌법 역할을 한다. 새로운 기본법의 통과는, 다른 나라에서라면 개헌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양대 축으로 하는 자유주의 시오니즘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1995년에 극우파에게 암살당하면서 오슬로 협정의 이행이 사실상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라빈 암살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는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다가 2000년의 2차 인티파다로 폭발한다. 특히 하마스는 자살폭탄 테러 등으로 답답하고 지친 팔레스타인 민중의 눈길을 끌었다. 반면 PLO를 계승한 PA(오슬로 협정의 팔레스타인 측 협상 주체)는 ‘이스라엘 부역자’란 이미지에 더해 부패와 무능으로 인기를 잃었다. 2006년 시행된 팔레스타인 입법부 총선에선 하마스가 압승했다. PA는 불복한다. 결국 국제법상 팔레스타인의 행정구역인 서안과 가자는 PA와 하마스에 의해 각각 따로 통치되는 형국으로 나아간다.
이스라엘에선 1996년 리쿠드당(당시 중도우파였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선 강경파) 대표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직에 올랐다. 그 뒤 지금까지 3년여를 제외하면 팔레스타인에 강경한 우파들이 정부를 운영했다. 2000년대 들어 노동당은 의회 120개 의석 가운데 4~5석을 겨우 유지하는 소수정당으로 몰락했다. 이스라엘에서 우파는 ‘팔레스타인과 대화는 무용하며 압도적 무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을 의미한다.
자유주의 시오니즘의 좌절은 이스라엘의 정치 지형을 ‘유대 민족 제일주의(우파)’ 쪽으로 껑충 옮겨놓았다. 우파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 2005년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의 모든 정착촌을 철수시켰다. 오슬로 협정을 이행하라는 미국의 압박으로 제정한 ‘철수계획실행법(Disengagement Law:가자의 모든 정착촌과 서안 북부의 4개 정착촌 철수)’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이는 ‘두 국가 해법’의 수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스라엘은 정착촌을 철수시킨 대신 가자의 육로와 상공, 해로(지중해로 나아가는)를 모두 봉쇄했다. 가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전락했다. 서안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정착촌을 지속적이고 불법적으로 확대해나갔다.
이스라엘 국내에서도 반민주적 인종주의 입법이 강행되었다. 2018년 네타냐후가 이끄는 극우 연립정부는 이른바 ‘유대민족 국가법’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이스라엘을 ‘유대민족(만)의 국가’로 규정한다. 아랍계 이스라엘 국적자(전 인구의 20%)들은 교육·주택·보건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극우화는 네타냐후의 장기집권 야욕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2009년 이후 지금까지 1년6개월(2021년 6월~2022년 12월)을 제외하고 계속 이스라엘 총리를 맡았다. 그 비결은 ‘국수주의 시오니스트’들을 연립정부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네타냐후가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란 것은 2022년 11월 총선 이후 연립정부 구성에서 입증되었다. 그의 리쿠드당은 의회의 120석 중 32석을 얻었다. 리쿠드당과 연정을 구성한 세력은 샤스(11석, 유대교 초정통파 집단인 ‘하레디’를 대변), 종교적 시오니즘당(14석), 토라 유대주의 연대당(7석) 등 초강경 국수주의 시오니스트 세력이다.
정착촌 철수를 요구하고 팔레스타인에 친화적인 야권은 대체로 중도우파 및 좌파 성향이다. 예쉬 아티드(24석), 국민통합당(12석), 우리 조국 이스라엘당(6석), 아랍 연합(5석), 강경 좌파 성향인 ‘하다쉬-타알’(5석), 노동당(4석) 등. 1990년대에 노동당과 함께 두 국가 해법을 추진했던 메레츠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아랍 연합’은 이스라엘 내의 아랍계 국적자를 대변한다.
이스라엘이 정착촌에 목숨 거는 이유
2023년 갓 출범한 네타냐후 연립정부의 주력 사업은 서안의 정착촌 확대였다. 네타냐후로서는 국수주의 시오니스트들이 아무리 황당한 정책을 내놓아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들이 연정을 이탈하는 순간 자신의 권력이 무너진다.
지난해 3월부터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 시위를 촉발시킨 ‘사법체계 개편안’도 정착촌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스라엘 같은 의원내각제에선 사실상 의회가 국가 시스템을 이끈다. 의회 다수당이 행정부를 구성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의회와 행정부를 대법원이 견제해왔다. 의회를 통과한 법률이 기본법(사실상의 헌법)과 상충하는지를 판단하고 무효화할 수 있는 기관이 대법원이다.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 개편안은 대법원 결정을 의회의 과반수로 뒤집을 수 있게 하는 ‘대법원 무력화’를 노린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의회에선 ‘철수계획실행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동안 법률적으로 금지되었던 서안 북부의 정착촌 건설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 개정법이 대법원에서 저지된다면, 네타냐후 정부의 국수주의 시오니스트들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없다. 그러나 사법 개편으로 대법원을 무력화한다면, 극우파는 정착촌 정책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
‘복스’(2023년 11월9일)에 따르면, 서안(국제법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영토)엔 현재 150개 넘는 유대인 정착촌과 128개 전초기지가 건설되어 있다. 유대인 약 50만명이 이스라엘 군의 비호를 받으며 거주 중이다. 유대인 정착민 중 상당수는 국수주의 시오니스트다. 이들이 부근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하는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유엔에 따르면,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11월 초까지 한 달여 동안 서안에선 팔레스타인인 130명 이상이 유대인에게 살해되었다.
