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14년 다니다 ‘다회용기 300만개’ 기업 대표로…“일회용품보다 편하게”
“소비자 상대 시장(B2C)이 크지만 기업 상대 시장(B2B)도 매력적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도 한 명의 소비자라는 생각에서 이들의 인식 전환을 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22일 서울 송파구의 ‘다회용기 종합 제공 기업’인 더그리트 사무실에서 만난 양우정(43) 대표는 “이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고 사업성이 있다고 봐서” 2021년 이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건설 관련 대기업 14년 차 직장인이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의 대표가 됐다. 회사는 지난해 1억원의 매출을 올린 뒤 올해 40억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아직은 투자비용을 회수하지 못했지만 내년 1분기 흑자 전환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업 2년여 만에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대기업 사업장 등에 다회용기나 다회용컵을 제공하고 이를 수거하는 업체로 선정되어서다. 현재 경기 수원·기흥·화성·평택 등 삼성전자 전국 9곳의 사업장과 지에스(GS)그룹 계열사 5곳, 두산(주), 코오롱인더스트리, 엘엑스(LX)판토스와 엘엑스인터내셔널의 사무실, 서울시 일부 구청사 등에 월 300만개의 용기를 제공하고 수거하고 있다. 내년 1분기에는 다회용기를 600만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양 대표는 “산업이 태동기여서 참고할 기업이 사실상 없었다. 다만 처음부터 씻기 좋은 용기 개발, 수거하는 물류 작업, 세척에 이르기까지 자동화에 기반한 ‘토탈 솔루션’ 기술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런 시스템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회용기 사업은 코로나19로 일회용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작한 신산업이다. 시민들의 환경 인식이 성장하고 관련 규제가 생겨나면서 산업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다. 종업원수 5인 이상 80㎡가 넘는 식당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독일도 리컵앤리보울(Recup&ReBoul)과 같은 스타트업이 이미 성장 중이다. 영국도 지난 10월부터 플라스틱 접시를 단계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여러 업체가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용기 제작이나 세척 등은 외주를 주는 등 산업이 전문적이지 않거나 수거하는 다회용기 자체가 적은 물량인 한계가 있었다. 양 대표는 다른 업체와의 차별점으로 ‘편리함’과 전 과정 ‘품질 관리’를 꼽았다.
“일회용품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직접 용기를 개발했다. 또 이런 다회용기가 자산이기 때문에 분실한 컵이 몇 개인지 컵에 있는 큐알코드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빠르게 정산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기업 입장에서 일회용품 발주하는 것처럼 편리하게 느끼도록 하는 발주시스템을 구축한 결과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입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향과 음식물 찌꺼기가 남을 수 있는 한식에 맞는 세제를 개발하고 전용 세척장을 짓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다회용기 생산이 늘어나는 것도 플라스틱 쓰레기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을 고려해 플라스틱 원료(PP)를 만드는 효성화학과 다시 잠실야구장 내 입점한 매장 등에서 음식 용기로 재활용될 수 있도록 용기를 납품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다회용기 제공·수거·세척 등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것이 중요했다.
양 대표는 산업의 성장과 함께 회사의 규모도 키우고자 한다. 직원 67명과 함께 한다는 양 대표는 “대기업 사업장 공략이 목표였고, 더 세밀하게 운영해보고자 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한 지역, 혹은 한 사업장 전체에서 일회용품이 없어질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총 64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축제나 행사 등 케이터링 서비스로도 수거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가 지난 11월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폐기한 것과 관련해 양 대표는 “일회용품 규제로 제시됐던 보증금제도는 자영업자들이 고객에게 보증금을 부과하고 또 이 쓰레기를 반납받는 일을 일일이 하기 힘들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지점이었다. 불편하면 정착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규제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정부가 주도해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신중히 수립하고, 공표하여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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