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살이’ 선택한 일본 천재소녀…“강해지고 싶었어요”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4. 1. 3.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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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최연소 프로 기사 韓유학
日프로들도 자식은 한국으로
전후 일본서 배운 한국 바둑
지금은 한국이 세계 최강자
달라진 한일관계, 미래는 10대
정치인들 싸워도 이들은 프로
스미레 14세 ‘日 바둑요정’ [이충우 기자]
나카무라 스미레(仲邑菫). 이제 막 열 다섯살이 된 2009년생 여류 바둑 프로기사를 ‘나카무라씨’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어딜 가나 여전히 ‘스미레’다. 10살 때 프로기사로 데뷔해 일본 기원 사상 최연소 프로 기록을 세운 바둑 신동, 일본 기원의 마스코트였던 그는 지난 해 한국 이적을 알리면서 일본 바둑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에선 바로 ‘스미레 팬클럽‘이 생겨났고, 양국 언론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스미레는 존재만으로 한일 관계에 많은 화두를 던졌다. 그가 한국에 바둑 유학하던 2018년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이 앞다퉈 반일·혐한정서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러나 스미레는 일본에서 입단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직 프로의 시각으로, 세계 최강인 한국 바둑 리그를 택한 것. 정치인들은 한일 관계를 이용했지만 10대들은 이렇게 달랐다. 지난해 11월 서울로 이사한 뒤, 성동구 한종진바둑도장에서 수학하고 있는 그를 매경이 한일 언론사 중 최초로 인터뷰했다.

스미레 14세 ‘日 바둑요정’ [이충우 기자]
“강해지고 싶었다.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을 택했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신동’이란 흔히 정신적 미숙과 기교적 완성이란 두 가지 서로 다른 특징을 동시에 암시하곤 한다. 스미레는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작은 입을 앙 다물었다가 잠시 생각한 후 내놓는 답변에는 정체모를 원숙함이 묻어나는데, 반상에 돌을 떨굴 땐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어린 아이의 얼굴이다. 또래들과 대국을 잠시 멈추고 인터뷰룸에 들어선 스미레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한국을 택한 이유를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8살 때부터 한국과 일본 도장을 오가면서 공부했는데 언젠가 한국에 와서 살고 싶었어요. 한국이 (바둑에서) 강하기 때문에 여기서 배우면 이길 수 있으니까요.”

일본식 억양이 묻어나는 수준급 한국어 실력이었다. 스미레를 만나기 전, 그의 한국행에는 부모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천재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의 존재 자체가 한 가족의 운명이 되곤 하니까. 어머니 나카무라 미유키씨는 그러나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딸이 한국에서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하는데 부모로써 그걸 응원해주고 싶었다”며 스미레가 먼저 한국행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스미레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프로 바둑 기사로 활동 중인 나카무라 신야 9단, 어머니도 일본기원 바둑 강사 출신이라 일본 기원을 떠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터. 더군다나 일본기원은 스미레를 위해 ‘영재 특별 채용 시스템’까지 만들어 지난 2019년 정식 프로 기사 자격을 줬다. 일본 바둑 사상 최연소 프로기사 스미레에 미래를 걸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스미레가 이적을 발표하던 날 일본 바둑계의 여론은 좋지만은 않았다. 나카무라씨는 “(스미레의 한국행에) 유감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딸의 도전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과연 한국 바둑이 얼마나 특별하기에 그렇게 좋은지 물었다. 스마레는 “친구들과 떠들고 선배님·스승님과도 재밌게 장난치고 대화하니 배우는 게 즐겁다”는 마냥 아이같은 답변을 했다. 1960년대 조훈현이 일본 바둑계의 거목 세고에 겐사쿠의 문하생으로 들어갔을 때 바둑을 가르치기는커녕 마당을 쓸거나 방 청소만 시켰다는 일화들이 스치듯 떠올랐다.

스미레 14세 ‘日 바둑요정’ [이충우 기자]
스미레가 초등학교 2학년때 처음 만나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은 한종진 사범(한국프로기사협회장·9단)은 “아무래도 일본 바둑계가 아직 도제 문화가 남아있다보니 요즘 어린 애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며 “한국에선 너무 자연스럽게 선후배가 어울리고, 사범들과도 허물없이 대화하고 하니까 그런 게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치면 이제 겨우 중학교 2~3학년, 친구들과 놀다가도 “난 이만 바둑두러 가보겠다”고 말하는 게 힘들지 않았을까. 스미레는 너무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바둑이 가장 재밌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실 스미레가 보여준 일과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둑이다. 토요일에도 쉬지 않고 도장에 나온다. 매일 규칙적으로 밤 9시에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생활. 9시간씩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데, 운동도 따로 하지 않는단다.

