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정부가 살려줄 거야”... ‘연수익률 97%’ 태영건설 정크본드에 베팅하는 개미들

이인아 기자 2024. 1.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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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공모채 가격 급락… 연수익률 97%대 치솟아
오는 11일 워크아웃 개시 여부 확인해야
사채권자 집회서 기관 비중 높으면 소수의견 피력 어려워

태영건설이 발행한 68회차 공모채인 태영건설68에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 신청 후 태영건설68 가격이 급락하자, 투자 기회로 보는 이들이 몰린 탓이다. 기업 정상화 과정에서 개인이 힘을 합쳐 채무조정안을 부결시키거나 먼저 상환받은 사례가 있어 같은 상황을 기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정크본드에 투자할 때는 워크아웃 개시 여부, 이후 사채권자 집회에서의 기관 비중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기업 사정이 예상보다 나쁘면, 워크아웃이 아니라 법정관리로 갈 수 있다. 회사채 투자자 중 기관 비중이 높다면, 기관의 표심에 따라 워크아웃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개인은 별다른 의견 피력의 기회 없이 공동으로 고통 분담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2023.12.28/뉴스1

지난달 28일 태영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태영건설이 발행한 공모채 태영건설68은 곧바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고, 채권 가격도 곤두박질쳤다. 2일 태영건설68의 연 수익률은 97%대로 치솟았다.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할인율)는 반대로 상승한다.

태영건설68은 태영건설이 발행한 회사채 중 유일하게 장내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이다. 태영건설은 지난 2021년 7월 10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68회차 공모채를 발행했는데, 당시 표면금리는 2%대로 책정됐다. 만기는 내년 7월 돌아오지만, 전액 상환 가능성은 낮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해당 채권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CCC로 강등한 상태다.

하지만 이를 오히려 기회로 보는 개인투자자들도 있다. 직전 거래일이자 워크아웃 신청일인 12월 28일, 태영건설68 가격은 전일 대비 30% 떨어졌는데, 2일에는 거래량이 늘어나 도리어 가격은 3% 반등했다. 현재 가격이 액면가 1만원 대비 40%가량 떨어진 가격이어서 워크아웃 과정에서 이보다 많이 상환받으면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한 투자자는 “태영건설의 규모와, 전체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급력 등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많이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전략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고 조언했다. 우선 오는 11일 워크아웃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워크아웃은 부도 위기에 놓였지만 회생할 가치가 있는 기업을 살려내는 작업이다. 돈을 빌려준 채권단과 힘을 합쳐 부채 탕감, 출자 전환, 주식 감자 등을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는 게 핵심이다. 채권단 실사 과정에서 워크아웃이 아니라 법정관리로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채권자 집회도 남은 변수다. 사채권자 집회에서는 안건이 가결되려면 참석금액의 3분의 2 이상, 총 채권액의 3분의 1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만약 기관투자자가 3분의 1 이상이라면, 개인은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대세 의견에 끌려가게 된다. 채무 손실, 만기 연장, 이자 감면, 출자 전환 등 기관 중심의 강도 높은 채무조정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채권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전액 상환받은 아스트는 개인 비중이 높아 채무조정안을 부결시킨 사례다.

태영건설68은 기관 보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의 주 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 태영건설 채권단에 발송한 공문에 따르면, 키움투자자산운용이 500억원, 멀티에셋자산운용이 200억원, 삼성자산운용이 100억원, 하이투자증권이 100억원, 삼성증권이 20억원, KDB산업은행이 80억원을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태영건설68 상환 과정에서 개인투자자 예상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운용 대표는 “워크아웃 개시 후 사채권자 집회에서 태영건설68 협약채권자인 은행, 증권, 자산운용, 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며 “기관보유분이 300억원 이상이면, 개인이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조정안을 부결시키기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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