정착촌 정책의 총괄자는 ‘종교적 시오니즘당’ 대표인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이다. 〈예루살렘 포스트〉(2023년 5월30일)에 따르면, 당시 스모트리치는 유대인 50만명을 서안에 추가로 정착시킬 준비를 하라고 하급 기관들에 지시했다. 스모트리치는 2023년 2월 유대인 정착민들이 인근 팔레스타인 마을(후와라)을 습격해서 주택과 차량을 불태우고 민가에 총격을 가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후와라는 제거되는 것이 맞다.”
같은 당 의원인 즈비 수코트는 전쟁 발발 이후 의회의 ‘서안 문제 관련 입법 소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정착민 출신인 수코트는 이슬람 사원에 방화하는 등 반(反)팔레스타인 테러 행위로 최소한 네 차례 체포되었던 자다.
네타냐후 정부에 정착촌은 심지어 하마스의 공격 가능성보다 훨씬 중대한 사안이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2023년 11월20일)는, 이스라엘 군사정보부가 3월과 7월에 걸쳐 두 차례나 네타냐후에게 하마스의 공격 가능성을 경고했으나 무시당했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는 사법 개편안 관철에 매달려 있었다. 하마스가 공격한 10월7일, 가자 접경지역에 배치된 이스라엘 군은 2개 대대였다. 나머지는 어디 갔을까? 32개 대대가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안에 몰려 있었다. 심지어 네타냐후는 은밀하게 하마스를 지원해왔다. 카타르가 가자지구에 매달 현금 1500만 달러를 이스라엘 영토를 통해 제공하도록 허용했다. ‘햇볕정책’이 아니다. 네타냐후는 하마스가 PA에 맞설 정도로 강해야 팔레스타인의 분열이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PA가 약화되면, 이스라엘 정부는 ‘오슬로 협정’ 이행을 협의할 상대를 ‘다행스럽게도’ 잃게 된다. 서안의 정착촌 확대 역시 장기적으론 PA의 약화를 노린 것이었다.
이스라엘인 72% ‘네타냐후 퇴진’
이런 와중인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습격했다. 1400여 명이 살해당하고 200여 명은 납치되었다. 이스라엘에선 팔레스타인 관련 분쟁이 우파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2000년대 들어 우파 장기집권의 원인 중 하나는 2차 인티파다다.
이번엔 다르다. ‘복스’(2023년 12월12일)는 이번 전쟁 이후에도 이스라엘 사회가 더 우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자유주의 시오니즘의 부활을 전망한다. “이스라엘과 해외 유대인들이 서안지구의 지속적인 식민화(colonization)를 지지하지 않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2023년 11월24일)은 여론조사 결과, 현재 64석인 네타냐후 연립정부의 의회 의석이 41석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리쿠드당은 32석에서 14석으로, 종교적 시오니즘당(현재 14석)은 한 석도 건지지 못한다. 지금 야권의 의석은 79석으로 늘어난다.
이스라엘의 채널13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2023년 12월9일)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무려 72%가 네타냐후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이 중 31%는 ‘즉시 사임’을 원했다. 〈하레츠〉(2023년 11월9일)는 네타냐후를 단호하게 비판했다. “10월7일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10여 건에서 이스라엘 국민들이 정부에 단호하게 말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꺼져라’다. 네타냐후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 안보를 제물로 바쳤다.”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2000년대 이후 우파 정부의 강경 팔레스타인 정책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마스에게 희생된 피해자의 가족들은 ‘인질 송환’과 함께 ‘네타냐후 퇴진’을 외치는 중이다. 하마스에게 친척들이 납치당한 유대계 시민 길 디크만 씨는 11월13일 의회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가자를 절멸시켜야 한다’라는 갈리트 디스텔 아트바리얀 리쿠드당 의원의 연설에 격노했다. 증언석에 나간 디크만 씨는 아트바리얀 앞에서 그녀를 강력히 성토했다. “내 사촌이 그곳에 있다. 그의 아내도 그곳에 있다. 그곳엔, 유대인이든 아랍인이든, 아기들도 있다. 당신(아트바리얀)은 가자를 지우고 절멸시키며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를 쓸어버리자는 것인가. 당신이 포기해버린 인류를?”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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