스미레는 “운동이라면 걷는 게 전부”라며 수줍게 웃었다. 아침 먹고 도장에 나와 바둑 공부하고, 점심 먹고 바둑 공부하다가 하원, 집에 가서 저녁먹고 또 바둑 공부하는 삶. 어머니 나카무라씨는 “아이가 기재(奇才)는 없는 것 같은데 집중력이 좋고 즐거워하니까”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스미레를 가르치는 한종진 사범은 “집중력이 기재고, 즐기는 게 기재”라며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스미레처럼 그렇게 한 가지에 몰입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스미레가 바둑 둘 때나 공부할 때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 친구들과 얘기할 때보면 그냥 보통 아이다. 장난도 잘 치고.”

그는 스미레의 바둑에 대해 “일본 프로 기사들이 수비적이고 모양이나 격식을 중시하는 스타일인데 스미레도 부친의 영향을 받아 그런 부분이 강했다”며 “이제 한국에서 공격적인 스타일을 겸비하면서 좀더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반 포석, 중반 전투, 종반 끝내기까지 전반적으로 고급 공격기술을 익혀가면서 스미레만의 바둑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3살때부터 스미레에게 직접 바둑을 가르쳤던 어머니 나카무라씨도 “스미레가 끈기와 집중력 하나는 누구보다 강했다”고 말했다. 수담(手談)이 아닌 화담(和談)이라 그 집중력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한국 음식 중에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한다는 스미레. 그는 “쉴 때는 K-팝 듣고 노래방에도 간다”며 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떠들면서 인터뷰룸을 떠났다.

프로의 세계에서 스미레는 이제 3단이다. 싸움에 힘이 붙는다는 ‘투력(鬪力)’의 단계. 그가 잘 생겨서 좋아하고 바둑 잘 둬 존경한다는 한국의 박정환 9단 같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오늘도 투력을 불태우는 스미레. 인터뷰룸을 떠나 다시 반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의 눈이 독수리처럼 번뜩였다.

재능 보이면 한국行 … 일본·중국서도 줄잇는 유학행렬
박정환·신진서 등 세계 제패에

‘바둑 변방’ 아닌 ‘바둑 성지’로

최정 등 여류기사 재능도 탁월

스미레 14세 ‘日 바둑요정’ [이충우 기자]
스미레의 스승 한종진 사범은 일본과 중국의 프로기사들도 한국에 유학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한국 바둑의 미래를 밝게 봤다. 1930년대부터 90년말까지 한국 바둑의 계보를 만들어온 조남철·김인·조훈현·조치훈 9단 등이 모두 일본에서 바둑을 배웠다. 하지만 2000년 들어 이창호·이세돌·박정환·신진서 9단으로 이어지는 1인자들이 세계 무대를 휩쓸면서 이제는 거꾸로 일본에서 한국에 바둑을 배우러 오는 시대가 됐다. 일본 바둑 프로 기사들조차도 자신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바둑을 가르치려 한다. 스미레가 그랬고, 요다 노리모토 9단의 아들도 한국서 유학중이다.

한종진 사범은 “10년전 도장을 차린지 얼마 안돼 아이들을 소규모로 지도하고 있었는데 스미레의 아버지 나카무라 신야 9단이 도장에 찾아와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며 스미레와의 첫만남을 떠올렸다. 그는 “아이가 천재라는 소문은 저도 듣고 있었지만 우리 도장에 맡겨줄 것이라고는 기대를 안했다”며 “하지만 우리 도장 분위기 등을 보더니 스미레를 선뜻 보내줬다”고 말했다. 그렇게 2년 여를 지도했는데 스미레는 처음 봤을 때부터 바둑에 대한 깊이와 이해도가 남달랐다는 게 한 사범의 얘기다.

그는 “지금은 스미레처럼 바둑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오는 어린이들이 많아졌다”며 “바둑에 일단 재능이 있다고하면 어떤 식으로든 한국 도장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하고 심지어 프로가 된 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

는 “한국 바둑 계보를 보자면 저의 선배 세대때는 일본에서 바둑을 배워왔다면 이젠 한국에서 바둑을 배워가는 시대”라며 “최근에 신진서라는 초대형 선수까지 나오면서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K-바둑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국 여류기사의 기재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일본·중국 모두 바둑 프로 리그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뒤처지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최정 9단을 비롯해 성역을 깨고 있는 여류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범은 “스미레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만 한다면 여류기사로써 바둑계에 또 다른 역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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